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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Jun 09. 2024

층간 소음


아랫집에서 들려오는 틱틱 신경에 거슬리는 소리에 일어나 잠결에 시간을 확인하니 두 시 반. 전자 피아노의 건반을 누르거나 기타의 줄을 튕겨보는 소리이리라 짐작하지만 정확히 알 수 없다. 주기적으로 이렇게 나를 깨우는 소리에 대해 참을 수 없는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지난번 빨래를 하러 내려갈 때 빨래 바구니를 들지 못해 한 칸씩 떨어뜨리며 내려가는 여성의 바구니를 옮겨준 적이 있다. 나이가 일흔몇 쯤 되었고 자신의 아버지와 살고 있으며, 다른 곳에 오십쯤 된 이제 본인의 삶을 개척한 딸이 있다는 얘기를 했는데 (일흔으로는 절대 보이지 않는 나이에 대한 나의 반응에 매일 고구마를 먹는다는 이야기를 덧붙이며) 그녀를 뒤로 하고 올라가며 보니 문이 살짝 열려 있는 집이 내 아랫집 같았다. 그러면 일흔몇 쯤 된 그녀의 아버지가 새벽 두 시에, 혹은 때로 다섯 시에, 무슨 악기를 두드려보곤 하는 건가. 남편이라거나 자식이 있는 건가. 모르겠다.


가끔 창문 너머로 보이는 거동이 불편한 그러나 이제 생각하기로 아흔이 넘은 남성치곤 제법 정정하고 풍채 좋은 남성을 요양 센터 직원쯤으로 보이는 사람이 데리러 오던 것을 떠올린다. 때로 크게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는데, 아흔의 그가 부르는 노래로 생각되진 않는다. 알 길이 없다. 예전에 교과서인지 어디서 읽은 층간 소음에 참고 참다가 화를 내려고 올라가 봤더니 휠체어를 탄 사람이 살고 있어 얼굴이 화끈해졌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거동이 불편한 아흔 남성의 유일한 취미가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다루는 것이라면 나는 얼마나 더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AJR 삼 형제가 뉴욕의 아파트에서 밴드 연습을 하니 이웃들이 찾아와 노래가 좋다고 응원해 줬다고 하던데 그가 노래를 잘 불렀다면 나도 손뼉 쳐줄 수 있었을까. 알 수 없다.


무엇보다 문제는 아파트의 잘못된 건축방식이리라. 건반을 두드리는 소리도, 노래를 부르는 소리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소리도, 물을 쓰는 소리도, 내게 들리지 않아야 내 집, 내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가끔씩 참을 수 없을 때에 적어도 늦은 밤에는 노래를 부르지 않도록 당부해 주세요, 이디엠이 제 방이 클럽처럼 느껴질 정도가 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세요, 정도의 말을 관리실에 전하며 지내고 있지만 타인의 모든 소리를 건너 듣는 나만큼이나 그도 누군가 그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유쾌하지 않으리라. 나는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만 내가 의도하지 않은 이가 내 노래를 들을 것이 싫어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주기적으로 들려오는 소음만큼 견디기 힘든 것이 없어서 나는 에어컨을 틀기로 한다. 에어컨은 몹시 시끄러워서 거의 모든 소음을 묻어버린다. 에어컨은 계속 시끄럽기 때문에 신경을 덜 긁는다. 난 별로 춥지는 않았기 때문에 더욱 이불속으로 파고든다. 창문형 에어컨을 통해 벌레가 들어와 내 머리맡 벽에 붙어 있는 걸 보는 꿈을 꾼다. 벌레는 이 방에서 내가 거의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다. 또 내가 일부러 쿵쿵거리며 내 방을 왔다 갔다 하는 꿈을 꾼다. 현관을 나서다가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했으리라 생각되는 어떤 인물이 나를 노려보며 지나가는 꿈을 꾼다.


그리고 아침. 날이 궂어 해가 들어오지 않는다. 빗소리가 들리고 간간히 새소리가 들려온다. 눈으로 사방의 벽을 훑어 벌레가 없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늦게 일어나 버렸지만 그래도 아침을 잘 챙겨 먹고, 해가 뜰 오후를 기대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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