철은 여전히 없고요
작년 11월 수능시험 다음 날. 카톡을 열어 '업데이트한 프로필 항목'을 스와이프하며 친구들의 근황을 확인하고 있었다.
'지은이는 캠핑 갔네... 미선이는 연하 남친이랑 잘 지내는구나... 미주 이모 또 꽃 사진 올렸네... 어? 뭐야. 하영이 애 낳았네? 대박! 결혼은 언제 했대?'
나는 벌떡 일어나 하영이의 프로필 사진을 눌러 확대해 봤다. 본인과 똑같이 생긴 귀여운 딸이었다. 거푸집이네, 거푸집이야. 고등학생 때 20년 후 결혼하지 않을 최후의 2인으로 본인과 나를 꼽았었는데... 둘 다 어찌어찌 결혼해서 애를 키우고 있었다.
하영이를 마지막으로 본 게... 12년 전 락페스티벌이었다. 때마침 태풍과 겹쳐 더위와 습도가 최고조를 찍던 2011년 7월 말, 아침 일찍 샤워장 앞에서 수건 들고 서 있다가 우연히 마주쳤더랬다. 3일 내내 공연 보고 텐트에서 숙식하면서 진짜 힘들고 진짜 재밌게 놀던 시절이었다. 이젠 돈 주고 하라고 해도 못하겠지만.
하영이에게 연락을 해보고 싶었지만, 조금 고민됐다. 연락했다가 '으응, 너니? 무슨 일이야?' 같은 반응이 돌아오면 민망할 것 같았다. 그럴 애는 아니지만 십 년 동안 사람이 어떻게 변했을지 모르니. 망설이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던졌다.
- 김하영~ 안녕 ㅋ 나 류미야.
- 프로필에서 애기 사진 보고 반가워서 메시지 보내봄
- 나 카톡 친구에는 있니...?
순식간에 1이 없어졌다.
- 어머
- 류미~~~~~~~~~~~~~~~~~~~~~~~~~~
- 이게 얼마만이야!!!!!!!!!!!
그대로구나. 넌 역시 그대로야! 으하하하. 우리는 아기 얘기, 남편 얘기를 주고받다가 내친김에 다음날 신촌에서 만나기로 했다.
마침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다. 독수리약국 앞에 노란 우산 쓴 저 자태, 하영이렷다. 길을 건너 슬며시 다가갔다.
"김하영!"
하영이가 내 쪽을 바라봤다. 저 눈웃음은 여전하네.
"류미! 야 씨 너 일루 와."
하영이는 우산을 내리고 팔을 내 목에 둘러 진하게 포옹해 주었다. 나도 하영이를 꼭 안고 등을 두드렸다. 그렇게 오래 안 봤는데 하나도 안 어색할 줄이야.
"야 너 결국 쌍수했구나."
"당연한 거 아냐?"
하영이는 고등학교 때 같은 밴드부 멤버였다. 당시 하영이는 밝은 갈색에 찰랑찰랑한 긴 생머리, 170cm의 훤칠한 키, 전교에서 견줄 이가 없을 만큼 독보적인 각선미를 자랑했다. 그런 그녀의 유일한 외모적 아쉬움이라면, 평균보다 약간 작은 눈이라고나 할까.
하영이는 늘 밝게 말했다.
"나는 눈두덩에 지방이 많아서 무조건 절개법이야."
쌍꺼풀 수술할 때 절개법으로 하시겠단 말씀이었다. 당시 우리는 그 자체로 예쁘다는 생각을 못하고, 틈만 나면 손거울로 얼굴을 비춰보며 외모 암흑기를 어떤 수술로 극복할지에 대해서만 고심했다.
그런데, 하필 하영이의 이런 결심에 불을 붙이는 사건이 일어났다. 어느 날 하영이가 학원을 마치고 밤늦게 귀가하던 길이었다. 뒤에서 낯선 남자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기요. 저기요."
하영이는 본인을 부르는 줄 모르고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갔다.
"저기요. 저기요!"
양옆을 둘러봐도 아무도 없자, 하영이는 그 목소리가 자신을 부르는 것임을 깨달았다. 한 치의 의심 없이 긴 생머리를 찰랑 휘날리며 뒤를 돌아본 하영.
"네? 저요?"
웬 남학생이 서 있었는데, 하영이의 얼굴을 보더니 표정이 굳어지면서 말하더란다.
"아, 잘못 봤다. 눈 X나 작네."
당황한 하영이는 발음이 꼬여버렸다.
"므..므..므머? 므므머?"
"하아... 아니다."
남고생은 실망한 듯 몸을 돌려 오던 길을 다시 걸어갔다. 상황 파악이 완료된 하영이는 불꽃같은 분노에 휩싸였다.
"야!!!!! 이 자식아 뭐라고?"
밤늦은 시각, 아무도 없는 거리, 낯선 남학생. 여린 여고생에게는 무서운 상황일 수 있지만, 크게 한방 맞은 하영의 눈에는 뵈는 게 없었다.
"너 이리 와 미친 XXXXX야! 뭐라 그랬어 어???"
하영이의 목소리가 아파트 단지를 쩌렁쩌렁 울렸다. 걸어가던 남고생이 흠칫하더니 슬슬 뛰기 시작했다. 가만있을 하영이 아니었다. 덩달아 뛰어 그를 쫓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학생과 하영은 둘 다 전속력으로 뛰고 있었다. 하영은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상황에서도 육두문자를 날리며 고래고래 욕을 했고, 남학생은 쏜살같이 달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놈을 놓쳐버린 하영은 분노를 풀 길이 없어 부들부들 떨 뿐이었다.
다음날 하영이 이 무용담을 밴드 멤버들에게 들려줬을 때, 모두가 숨도 못 쉬고 웃었다. 연약한 소녀의 마음에 상처가 될 법도 하건만, 하영은 그 일을 이렇게 논평하며 마무리했다.
"내가 평소에 욕을 좀 구사해서 망정이지, 그 상황에서 욕 한 마디 못했어봐라. 더 억울하지."
훤칠한 키와 늘씬한 몸매만큼 유쾌하고 씩씩한 고딩 하영이었다.
우리는 우산을 접고 쌀국숫집에 들어갔다. 비도 오겠다, 뜨끈한 국물 있겠다, 애기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왔겠다... 그렇다면? 낮술이지. 우리는 맥주를 주문했다.
"우리 예전에 편의점에 술 사러 간 날 기억나?"
"언제? 아... 주미랑 셋이? 밤에?"
"어어."
"그때 너 그 아저씨들이랑... 맞지."
"어 맞아 맞아."
나는 예전부터 순진한 건지 바보인 건지, 여튼 눈치가 없는 편에 속했다. 그러면서도 호기심은 많아서 남들 하는 건 다 해보고 싶어 했다.
고3을 앞둔 고2 겨울방학. 밤늦게까지 연습실에서 수다를 떨던 우리는 금기에 손을 뻗어보기로 했다. 바로, 술이다. 다른 애들은 안 내킨다며 집에 갔고, 하영과 주미 나 이렇게 셋이 남았다. 주미가 말했다.
"내가 요 앞 편의점 뚫어놨거든? 밤 10시 넘어서 가면 술 살 수 있어. 좀 이따 가자."
그때 심장이 어찌나 벌렁벌렁 뛰던지. 나쁜 짓을 앞두고 떨려서가 아니라 설레서 벌렁벌렁했다. 집에는 독서실에서 공부한다고 뻥치고 10시가 될 때까지 연습실에 앉아 대기했다. 우리는 최대한 어른처럼 보이려고 진하게 화장을 했다. 그렇게 화장을 진하게 하면 더더욱 화장발을 세운 청소년처럼 보인다는 것을, 그때는 알 길이 없었다.
밤 10시. 주미와 하영이가 편의점 소쿠리에 소주를 담고, 나는 과자를 고르고 있었다. 취한 아저씨 둘이 내게 말을 걸었다.
"어, 학생 같은데. 밤에 여기서 뭐 해?"
"학생 아닌데요."
"저기 쟤네들, 니 친구야?"
아저씨들이 저쪽에서 음료수를 고르던 하영과 주미를 보더니 말했다.
"네."
"너네들 먹고 싶은 거 있어? 아저씨들이 사줄게. 과자 고르고, 술도 먹고 싶음 담아. 아저씨가... 너네 술 먹고 싶은 거 다 알아(속닥)."
"진짜요?"
"그래. 골라봐~"
오. 개꿀! 나는 신이 났다.
"잠깐만요~"
눈앞에 있는 과자를 고르며 생각했다. 친절한 아저씨들이 일면식도 없는 우리한테 과자랑 술을 사준다고 하다니. 오늘 일진이 좋네.
그때였다. 하영이가 오더니 내 손목을 잡고 말했다.
"나가자."
"아이 잠깐만."
나는 아저씨들을 슬쩍 보고 하영이를 구석으로 끌고 갔다.
"(속닥) 야야 저 아저씨들이 과자랑 술 사준대. 짱이지."
"그게 무슨 짱이야. 미쳤냐?"
"뭐가."
"씨 너 일단 나와."
나는 하영이 손에 끌려 밖으로 나왔다. 미주가 뒤따라 나왔다.
"야, 너 미쳤어? 사준다고 그걸 고르고 있냐?"
"왜? 공짜잖아."
"아저씨들이 공짜로 그냥 사주겠냐?"
"어. 딸 같아서 사주는 거 아냐?"
"이 모지리야... 저 아저씨들 그거 사주고 같이 놀자는 뜻이잖아."
"무슨 소리야. 나이가 안 맞는데 어떻게 같이 놀아."
"에휴... 말을 말지. 저 사람들 속 뻔히 안 보여? 얘가 세상물정을 하나도 모르네."
그렇다, 나는 세상물정 모르는 열여덟 살 모지리였다. 그때 아저씨들이 검은 마음이었는지, 진짜 순수한 호의였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저씨가 사탕 사줄게 저기 같이 가자" 하는 말에 홀랑 따라가는 아기랑 똑같이 위험천만한 마인드로 살고 있던 건 맞다. 그렇게 어리바리하던 애가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참 스스로 봐도 대견하네. (본인한테 관대한 편)
우리는 22년 전으로 돌아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는데도 고등학교 시절이 바로 어제처럼 느껴졌다. 너무 생생해서 손으로 잡으면 잡힐 것 같은 기억들이었다. 어쩌면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데, 시간과 공간만 이동한 게 아닐까? 철도 들지 않고, 더 성숙해지지 않고, 그냥 열여덟인 채로 살고 있는 게 아닐까? 눈을 감으면 그 시절 매일의 감정까지 이렇게 선명한데, 어느새 마흔이 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평일에 애 엄마들의 대화는 하루종일 지속할 수 없다. 어린이집에서 아기를 데려와야 하기 때문이다.
"하영아, 오늘은 내가 낼게."
"아냐 내가 낼게. 아니면 각자 내. 각자."
"아냐. 고마운 게 있어서 그래."
"뭔데?"
"다음에 만나면 얘기해 줄게."
"아 뭐야 궁금하게!"
"궁금한 게 있어야 또 보지."
하영이는 모르지만, 나는 일생일대의 은혜를 입었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늦게 시작해 기본기가 부족했던 나는, 고3 내내 하루 14시간을 내리 공부만 했다. 그렇게 친구들 만나고 쏘다니기 좋아하던 내가 두문불출하고 공부하려니 죽을 맛이었다. 이명, 위염, 한번 터지면 한 시간 넘게 쏟아지던 원인 불명의 코피... 힘든 시간이었다.
그렇게 죽어라 공부하고 대망의 수능 날. 1교시 언어영역에서 시간 조절에 실패해, 다섯 문제를 읽지도 않고 3번으로 찍었다. 가장 자신 있던 언어영역을 망치고 무슨 정신으로 수리영역을 봤는지 모르겠다. 오전 과목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자 나는 망했음을 감지했다. 죽도록 열심히 했는데 이 꼴이 났구나. 허무했다.
수능 시험장 교실에는 아는 친구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멍하니 앉아 울먹이고 있었다. 그냥 시험을 포기할까? 재수하면 되지. 그런데… 나 1년 더 이 짓을 하면 죽을지도 몰라. 절망감에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그때, 교실 앞문이 열렸다.
"류미~~~ 밥 먹자!"
하영이가 도시락을 번쩍 치켜들고 활짝 웃고 있었다. 하영이의 작고 귀여운 반달눈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솟았다.
"너, 나 여깄는 줄 어떻게 알았어?"
"너가 수험번호 알려줬잖아. 배고프니까 얼른 먹자."
내 눈에 눈물이 고여 있건 말건, 일단 도시락을 까는 하영이었다. 둘이 수다 떨며 도시락을 먹다 보니 속상함이 풀리고 마음도 안정되었다. 그래 뭐, 1년 더 하지 까짓 거. 나는 하영이와 기분전환을 제대로 하고, 차분해진 마음으로 나머지 시험을 보았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목표하던 대학, 원하던 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당시 언어영역에서 3번으로 찍은 다섯 문제 중 세 개의 정답이 3번이었다!)
본인이 의도하진 않았으나, 그날 하영이는 날 살렸다. 내가 큰 도움이 되진 않겠지만 힘이 닿는 한 하영이에게 평생 크고 작은 도움을 줄 작정이다. 애초에 그런 마음에 카톡으로 말 건 것이기도 하고.
우리는 20년 후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그때가 되면 장성한 자식을 두고 또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도합 40년의 이야기를 함께 나눌 친구가 있어 속이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