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티, 검은색 바지, 검정색 신발.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정. 우리 딸도 같이 근무하는 근장학생도.
큰 아이 초등학교 6학년 때 부모참관수업에 간 교실에서 무채색의 세상을 처음 보았다. 스물일곱 명 정도의 학생 대부분이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회색이 대부분이었고 흰색과 검은색이 더러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까지만 해도 알록달록한 색깔 옷을 잘 입던 아이가 어느덧 색은 다 빼고 무채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그 교실 모습을 보고 색깔 옷을 입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무채색의 또래집단에서 혼자 파랑, 분홍, 노랑, 빨강의 색이 들어간 옷을 입으면 튀는 것은 물론이고 혼자만 따로 노는 위화감을 느낄 것 같았다. 또래 문화가 중요한 시기에 그런 선택은 엄두가 안 날 것 같기도 했다. 다들 입듯이 내 아이도 자기도 그 선호 속으로 들어간 거 같았다.
맥알바를 하며 그곳에서 본 스무 살, 스무 살 초반의 아이들에서도 또 남자아이들에게서 더 무채색의 특징이 두드러져 보였다. 다들 검은색 롱패딩을 입을 때-우리 아이도-회색 반패딩을 입은 게 멋있음을 추구하는 듯해 보였다. 검정세상에서 회색은 몰개성에서 선택이 덧대진 느낌이었다.
그때 처음 무채색의 시대가 보였다. 흰색이 기본색인 나와 달라 그게 두드러져 보였는지도 모른다. 흰색 운동화가 기본인 나와 달리 검은색 운동화가 기본인 학생들을 보았다.
물론 검은색 마니아인 내 남편이 있다. 무슨 색으로 할 거야 물으면 검정이 기본인 사람. 차를 살 때도 무슨 색으로 살까를 물으면 검은색인 사람. 나는 흰색을 선호하고 있어 그저 웃어넘겼지만.
검은색을 선호하는 블랙 마니아인 남편은 개인의 취향으로 보였다면 6학년 때 아이의 교실에서 본 색깔 있는 옷을 입으면 안 될 것 같은 회색이 대부분인 후드티 교복을 입은 모습과 스무 살 초반 대학생들이 남, 녀 구분 없이 대부분 검은색 티와 바지를 입고 어쩌다 흰 티를 입고 회색 운동복은 문신처럼, 교복처럼 입는 걸 보며. 흰색이 기본인 시대에서 큰 나의 눈에는 이 아이들은 검정이 기본인 시대에서 크고 있는 거 같아 보였고 그들에게는 검정이 기본인 색이 될 것 같았다.
친할아버지의 장례는 할아버지 집에서 했다. 시골 동네 사람들이 모두 할아버지의 관을 들고 빨강, 파랑, 노랑 장식이 달린 깃발을 들고 마을을 돌고 어른들은 흰색의 수의를 입었었다.
지금의 장례식장은 검은색 수의를 입고 여자들은 머리에 검은 핀을 꼽는다. 손님으로 자리할 때는 검은색 정장이나 검은색 옷을 갖추어 입는다. 외국에서의 장례문화와 접목된 것 같다.
코로나 때 미국의 대통령 트럼프 부부는 검은색 마스크를 했다. 미국 사람들은 검은색 마스크를 기본으로 했다. 우리나라는 마스크가 흰색이 기본이었고 대부분 흰색을 사용했다. 그게 기본이었다. 그러던 것이 검은색이 겸용으로 퍼져갔다. 검은색 마니아인 우리 신랑도 검은색을 더 선호했다.
문화적으로 흰색이 우선한 우리나라와 검은색이 우선한 외국(미국과 유럽-프랑스는 그걸 넘어 미의 추구로 흰색의 마스크를 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의 차이가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만남자리에 검은색 마스크를 한 bts멤버들도 보았다. 글로벌한 인기를 얻는 보이그룹의 스타일리스트가 선택한 마스크 색이었을 수도 있고 멤버들의 선택일 수도 있다. 내 눈에는 그런 게 보였다는 거였다.
나는 흰색 수의가 검은색으로 변한 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게 조금은 아쉬운 사람이니까. 내겐 흰색이 익숙한데. 흰색 마스크, 흰색 운동화가 기본인데. 흰색이 기본인 문화에서 개인취향이 블랙인 우리 신랑 같은 사람과 달리 문화가 전체적으로 블랙이 기본이 된 세상 같아 아쉬움을 느낀다.
다시 스무 살처럼 대학교를 다니면서 스니커즈 운동화를 사 신어야겠다 생각했다. 예전에도 사서 신었던 흰색을 생각했다. 그리고는 아이들의 신발이 보였다. 검은색의 스니커즈가 대부분이었다. 더러 아이보리색이 있었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만학도 여학생들도 요즘 다들 신는 검은색 스니커즈를 신는 게 보였다. 유행과 흐름에 따라 검은색을 선택하게 된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던 시각에 있던 내가 신랑이 중2딸아이에게 사준 검은색 아디다스 신발을 신게 됐다. 아이가 안 신어 신게 된 거지만 그걸 신으니 편했다. '나는 흰색 운동화가 기본인데 지금 문화는 검은색이 기본이라 다들 검은색 운동화를 신어서 나와 달라 아쉬워' 라며 속으로 꿍얼 대던 마음이 사라졌다.
검은색 신발이 옷과 맞춰 입기가 편했고 멋스러웠고 다른 검정티나 바지에 더 손이 가게 했다. 취향을 검은색 쪽으로 살짝 틀어줬다. 신발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변화가 있었다. 생각의 변화, 마음 편해짐의 변화.
바깥에서 떨어져 바라볼 때는 내 시각에 갇혀 생각하고 답답함과 아쉬움을 갖었다. 우연히 그 세상에 한발 담그고서 다름이 아닌 같이 함으로 편해졌고 그전의 시각차를 생각하며 거리 두던 불편했던 마음이 사라졌다. 검은색 운동화가 편해서, 다른 옷에 잘 어울려서, 옷 맞춰 입기에 좋아서 등. 깨닫는 이유가 늘어나면서 어색하고 차이로 구별 짓던 것이 허물어졌다.
아직 옷은 흰색을 좋아한다.(검은색 옷이 내 갈색 피부에 안 맞아서) 오늘 검정티와 검정바지를 입고 검정운동화를 신은 스물셋 남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블랙세상이라는 단어가 떠올라 글감으로 생각하고 순간의 생각을 바로 글로 쓰려고 들어온 건지도 모른다.
발 담근 운동화의 세계로 검은색 운동화는 이해했고 편해졌는데 옷은 아직인 거 같다. 이것도 입고 편해지고 멋있음을 알고 선호하게 되면 나와 구별 짓는 생각도 덜하지 않을까.
이것도 오늘 글을 쓰며 알게 되고 깨닫게 되었다.
검은색 선호에 대해 쓰려고 왔는데 구별 짓던 시각이 경험해 보고 허물어질 수 있는 거라는 걸 알게 됐다.
생각난 거 먼저 쓰기로 하고 쓴 나를 칭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