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여자)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vol.1
신념이 강한 여성의 목소리는 맑다. 또렷하다. 강인하다. 문소리 배우의 목소리가 그렇다. 여기서 말하는 목소리는 단순히 목에서 나오는 소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말에는 많은 것이 포함 되어있다. 그 사람의 가치관, 소신, 일상, 어휘 선택 기반, 무엇에 웃는지, 무엇에 분노하는지 까지.
문소리 배우의 또렷한 목소리를 처음으로 들은 건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2017)’부터였다. 직접 각본·연출·출연을 맡아 한국 사회에서 '여배우'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든지,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걱실거리는 마음으로 보던 와중에 경악을 금치 못한 장면이 있다. 초면인 남성이 문소리 배우더러 “저 문소리 배우 팬이에요. 그 영화 되게 재밌게 봤는데 제목이 뭐였더라? 왜, 그, 소리씨가 약간 병신같이 나온 영화 있잖아. 크큭.”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이름과 얼굴이 알려진 ‘여배우’라고 해서, 이렇게 무례한 발언에도 웃고 넘겨야만 한다니. ‘여배우는 오늘도’를 보며 사회 전체가 ‘여’배우라고 타자화하는 것에 분노하기도 했지만, 가장 크게 든 생각은 아이러니하게도 “목소리를 내는 여성이 되자”였다.
'여배우는 오늘도'를 보기 전까진 문소리 배우가 여성으로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죄송하다.) 위에 등장한 영화 속 남성이 제목을 기억해내지 못했던 바로 그 영화, '오아시스'를 촬영할 당시에도 문소리는 분명한 목소리를 냈다. 2002년 직접 작성한 글에서 발췌해보자면, “연출부 회의에 참석하던 나는 ‘공주’가 자신을 강간하려 했던 ‘종두’와 사람에 빠질 수 있는지에 대해 감독님과 격렬한 토론을 벌였다. 강간당하는 것 자체도 납득이 안 되고 그런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더더구나 이해가 안 됐다. 토론을 하면 할수록 남자 스탭들과 코드가 안 맞았다. 나중에는 울고 불고 싸우면서 얘기를 했다.”고 한다.
수많은 남성 스탭에 맞서 홀로 싸웠지만, 해당 장면은 삭제되지 않고 버젓이 러닝타임 내 등장한다. 그럼에도 문소리 배우는 포기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크게 목소리를 내기 위해 메가폰을 잡았다. 그리고 세상에 이렇게 소리치는 영화를 만들었다. “젠장, 여배우 드러워서 못 해먹겠다!” (‘여배우는 오늘도’ 중 대사)
그 뒤로 문소리의 목소리는 영화계에서 더 큰 공명을 만들고 있다. 여성 주연 3인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세자매(2021)'가 그 방증이다. ‘세자매’에서 둘째 ‘희숙’ 역을 연기한 김선영 배우의 남편인 이승원 감독의 작품인데, 한국영화계에 드문 여성서사 영화여서 그런지 투자 유치가 어려웠다고 한다. 투자가 안 되어 영화 제작 자체를 엎을 뻔 했다는 소식을 들은 문소리가 투자자로 나서며 영화는 세상에 나오게 됐다.
여성의 목소리를 담은 영화가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할 때 흔쾌히 자본과 커리어를 내어주고, 동료 여성에게 힘을 줬던 문소리처럼, 더 많은 여성의 목소리를 세상에 낼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뉴스레터 '좋은 (여자) 사람 소개시켜줘'도 비슷한 궤를 걷는다. 여성들의 목소리를 더 많이 퍼뜨리기 위해 우리가 선택한 ‘목소리’의 한 방법이다.
이 글을 읽는 여성들이 모두 세상에 목소리를 냈으면 한다. 한 사람의 목소리는 작은 외침이지만, 여럿의 목소리는 함성이 되는 법이니까.
‘한국 영화 100주년’을 맞아 특별한 기획을 준비하며 ‘여자’에 집중해보고자 했습니다. 여배우의 삶을 한 명이라도 더 들여다보고자 했고 여성 감독에게 귀를 기울였고 여성 스태프에게 카메라를 들이밀었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받아야 할 박수를 받지 못한 과거의 시간에 뜨거운 환호성을 질러 노고를 치하하고 싶었습니다. 기록되지 않은 여성 영화인의 역사에 환한 조명을 켜고 싶었습니다. 지금 세상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는 그녀들이 쌓아 올린 결과물이니까요. - 문소리, 보그 코리아
*본 글은 뉴스레터 좋은 (여자)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에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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