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외국인 멤버, 토크콘텐츠 단독 출연이 갖는 의미

오당기가 보여준 내향형 인간의 토크쇼

by 김지영

연예인이 드라마, 영화, 음반 등 새로운 작품을 대중에 선보일 때 홍보 활동에 나서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작품 홍보 일정이 없음에도 예능에 출연하는 연예인을 두고 ‘의리 있다’고 말하는 표현이 생겨났을 정도다.


그중에서도 가장 익숙한 홍보 방식은 단연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다. 작품 이야기를 적당히 섞어가며,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함께 만들어진 얼굴과 목소리, 그리고 인간적인 면모까지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시청자는 그 과정을 통해 작품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한 번 보고 싶다”는 감정까지 얻게 된다.


하지만 모든 연예인이 예능에 능숙한 것은 아니다. 특히 예능 울렁증을 가진 출연자들을 대하는 MC들의 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초반부터 캐릭터를 살려주겠다며 더 짓궂게 몰아붙이는 경우, 혹은 최대한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출연자의 매력을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시청자에게 남는 인상은 분명히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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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BS Entertainment, 핑계고

이런 흐름 속에서 최근 ‘내향형’이라는 성향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가 되었고, 덕분에 유튜브에서는 화제성과 공감을 동시에 얻는 콘텐츠로 소비되고 있다. 연예계 대표 내향형 배우 엄태구를 전면에 내세운 ‘단순노동’ 역시 그런 맥락에서 탄생한 콘텐츠다. 특히 트와이스 채영 편은 조곤조곤한 대화와 비슷한 호흡 덕분에 보는 내내 부담 없이 편안했다.

출처: 워크맨 https://www.youtube.com/watch?v=9-83WeCsOSg&t=257s

아이돌 업계로 시선을 돌려보면, 이제는 그룹 내에 외국인 멤버가 포함된 경우가 너무나도 흔하다. 그래서 홍보 활동을 진행할 때면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은 멤버들은 대개 한국인 멤버와 함께 토크쇼나 예능에 출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최근 빠더너스의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에 2025년 가장 주목받는 그룹 중 하나인 올데이 프로젝트의 외국인 멤버 베일리가 단독으로 출연했다. 그것도 혼자서.

* 베일리는 엄밀히 말하자면 ‘한국계 미국인’으로 국적이 미국인이고 부모님은 한국사람이다. 그래서 사실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외모를 지녔지만 데뷔전까진 쭉 미국에서 자라 한국어가 서툴 수밖에 없다. 데뷔전부터 이미 태양, 에스파, 레드벨벳 등의 K-POP 안무에 참여한 코레오그래퍼로 먼저 이름을 알렸고, 리한나가 팔로우한 걸로도 유명했다.


외국인 멤버가 토크 콘텐츠나 단독 콘텐츠에 출연하는 경우를 떠올려보면 에스파 닝닝이나 트와이스 사나 정도가 먼저 생각난다. 이 둘은 이미 한국어가 자연스럽고, 특유의 당당함과 사랑스러움이 캐릭터로 자리 잡아 혼자 프로그램에 나와도 일정 수준의 재미가 유지된다.

(아래는 중국인, 일본인이 한국말로 서로 칭찬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해서..ㅎ)


출처: 일일칠 https://www.youtube.com/watch?v=MZ6rR5XRmWg


그런 점에서 베일리는 더 흥미로웠다. 아직 한국어가 서툴고, 무엇보다 내향적인 성향으로 알려진 신인이 단독으로 유튜브 토크 콘텐츠에 출연한다는 점이 꽤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궁금한 마음에 영상을 눌렀는데, 시작하자마자 14분을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보게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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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COMPLEX https://www.youtube.com/watch?v=u3ZXINeYwLo&t=37s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는 일반적인 먹방과는 다른 구조를 가진 콘텐츠다. 배달 음식을 주문한 뒤 도착 전까지 대화를 나누고, 음식이 도착해 먹기 시작하는 순간 영상이 끝난다. 장소도, 구성도 모두 편안하다. 억지스러운 리액션이나 식사 장면보다는 그저 자연스럽게 수다를 나누는 모습이 중심이 된다.


출처: 빠더너스, https://www.youtube.com/watch?v=qo74JUguIsk&t=398s


이 콘텐츠는 문상훈이 게스트를 위한 선물을 건네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날 역시 베이킹이 취미인 베일리를 위해 버터 디시, 키친 타이머, 오븐 미트를 준비했고, 담백하지만 진심이 담긴 엽서도 함께 전달했다. 과하지 않은데도 마음이 남는 문상훈 특유의 방식이다. 한국어에 서툰 베일리를 위해 어려운 한국말을 영어로 설명한 모습도 센스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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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베일리 역시 문상훈을 위한 선물을 준비했다. 본인에게 의미 있는 책 두 권과 후지필름 카메라, 올데이 프로젝트의 신규 앨범, 그리고 문상훈이 좋아하는 미드 ‘더 오피스’에 등장하는 머그컵까지.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선물과 상대의 취향을 고려한 선물을 함께 준비했다는 점에서 베일리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에 문상훈은 “너무 갖고 싶었는데 안 샀다. 베일리님이 선물해주실 것 같아서”라며 농담을 던졌고, 베일리 역시 이해했는지 표정이 너무 밝고 즐거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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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문상훈의 화법이었다. 한국이 아직은 낯선 베일리에게 무언가를 추천하는 상황에서 그는 “베일리의 속도대로 한국을 익혀가고 있겠지만”이라며 상대를 배려하는 말로 대화를 시작한다. 이 말이 특별하게 느껴진 이유는, 그 안에 어떤 정보가 있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이 문장은 설명을 시작하기 직전에 던져진 하나의 전제에 가깝다. 그리고 그 전제는 대화의 기준을 누구에게 둘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었다.


외국인 멤버가 예능이나 토크 콘텐츠에 등장할 때, 우리는 너무 익숙한 문법을 자주 마주한다. “모를 수도 있는데”, “한국어가 아직 어려울 수 있어서”, “제가 설명해드리면” 같은 말들이다. 대부분은 배려의 언어지만, 동시에 그 말들은 대화의 기준을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사람’ 쪽에 둔다. 상대는 이해해야 할 사람, 따라와야 할 사람이 된다. 그런데 “베일리의 속도대로”라는 말은 이 구조를 뒤집는다. 한국이라는 공간이나 언어가 기준이 아니라, 베일리라는 사람이 기준이 된다. 얼마나 빨리 익숙해져야 하는지도, 어디까지 알아야 하는지도 묻지 않는다. 지금의 속도를 평가하지도 않는다. 그저 각자의 속도가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대화를 시작할 뿐이다.


이어 “설명해주고 싶어서 신났다”고 자신의 감정을 먼저 드러내며 부담을 덜어냈다. 출연자의 이해 여부를 먼저 따지기보다, 자신의 감정을 공유하는 이 방식은 베일리를 훨씬 편안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언어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 진심만큼은 충분히 전달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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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의 흐름 역시 기존 예능과는 달랐다.

베일리는 그동안 예능에서 어린 시절부터 안무를 시작했고, 10대에 K-POP 안무가로 활동했다는 익숙한 이야기를 반복해왔다. 하지만 ‘오당기’는 가장 좋아하는 안무가 무엇인지, 본인이 만든 안무를 가수들이 무대에서 추는 걸 보고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기억에 남는 게 있는지 등 빠른 템포의 예능에서는 결코 묻지 못할 법한 질문들을 마구 던져주었다. 그렇기에 베일리의 당시 감정, 그리고 성격까지 더 이해가 잘 될 수 있었던 토크 콘텐츠였고, 덕분에 나를 포함한 여러 시청자는 그녀의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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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훈이 “재능이 있다는 걸 일찍 알았으면 더 신이 났을 것 같다”고 반응하자, 베일리는 오히려 그 이면에 있던 보컬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놓는다. 쉽게 꺼내지 않았던 솔직한 속내였다. 이에 문상훈은 “쉬운 것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아는 것도 중요하다”며 공감한다. 상대의 말을 한 번 더 정리해주고, 이해했다는 신호를 보내는 방식은 대화를 더 깊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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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당기'를 통해 개인적으로 잘 몰랐던 베일리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이렇게 깊이 들을 수 있어 좋았다. 기존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얘기했던 과거가 아닌 아주 어린 시절의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부모님은 베일리가 골프와 댄스를 병행하길 바랐고, 베일리는 두 살부터 열 살까지 이른 아침에 일어나 학교에 가고, 골프와 댄스를 반복하는 생활을 이어왔다. 그러다 결국 음악이 좋아 춤으로 이어졌다는 서사는 베일리를 한층 입체적인 인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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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베일리가 소감을 밝히는 장면에서는 뭔가 모르게 울컥하기도 했다. 멤버들 없이 혼자 토크 콘텐츠에 출연하는 일이 얼마나 큰 부담이었을까 싶었다. 그럼에도 베일리의 성향에 맞는 콘텐츠를 선택한 기획, 부담을 최소화한 진행, 그리고 그 자리에 홀로 서기로 한 베일리의 용기가 맞물리며 과장 없이 ‘베일리라는 사람’을 알 수 있는 좋은 콘텐츠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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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데이프로젝트의 두 번째 컴백 홍보를 살펴보면, 우찬은 타잔 애니는 핑계고, 영서는 이사배 ,베일리는 오당기로 등 멤버별로 성격과 강점에 맞는 채널에 출연했다. 이는 동일한 포맷을 반복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멤버의 특성과 콘텐츠 성격의 적합성을 기준으로 홍보 경로를 나눈 전략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과도한 연출 없이 각 멤버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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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리의 ‘오당기’ 출연은 신인 아이돌 홍보 전략도 이제 마구잡이가 아닌? 조금 더 전략적으로 변화했다고 느낄 수 있던 사례였다. 문상훈의 콘텐츠는 출연자를 즉각적인 재미의 도구로 소비하지 않고, 성향과 화법에 맞춘 대화를 통해 인물 자체에 집중하게 만든다. 이 안에서 언어와 성격이라는 제약은 감춰야 할 요소가 아니라, 인물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는 홍보의 효과가 노출의 양이 아니라 콘텐츠와 인물 간의 궁합, 그리고 그 안에서 형성되는 신뢰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는 웃음을 만들어내기 위해 출연자를 밀어붙이거나, 캐릭터를 빠르게 규정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출연자의 말 속도와 감정의 온도를 기준으로 질문의 깊이와 방향을 조절하며, 대화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기다린다. 이는 예능에서 흔히 요구되는 즉각적인 반응이나 재치와는 다른 접근이다.


베일리처럼 언어적 제약과 내향적인 성향이 함께 존재하는 출연자와 잘 어울리 수밖에 없는 포맷일 것이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 대신, 이해받고 있다는 감각을 먼저 제공하기 때문이다. 문상훈이 설명을 앞세우기보다 자신의 감정을 먼저 드러내고, 출연자의 말을 한 번 더 정리해 되돌려주는 화법은 베일리를 ‘신인 아이돌’이나 ‘외국인 멤버’라는 틀 안에 가두지 않는다. 그 결과 시청자는 베일리의 커리어나 설정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생각과 선택, 그리고 감정에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오당기’는 단순한 토크 콘텐츠를 넘어선다. 출연자가 얼마나 재미있는 말을 했는지보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태도로 이야기가 이끌어졌는지가 콘텐츠의 완성도를 좌우한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베일리의 단독 출연이 부담이나 위험으로 보이지 않고 오히려 설득력 있는 서사로 작동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상훈의 콘텐츠는 언제나 출연자를 ‘보여주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대화하는 존재’로 놓고 시작한다. 그리고 그 선택이, 신인에게는 드러낼 수 있는 여백을, 시청자에게는 인물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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