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채단상 02 : 세상 모든 귀여운 것에 대한 관찰
'당근' 색을 좋아한다. 정확히는 당근의 몸통, 속속들이 빨갛게 차오른 짙은 주황이 좋다. 겉과 속의 색이 같다는 게 어쩐지 안심이 된다. 잘 무르지 않는 채소라 튼튼해 보여서 또 좋다. 이름도 귀엽다. 두 글자 중 하나에는 동그란 '이응' 받침이 있어서 그렇게 느껴진다. 한겨울에는 눈사람 얼굴 중앙에 콕 박혀 코 역할을 해내고, 가을에는 줄기와 잎을 생생히 피어내 흙 속에 잠겨서도 당당한 자태를 그리게 한다. 생으로 톡톡 깨물어 먹어도 달고, 착즙주스를 만들어도 싱그럽다.
당근 여러 개를 잔뜩 채 썰어두고, 당근라페를 만들거나, 김밥 속 재료로, 감자볶음에도, 파운드케이크를 구울 때도 듬뿍 넣어 사용한다.
파운드 틀을 사용하는 케이크는 난이도가 낮은 베이킹에 속한다. 선물용으로 혹은 아이들 간식으로 종종 굽는다. 동그란 휘핑볼을 준비해 밀가루와 계핏가루, 생강가루, 베이킹파우더와 설탕, 달걀, 견과류와 불린 크랜베리를 한데 반죽한 뒤 채 썬 당근을 가득 추가한다. 그렇게 준비된 반죽을 슥슥 섞은 후 네모 반듯한 파운드케이크틀에 담아 오븐에 넣으면 된다.
좋아하는 메뉴 인 '김밥'의 재료로 굳건히 한자리 차지하는 이 또한 당근이다. 어릴 적 냉장고에 김밥 재료가 준비되어 있으면, 종종 홀로 김밥을 말아 끼니를 해결하곤 했다. 김발을 깔고, 김밥 김을 놓은 뒤, 고슬고슬하게 양념을 더한 밥을 한 주걱 올려 김의 거친 면 위로 펼치면 반은 끝이 난 거다. 엄마가 냉장고에 넣어두신 계란지단, 볶아진 당근, 단무지, 시금치, 길쭉한 햄을 꺼내 차곡히 쌓고 둘둘 말면 완성이다. 입맛이 없어도, 배가 고프지 않아도, 다른 반찬이 없어도 언제나 환영받는 메뉴 속에 당근이 있다.
당근의 색을 주황이라고 간명히 규정짓기에는, 그 주황이란 색의 범주가 꽤나 넓기 때문에 조금 섬세히 기준해 보자면. 당근은 결코 통통 튀는 노란빛이 가미된 밝은 주황이 아니다. 어두운 색이 깊게 섞여든 색이다. 그러니까 빨강이 주황이 되도록 섞여든 흰색에 다시 어두운 주황이 되도록 다른 짙은 색이 퍼져 들었나 싶다. 어쩌면 머리 위로 솟아오른 짙은 초록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다고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