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살 봄이가 고흥에 와서 일곱 살 한 해를 보내고
졸업식을 맞이하였다.
유치원 교실에 걸려 있는 봄이 얼굴 사진을 보니
아이가 얼마나 컸는지 느끼곤 새삼 놀랐다.
내 손 위에 조그만 아가가, 내려 놓으려고만 하면
울음을 터트리는 아가를 어찌해야 할지 몰라
안아서 재우던 지난 날이 얼마 전처럼 가까운데 말이다.
이제 봄이 오면 봄이는 학교에 갈 것이다.
내가 어릴 적 학교에 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 였나
잠시 생각이 들었다. 내게 학교는.. 따스했나..
아니면 낯설고 두려웠나..?
우리 봄이에게는 따스한 품 같은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마치 눈보라 치는 겨울 밤 문을 열고 나서는 아이에게
겨울 외투 한 벌 입혀 주는 정도의 것이라 느낀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전부.
그리고 언제든 맞이할 따스한 품 같은 집에서 기다리는 것.
지금의 나에겐 그 일이 가장 보람되리라 믿는다.
봄이의 어린 시절 학교도 그런 따스한 느낌과
기억으로 남았으면 한다.
대학 학과 장재원 선배가 아들 한얼이를 데리고
멀리 강원도 홍천에서 고흥을 찾아왔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을텐데 기어코 왔다.
서너살때 만났던 한얼이가 번듯하고 아름다운
모습의 어린이가 되어 왔다.
우리 집에 있는 내내 봄이와 좋은 친구가 되어
신나게 놀았다. 한얼이와 봄이는 잘 맞는 친구다.
날이 좋아 바다엘 갔다.
겨울바다는 무척 조용하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아이들은, 특히 바다 구경 쉽지 않은
한얼이는 겨울 바다라도 마다하지 않고 신발과 양말을
벗어 던지고 온몸을 던져 모래놀이를 한다.
그날 밤 봄이는 말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모든 것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재밌었다고,
너무 재미있었다고 말이다.
생각해본다. 내가 원하는 일,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니다.
고작 겨울 외투 한벌, 고작 재미있었다는 말을 듣는 것.
그것이 아이의 전부, 또한 부모의 전부.
한바탕 겨울바다에서 놀고 나온 아이를 맞이하여
따스한 코코아 한 잔을 마시게 하는 이 일들이,
이 소박한 기억들을 지켜낼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의 아이들에게까지도..?
1.48도(섭씨14.98)
2023년은 산업혁명 이후로 전세계 평균 기온이
가장 높았던 해로 기록되었다.
이전 기록은 2016년 섭씨 14.81도 였다.
2015년 파리기후협약 이후 지구가 스스로 견뎌내고
이겨낼 수 있는 기온상승의 마지노선을 1.5도로 발표했다.
코로나를 기점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후위기의 현실 앞에
많은 일들을 하였지만 오늘의 이 발표는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모든 것이 서서히, 예고된 대로 진행되는 것 같아 두렵다.
이런 현실 앞에서도 나는 부모로서 아이들과
아이들의 아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너무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오늘은 그렇게 무거운 마음을 떨쳐내지 못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