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우 Sep 07. 2020

신데렐라, 넌 정말 그렇게 행복하니?

나의 지금을 이루는 모든 시작 #3 팝송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팝스타 한둘쯤은 있을 것이다. 퀸, 비틀즈, 아바부터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저스틴 팀버레이크를 지나 테일러 스위프트, 아리아나 그란데, 빌리 아일리시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어느 지점을 짚었을 때 떠오르는 팝송은 그 시대와 그 시절을 상징한다. 구태여 긴 회고를 늘어놓는 것보다 그 시절 유행했던 노래 한 곡을 들려주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이었던가, 모 대학에서 주최한 영어캠프에 참가한 적이 있다. 이전까지 팝송을 들어본 적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제대로 인식하고 부르기 시작한 건 그 캠프에서 이 세 곡을 배웠을 때였다— Westlife의 <My Love>, The Carpenters의 <Yesterday Once More>, The Foundations의 <Build Me Up Buttercup>. 원래도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었던 데다, 제법 멋지게 들리는 외국어로 노래를 부른다는 고양감까지 차올라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팝송 수업에 임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캠프가 끝난 후, 나는 직접 팝송을 찾아 듣게 되었다.


그 시절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는 싸이월드가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자연히 '인기 있는 노래 = 싸이월드 BGM'이라는 공식이 성립되던 때였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아싸 기질이 있던 나는 싸이월드에 관심이 없었기에, 이 인기곡들을 접하는 것이 좀 느렸던 것이다. 당시 내 나이대 애들의 감성을 휩쓸었던 팝스타들의 면면은 지금 보아도 화려하다. 브리트니 스피어스, 켈리 클락슨, 에이브릴 라빈 등등. 하지만 내 마음을 사로잡은 가수는 따로 있었다. 바로 스위트박스(Sweetbox).






스위트박스(Sweetbox)는 1995년에 로스앤젤레스에서 프로듀서인 헤이코 슈미츠와 로베르토 "지오" 로잔에 의해 결성된 팝 음악 프로젝트 그룹이다.  (위키백과)


스위트박스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노래는 분명 들어보았을 것이다. <Don't Push Me>, <Life is Cool>, <Addicted>는 싸이월드뿐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자주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기에 힘입어 2006년 MBC <김동률의 For You>에 출연하여 공연한 적도 있으니, 비단 싸이월드 세대에게만 인기를 끌었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스위트박스의 노래는 한국인이라면 대체로 불호를 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듣기에 편안한 멜로디, 제이드 빌라론의 청량한 듯 허스키한 보컬은 유행을 타지 않는 캔버스 스니커즈 같다.


분명 밴드인데 앨범 자켓은 항상 제이드 혼자 촬영한다


사실 앞서 이야기한 대표곡들은 나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초등학생이었던 나의 취향을 저격했던 것은 <Cinderella>라는 곡이었다. 포털 사이트에 ‘싸이월드 인기곡’을 검색하면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Toxic> 다음간다 할 정도로 자주 언급되는 노래이기도 하다. 아기자기한 싸이월드의 감성에 쉬운 영어 가사, 동화적인 스토리가 제법 잘 어우러진 덕이었을까. 가사는 다음과 같다.


Cinderella are you really that happy?
신데렐라, 넌 정말 그렇게 행복하니?
Cinderella are you really that lucky?
신데렐라, 네가 정말 그렇게 행운아야?
I wanna know is your life like you dreamed
네가 꿈꿔왔던 삶과 같은지 알고 싶어

Here I am trying to find my way
난 방법을 찾는 중이야
I’ve kissed so many frogs but I’ve never found a prince
수많은 개구리들에게 키스했지만 왕자님을 찾지 못했어
I think they lied
걔네가 날 속인 것 같아
I was promised much more than this
이보다 더 많은 걸 약속받았었는데
Where’s my happy ever after?
어떻게 해야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Cinderella is the queen of the kingdom
신데렐라는 한 왕국의 왕비이고
Cinderella got the dream she was dreaming
신데렐라는 자신이 꿈꾸던 것을 이루었지
I wanna know where is my happy end
내 해피엔딩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어
Cinderella got a prince and a kingdom
신데렐라는 왕자와 왕국을 손에 넣었고
Cinderella got the dream she was dreaming
신데렐라는 자신이 꿈꾸던 것을 이루었지
I wanna know where is my fairy tale?
내 동화는 어디에 있는 거야?

Something’s wrong
뭔가 잘못됐어
’cause all my glass shoes break
내 유리구두가 모조리 부서져 버렸는데
and no one’s ever helped this damsel in distress
누구도 곤경에 처한 아가씨를 도와주지 않았거든
To hell with this
집어치워
I’m not gonna waste more time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어
I won't wait to find prince charming
백마 탄 왕자님이 나타나길 기다리지 않을 거야
.
.
.


가사가 정말 재미있다. 인생 역전한 신데렐라를 부러워하며 왕자님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도, 이 노래의 결말—왕자고 뭐고 때려치워!—도 아주 마음에 들고. 어렸을 땐 그저 웃기다 생각하고 말았었지만 지금 보니 상당히 풍자적인 것 같기도 한데, 실제로 무엇을 의도하고 쓴 가사인지는 모르겠다. 헛된 꿈을 좇아 시간 낭비하는 사람들을 비꼬고 싶었던 것인지, 그저 신데렐라와 관련된 노래를 쓰고 싶었던 것인지. 아무렴 상관없지만, 주인공이 왕자 없이도 스스로 해피엔딩을 쟁취하는 결말이길 바라는 마음은 있다.


다른 곡들보다도 이 <Cinderella>야말로 ‘스위트박스만이 할 수 있는’ 노래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가사만 보면 가요보다는 동요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데다 멜로디도 무척 간단해서 자칫 유치하게 들리기가 쉽다. 만약 브리트니 스피어스나 비욘세처럼 화려한 스타일의 팝가수들이 이 곡을 불렀더라면 스니커즈 밑창에 힐을 덧댄 것처럼 거대한 위화감이 느껴졌을 것이다. 몇 년이 더 지나 고등학생이 된 내가 리아나가 아닌 테일러 스위프트와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은, 코 묻은 돈으로 스위트박스의 앨범을 사던 순간부터 정해진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Love Story>와 <Speak Up>를 부르던 테일러 스위프트의 세상은 분명 <Cinderella>와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아주 오랜만에 스위트박스의 노래를 찾아보았다. 강산이 변하고도 남는 시간이 흘러 K-POP과 뮤지컬, 트로이 시반을 좋아하게 된 나의 음악 취향은 분명 그 시절과 많이 다를 것이다. 그러나 첫 소절, “Cinderella, are you really that happy?”를 듣자마자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난 듯한 반가움과 함께 ‘그래 이 노래 좋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을 보면, 카세트 테이프로 스위트박스의 노래를 들으며 즐거워하던 나는 작아지긴 했을지언정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내 안 어딘가에 남아있는 모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되감을 수 없기에 오래도록 바라보게 되는 사각 풍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