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리클럽 소한 편
한 달에 한 번 깠던(!) 노가리 좌판이 이제 절기마다 열립니다. 계절에 물이 물씬 올랐을 때, '오늘은 아무 날도 아닌 날'이라고 생각한 어느 날에 여러분의 메일함에 도착해 시끌시끌 수다를 떨어보려고 해요. 여러분은 그저 함께 즐겨주시면 돼요. 그래서 오늘이 무슨 날이냐고요?
소한 小寒
24절기 중 스물 세 번째 절기로, '작은 추위'를 뜻합니다.
하지만, '소한 얼음이 대한에 녹는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실제로는 소한이 추운 경우가 많다는 사실!
'작지만 매서운 추위를 뽐내는 소한'을 맞아, 노가리 클럽이 영업합니다.
소한을 맞아 소개할 작품은 김보라 감독의 영화 <벌새(2019)>입니다. 소한과 벌새가 무슨 상관이냐 싶으실 텐데요. 인트로에서 말씀드렸듯 이름만 들으면 소한보다 대한이 추울 것 같지만, 사실 절기 중 가장 추운 때는 소한이라고 해요.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갔다가 얼어 죽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죠. 이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작다고 얕보면 안 된다는 메시지로 읽히더라고요.
<벌새>는 관객수 14만명을 기록했는데, 작은 인디 영화의 성과로는 예상하기 힘들 정도의 많은 관객수였어요. '벌새단'이라는 팬덤까지 형성되며 인디 영화도 N차 관람하는 문화를 정착시키기도 했고요. 백상예술대상 '영화감독상', 청룡영화상 '각본상' 등 국내 시상식은 물론, 베를린국제영화제 '대상', 시애틀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등 해외 시상식까지. 2020년 기준 59관왕을 기록하는 등 수상 내역은 말하기 입아플 정도죠. <벌새>의 여파로,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이옥섭 감독의 영화 <메기(2019)>도 관람객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어요. 인디 영화의 저변을 넓히고, 관객들의 시야까지 확장시켰다고 볼 수 있죠. 소한이 주는 메시지에 딱 맞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벌새>를 보자마자 인생영화가 된 사람으로서 적고 싶은 말이 많지만 영업의 지면은 유한하므로, 주인공 '은희'의 한문선생님 '영지'가 남긴 마지막 편지만 옮겨 적겠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거든요!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 영화 <벌새> 중
다 보고나면, 영화가 끝나도 끝난 것 같지 않고, 영화 속 메시지가 계속해서 인생을 따라오는 느낌이 듭니다. '영지'가 '은희'에게 알려준 대로, 너무 힘들어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을 땐 가만히 손가락을 움직여보며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스스로에게 응원을 보내게 돼요. 삶을 부정하게 될 때면 '영지'의 마지막 편지 구절을 가만히 읊조리며,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고 긍정하게 돼죠. 새해엔 어울리지 않는 영화일 수 있겠으나, 언젠가 당신이 힘들 때 꼭 벌새를 만나봤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벌새>는 왓챠, 넷플릭스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본 글은 뉴스레터 '노가리클럽'에 발행되었습니다.
노가리클럽은 매달 15일 발송됩니다. 덕질할 때만 생태 눈깔이 되는 여성 셋이 모여 각자 좋아하는 작품을 추천합니다. 영화, 음악, 뮤지컬, 책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영업합니다. 저희와 함께 노가리 까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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