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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Jan 31. 2021

소울(Soul)

인생도 자격증이 있어야 하나요?

소울 / 2020 / 미국


감독 : 피트 닥터

출연 : 제이미 폭스,티나 페이, 다비드 딕스 등



 소울메이트, 소울푸드.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소울’은 꽤 중요한 단어다. 누군가의 소울푸드는 정말 먹어볼 만한 음식이며 누군가의 소울메이트가 된다는 건 인생 최고의 짝궁이라는 뜻이니 얼마나 좋은 찬사인가. 소울은 재즈에서도 빠져서는 안 되는 필수 요소이기도 하다. 태어나기 전 인간의 성격을 만드는 영혼들, 그리고 재즈 자체가 인생 목표인 남자의 이야기를 공통의 단어로 풀어낸 픽사의 신작 <소울>.


* 이하 내용은 영화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조 가드너는 뉴욕 최고의 재즈 뮤지션을 꿈꾸지만 계약직 교사로 살며 연주에 관심 없는 아이들을 데리고 밴드 수업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정규직 자리와 유명 밴드와 함께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동시에 찾아온다. 늘 꿈꿔왔던 무대였기에 고민도 없이 재즈 밴드를 선택했지만 우연한 사고로 삶 이전 단계의 영혼들을 키우는 ‘유 세미나’에 머무르게 된다.


 

 유 세미나는 태어나기 전 누군가의 성격과 영혼이 될 ‘소울’들을 키워내는 공간이다. 모든 소울들은 각자의 지구 출입증을 완성하기 위해 멘토와 매칭된다. 소울이 출입증을 완성하도록 돕고 그 출입증을 통해 지구로 돌아가려던 조는 하필 모두가 포기한 22번 소울의 멘토가 된다. 22번 소울은 ‘당신의 전당’, ‘모든 것의 전당’을 통해 지구의 삶을 배웠으나 정작 지구에 가고 싶어하지 않는 유 세미나의 골칫거리다. 


사실 그가 지구에 가고 싶어하지 않은 이유는 삶을 겉핥기했기 때문이다. 마더 테레사, 링컨처럼 역사에 족적을 남기거나 성공한 직업을 가졌던 멘토들은 22번에게 일상의 행복을 보여주지 못했을 것이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영혼에게 다짜고짜 스파크가 느껴지는 목표를 찾으라니 얼마나 부담스러울까. ‘모든 것의 전당’도 소울들에게 지구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보여주지 못한다. No smell, No taste, No touch. 전당에 마련된 피자는 냄새도 맛도 촉감도 느껴지지 않으니 그야말로 피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만 할 수 있다.



 22번 소울은 조처럼 평범한 멘토와 함께 지구를 여행하고, 하루를 제대로 살아보고서야 지구 출입증을 완성한다. 가을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의 바삭함, 막 나온 피자 한 조각을 베어 먹었을 때의 황홀함, 아빠 손을 잡고 가는 아이의 행복한 미소는 조에겐 그저 반복되는 일상이었지만 처음 삶을 살아본 22번에겐 반짝이는 순간이다. 22번은 완성된 출입증을 보고, 어쩌면 자신의 목표가 하늘을 바라보는 것, 거리를 걷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고백한다.


 우리도 어려서부터 직업을 인생의 목표로 세우는 훈련을 받는다. 새 학기가 시작하면 선생님과 친구들 앞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장래희망을 발표해야 했고, 꿈이 없으면 ‘커서 뭐 되려고 그러니?’ 란 가시 박힌 말이 돌아온다. 졸업 이후의 삶도 마찬가지다. 아직 인생 절반도 살아보지 못했는데 내 강점을 찾아 직업을 선택하란다. 그 이후 삶은 아직 살아보지 못했지만 사실 목표 따위는 필요 없을 것 같기도 하다. 하루 하루 재즈처럼 즐거운 순간을 찾아내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도 점점 든다. 물론 위인의 삶은 대단하지만, 그렇다고 원대한 목표 없는 일상을 보내는 게 잘못은 아니니까. 그리고 우리의 평범한 일상의 순간이 또 다른 이의 스파크를 만들어내는 소중한 불씨일지도 모른다. 조가 돈을 벌기 위해 했던 밴드부 수업이 한 아이에게 음악을 해보고 싶단 생각의 길을 열어준 것처럼.



You’re really good at jazzing!

 

 영화 대사 중 ‘jazzing’이란 말이 참 마음에 들었다. 물론 조는 그런 단어가 없다고 했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게 재즈라고 생각한다면 좀 더 재미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재즈는 잘 모르지만 좋아한다. 손 끝에서 가볍게 날아다니는 건반 멜로디와 기분 좋게 울리는 베이스의 리듬을 듣고 있자면 근거 없는 좋은 예감이 스멀스멀 피어나거나, 오늘 하루가 꽤 괜찮았단 생각까지 들게 해준다.


 일상도 재즈처럼 감상해 보는 것이다. 짧은 마디 안 연주자들의 변주가 곡의 맛깔을 더하는 재즈처럼 똑같은 일상의 순간도 한번씩 비틀어 ‘오늘은 좀 달랐던 날’로 기억해보는 거다. 혹은 근래 나눴던 대화 중 가장 좋았던 단어를 꼽아본다던가,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에 어울리는 곡을 선정한다면 인생의 목표에 다가서지 못한 못난 나를 반성하는 시간은 버리고 더 감각적으로 소중한 일상을 기억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상상력을 감각적으로 풀어내다


 영화에서 꽤 인상 깊었던 장면은 사람들의 무아지경 순간들을 표현한 장면이었다. 조가 피아노 연주에 몰입할 때, 농구 선수가 골을 넣기 직전 등이 한 공간에 모인다는 개념 자체가 신기했고, 가끔 22번 소울이 그런 몰입의 순간을 장난 삼아 깨뜨린다는 설명까지 유쾌했다. 또한 대부분 사람들의 소울이 특정한 순간에 이 공간에 오게 되는 반면, 길 잃은 소울들을 도와주는 미스터리한 인물 ‘문윈드’는 늘 이 공간과 지구를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다는 설정도 신선하다. 무거운 목표 없이 길거리에서 간판을 매일 즐겁게 돌리기 때문에 모든 순간이 무아지경인건지, 또 그래서 소울들을 구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건지 문윈드란 인물이 문득 궁금해진다. 스핀오프 단편이라도 나왔으면 하는 건 너무 큰 욕심일까.



 무심코 들어갔던 술집에서 마음을 사로잡은 재즈 공연을 보고 나온 느낌이다. 공연에서 귀에 꽂혔던 곡을 메모했다가 다시 찾아 듣고, 오늘의 연주자는 누구였는지 검색해보며 곱씹어 보고 싶은 하루기에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써본다. 내일이면 또 여운은 사라지겠지만 오늘은 그래도 어제보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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