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순간
어딜 가나 취미로 배우러 간 곳에는 늘 고인물이 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초보 중의 초보는 언제나 나였다. 관심사가 많아 새로운 시작이 많았고 수영, 발레, 도예, 글쓰기까지 어느 분야든 처음이라는 단어가 항상 따라왔다.
문제는 초보반이라고 적혀있어도 정작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이미 그 분야를 접해본 이들이라는 점이다. 독학으로 기초를 다진 사람, 예전의 배움을 전문화하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만 백지상태였다. 진도가 나갈수록 그 거리는 더 선명하게 드러났고, 용어에 대한 이해와 추후의 방향에서조차 생각의 차이가 느껴졌다.
관심사도 많은데 그 순간엔 매번 진심으로 몰입한다. 꽂힌 분야는 배우고 익혀서 잘 해내고 싶은 의지가 샘솟았다. 정말 왕초보로 시작하는 사람을 위한 수업은 없는지 찾아도 봤지만, 먼 곳에서 이루어지는 수업뿐이었다. 이미 수차례의 경험으로 새로운 배움터에서 실력의 차이를 생생하게 마주해보기도 했으나, 그보다 배우고 싶은 열망이 더 크기에 고인물이 있을 걸 알면서도 초보반을 등록하게 된다.
최근엔 그림에 마음이 갔고 운 좋게 기초 드로잉 수업을 등록했다. 수업 계획서에는 점, 선, 면을 그리는 기본부터 배운다고 적혀있었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미 오랜 시간 그림을 그려온 사람들의 그림에는 선 하나에도 결이 느껴졌다. 가장 큰 간극은 '이제 자유롭게 그려보세요' 하는 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머뭇거렸지만, 다른 사람들은 우선 그리고 봤다. 우선 그리고 보는 것. 맞아 그게 중요하지. 필요한 태도는 배워간다.
도망가고 싶은 마음 눌러내며 잘 해내고 싶은 마음 잃지 않기.
잘하는 이들의 태도를 바라보며, 배우고 싶은 게 뭐든 내 속도대로 배워보기.
그간의 도전으로부터 이런 마음가짐의 근육이 붙었다. 성장해 가는 게 느껴지는 것이 잔잔히 설레기도 한다.
‘초보지만 초보가 아닌 초보반’
지금까지 취미 수업을 들으며 느낀 후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도 이제는 그 자리가 불편하지 않다. 나는 여전히 배우고 싶고 어설픈 선 하나라도 그려보고 싶다. 무언가를 배우는 기쁨은 여전히 나를 움직이게 한다. 온전한 초보라는 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순간임을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