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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름 May 13. 2023

퇴사할 것처럼 자리를 치우세요

오늘의 철학 한잔 | 깨진 유리창의 법칙


# A회사

단체 메시지로 전사 공지가 도착했다.



<클린 오피스 대회를 개최합니다>

  - 일시 : 0월 0일 퇴근 시간 이후

  - 장소 : 본인의 자리

  - 방법 : 총무팀에서 퇴근 후 불이 꺼진 사무실을 돌아다닙니다. 가장 깨끗한 자리와, 가장 더러운 자리를 선별할 예정입니다. 가장 깨끗한 자리 중 1등을 선정해 상품을 드립니다.



"방금 쪽지 봤어? 이거 완전 대회를 빙자한 감시 아니야? 빅파더냐고."

옆자리 박과장이 잔뜩 화가났다.

"과장님은 근데 좀 치울 필요성이 있어요~~그리고 빅파더가 아니구 빅브라더...".

여름은 호호 하며 괜히 박과장을 탓해본다. 하지만 여름의 눈에도 이 대회는 요상하기만 하다.


이상하게 이 대회는 본부장, 실장들이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본부 회의에서도 청소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대회를 잘 준비할 것을 당부했다.

여름은 대회날에 맞춰 자리를 청소했다. 물티슈로 책상을 닦아 먼지도 없애보고,

낱장으로 정리되지 않은 인쇄물을 클리어 파일안에 보기 좋게 넣어 책상 위 책장에 꽂았다.


여름은 이제 됐겠지 하고 퇴근해서 지하철역으로 가는 도중 팀원 지원에게 전화를 받았다.

"응 지원씨 무슨일이야?"

"대리님 얼른 오세요. 실장님이 대리님 책상 치워야한다고 난리에요."

여름은 의문을 가지며 사무실로 돌아갔다.


실장은 여름에게 클리어파일 안에 넣어둔 서류들과 놓아둔 다이어리가 문제라며,

이 모든 자료가 대외비라고, 시건 장치 안에 다 넣어야 한다고 다그쳤다.

'이게 대외비라고..?' 대외비라 해도 사무실은 모두 직원만 들어올 수 있게 보안 장치가 되어 있지 않는가.

여름은 툴툴대며 자리를 다시 치우기 시작했다.


실장은 그녀의 자리를 떠나며 말했다.

"퇴사하는 사람처럼 깨끗하게 치우라고."



# B회사

B회사의 총무팀 자리는 100m 밖에서도 알아볼 수 있다. 총무팀이 아니라, 만물상이다.

비어 있는 책상 위는 물론, 그 아래까지 온갖 물건과 박스가 가득하다. 먼지는 옵션이다.

총무팀 뿐만 아니라, 다른 팀 자리에 가봐도 책상 위에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이 놓여 있기 일쑤였다.


'이렇게 더러운데 아무도 뭐라 안한다고?'


여름은 회사 인쇄물을 제작하는 담당자로서 재고 현황을 살피러 타 부서의 창고에 가보았다.

B회사는 총 3개 층의 사무 공간을 쓰고 있으며, 창고는 6개다.

6개의 창고 모두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선반에 올리지도 않은 박스들이 바닥에 쌓여 있었다.

박스를 뜯고 남은 테이프의 흔적이 바닥에 가득했다.


사실 여름도 어느 한편으로는 편했다.

적어도 창고와 내 책상을 감시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창고 정리를 빠릿빠릿하게 하지 않아도 되고, 버릴 것이 있어도 나중에 기회가 될 때 버리면 되었다.

(누군가는 버리겠지~)

여름은 창고 바닥에 종잇장들이 밟히는 것을 알면서도 줍지 않고 그냥 나와버렸다.


참고로 B회사는 매출이 몇 조원에 이르는 나름대로 역사와 전통이 있는 제조회사였다.






Cheers! - 오늘의 철학 한잔


깨진 유리창의 법칙 (Broken Windows Theory)

 

유리창이 깨진 채로 방치된 상점이 있다고 하자. 사람들은 그 상점을 지나다니면서, 주인이 가게에 전혀 관심이 없거나, 그저 망해서 방치되어 있는 상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지나다니다 그 구멍 안으로 쓰레기를 넣을 수도 있다. 그리고 또 도둑들은 저 상점을 털어도 괜찮겠군. 하며 범죄 계획을 세울 수도 있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은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지켈링이 1982년에 만든 이론이다.


그 당시 뉴욕시는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었는데, 이와 달리 길거리는 지저분했고 범죄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와 경찰이 이러한 거리를 돌보지 않자 기업과 중산층은 교외로 빠져나갔다. 결과적으로 뉴욕시는 낮에도 위험한 도시가 되었다.


1995년 취임한 뉴욕시장 루디 줄리아니는 뉴욕시 정화사업을 추진했다. 더러워진 길거리를 청소하고, 범죄를 집중적으로 단속하고 처벌했다. 깨끗해진 길거리에서는 사람들이 쉽게 쓰레기를 버리기가 어려워졌다. 비로소 제대로된 도시가 된 것이다.






'데스크테리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책상 위의 인테리어는 나름대로 기업의 문화와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 측면에서 두 회사를 비교해보자.

A는 직원들의 자율성에 맡기기 보다는, 강박에 가까울 정도의 통제를 일삼는 곳이다.

반면, B회사는 너무나도 <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충족하고 있다.

어떤 곳을 가도 정리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이 티가 나서, 모두 자발적으로 더러워지게(?) 된 것이다.


두 회사 모두 직접 겪어본 입장으로서, 어느 편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두 회사 모두 바뀌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구성원이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며, 자발적으로 적정선을 지키는 곳. 그런 기업문화 어디 없나요?

내가 과연 이데아를 쫒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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