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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희 Jan 17. 2023

옥상에서 만나, 시스터.

좋은 (여자)사람 있으면 소개 시켜줘 vol.10

미세한 결이 맞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아요. 이게 무슨 크로와상같은 소리냐 할수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을 만나본 이는 압니다. 어떤 것에 웃고 어떤 것에 울고, 또 어떤 것에 분노하는지에서 '어떤'이 일치하는 사람은 정말 귀하다는 걸. 그런 사람을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것도 쉽지 않기에, 책을 읽다가 저자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훨씬 반가워요. 모든 문장을 뜯어 나노단위로 맛보고(?), 밑줄을 북북 그어대면서도, 줄어드는 분량이 아쉬워 야금야금 소중히 읽게 되죠. 정세랑의 책 『옥상에서 만나요를 처음 읽었을 때 그랬어요.



『옥상에서 만나요는 총 아홉 편의 소설이 수록된 단편소설집입니다. 그중에서도 책과 동명의 단편소설을 읽을 때, 나만의 크로와상 작가를 찾았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옥상에서 만나요」는 고충을 겪은 사회초년생 여성이 미스테리한 방식으로 해결법을 체득해나가는 과정을 그립니다. 이 과정에서 같은 길을 먼저 걸었던 여성 선배들과의 연대가 드러나는데, 자연스레 주변 언니들의 얼굴이 책 위로 둥실둥실 떠올랐어요.


"회사의 다른 사람들도 모두 알고 있었어.

우리가 더러운 관행이지만 

아무도 바꿀 의지가 없어 

계속되는 일을 하며 돈만 까먹을 뿐, 

생산적인 일은 하나도 하지 않는다는 걸.

(중략)

언니들이 아니었으면 

난 정말 뛰어내리고 말았을거야.

『옥상에서 만나요』 94 - 95p


이 부분에 밑줄을 그은 후 옆에 이렇게 메모를 해두었어요. '떠오른 이름들에게 잘 해야지'. 사실 페미니즘의 F만 꺼내도 공격의 타겟이 되기 쉬운 요즘, 여성연대에 관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더구나 정세랑 작가는 인권, 동물권, 채식, 지구 환경 등 혐오를 쉽게 내비치는 족속들이 서슴없이 혐오하는 것들을 지켜내고자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어떻게 매번 그럴 수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말이죠. 그리고 그 궁금증은 책 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를 읽고 감탄으로 변했죠.


"막힌 벽. 제한선.

‘너는 여기까지만 해’ 하고

가로막는 손이 나타나면

함께 넘어갈 수 있을 거예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더 나빴던 과거에도 자기 확신을

잃지 않았던 여성들처럼요.

(중략)

혼자 걸을 때에도 함께라는 걸 알고 나자

벽들이 투명해져요.

벽을 짓는 사람들보다 멀리 걸어가기로 해요."

『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 14 - 15p


한국 문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있는 정세랑이라는 인물을 새삼스레 좋은(여자)사람으로 소개하는 이유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정세랑의 글을 좋아하는 여성이라면 한번쯤, 벽에 부딪히는 듯한 무력감을 느껴봤을 것이라 감히 추측해봅니다. 그 모든 여성들이 벽을 짓는 사람보다 멀리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 더이상 무력감과 답답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때가 오면, 옥상에서 만납시다, 시스터.*


* 『옥상에서 만나요』 116p 차용


*본 글은 뉴스레터 좋은 (여자)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에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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