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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희 Feb 17. 2022

마음이 종종걸음 치는 날엔, '걷기왕'

노가리클럽 2월호

리코더 타이타닉을 OST로 쓰는 미친 영화를 아시나요? 바로 제가 영업할 작품입니다. <걷기왕>은 선천적으로 탈것을 타지 못하는 만복(심은경 분)이 주인공입니다. 비행기, 자동차, 자전거, 심지어 소순이(수컷입니다.)도 못 타는 만복이는 집에서 학교까지 매일 아침저녁으로 걸어서 등하교를 합니다. 무려 왕복 4시간 거리를 말이죠.


그 모습을 본 담임 선생님(김새벽 분)은 만복이가 걷는 데 재능이 있는 것 같다며 육상부에 들 것을 추천합니다. 코치 선생님은 달리기와 걷기 사이 어드매 쯤인 경보 종목을 배정해주지만, 만복이는 예상보다 운동에 소질이 없었죠. 그치만 이제 와서 때려치우자니 좀 애매해집니다. 공부를 썩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운동은 왠지 해볼 만 해 보이고, 주변의 반응도 좀 신경 쓰이죠. 


목숨걸고 경보에 임하는 수지 선배(박주희 분)는 그런 만복이가 고까워요. 재미 삼아 설렁설렁 하는 만복이를 보니… 거친 말로 'X가리 꽃밭' 같아 보이거든요. 결국 둘은 크게 부딪히고, 수지 선배는 만복이에게 "너 같은 애들 한심하다"며 아픈 말을 쏟아냅니다.


만복이는 교실로 돌아오는 길에, 복도에서 리코더를 부는 학생에게 담임 선생님이 음악 쪽 진로를 권유하는 모습을 발견해요. 자신에겐 사실 아무런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달은 만복이는 어쩐지 억울한 마음이 들어 엉엉 울며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때 OST로 리코더 타이타닉이 깔려요. 지난 과거 속 한때 만복이었던 나의 모습이 떠올라 같이 울다가 어느새 실실 웃고 있는 기이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영화 '걷기왕' 스틸컷


만복이는 불안해집니다. 다들 뭔가 될 것 같은데 나만 아무 것도 안 될 것 같거든요. '내 인생 어떻게 되는 걸까' 고민이 깊어질수록 불안해진 만복이의 마음은 자꾸만 종종걸음을 쳤을 겁니다. 인생이 무조건 빨리 달려야 하는 레이스인 줄 알고, 양옆의 트랙을 곁눈질하며 달렸던 지난 날이 떠올랐어요. 인생이라는 트랙 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만의 속도를 찾는 일인데 말이죠.


만복이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맹훈련에 돌입하지만 순탄치 않습니다. 중요한 대회는 서울에서 진행되는데, 강화도 집부터 서울까지 가는 방법이라고는 튼튼한 두 다리로 걷는 것밖에 없기 때문이죠. 일반적인 영화였다면 이 모든 걸 이겨내고 끝끝내 ‘성취’를 거머쥐는 순간을 극적으로 그려내겠죠?


하지만 처음부터 말했듯, 우리의 <걷기왕>은 일반적인 영화가 아닙니다. 일반적인 영화라면 리코더 타이타닉을 OST로 쓰지도 않았겠죠. 아등바등 안간힘을 다해야 마땅할 레이스 위에서, 만복이는 의외의 선택을 합니다. 과연 만복이는 어떻게 됐을까요? 영화로 확인하세요! (김경식 빙의)


| 노가리클럽의 '걷기왕' 추천 한줄평

비탈길 위에서 홀로 눈치보며 달리던 어린 나에게 건네는 말, "우리 그만 뛸까?"


*본 글은 뉴스레터 '노가리클럽'에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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