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

by 최여빛


할머니께서 보내주신 커다란 택배 상자가 세 개나 왔다.

허리가 끊어질 듯 무거운 세 상자.

내가 좋아하는 말린 옥수수알, 갓김치, 쌀, 된장, 말린 시래기, 시금치, 파 등등 뭐가 이리도 많이 들었는지..

짐을 정리하다 말린 시래기를 보니 엄마가 생각났다.

시골에 살던 버릇을 어디 주지 못하고 도시의 고층 아파트에 살 때도 베란다에 널어 두었던 파아랗고 노오란 시래기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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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되고 나서야 도시로 이사 나온 나는 도시에서 꽤 떨어진, 어떻게 보면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

XX읍 XX리로 끝나는 주소에 살았으니 말이다.


아직도 대학 친구들이 믿지 못하는 일화가 있다.

어렸을 적, 쥐불놀이를 하고 놀았다고 하니 다들 눈이 동그랗게 커져서는

"그게 말이 돼? 쥐불놀이? 교과서에 나오는 거 아냐??"

"혹시 너 60년대 생 아냐?"

말도 안 된다는 대답들뿐이었다.


동네 사람들끼리 모두 알고 지냈기에, 누구 집에 갓난아기가 살고 있는지 알고 있었고 우린 자연스레 그 집 분리수거통에서 분유통을 꺼내왔다.

분유통, 깡통에 송곳으로 구멍을 내고 안쪽은 지푸라기나 휴지, 종이 따위로 채워 불을 붙여 휘휘- 돌려가며 놀았는데 나는 다들 이렇게 노는 줄만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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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었다. 계절마다 이리저리 동네를 휘저으며 돌아다녔는데 도롱뇽 알을 담아다 장난치고 도마뱀을 잡고 놀았다.

방아깨비로 방아를 찧어보고 지금은 징그러워서 잡을 엄두도 못 내는 매미와 잠자리를 손으로 덥석덥석 잡았다.

버려진 건물을 아지트로 삼으며 땀을 꼬질꼬질 흘리며 지냈던 나날 들.

여름이면 강가에서 놀았다.

그 강은 동네에 어떤 아이가 빠져 죽었다는 무시무시한 곳이었지만 우린 아랑곳하지 않고 물놀이를 했다. 강가에 흘러내려온 쓰레기 중 스티로폼을 주워다가 배를 만들어 타고 놀았다.

그러다 풍덩 빠져서 팬티가 다 비치면 서로서로 가려주며 집으로 돌아왔다.

어렸을 적 나는 무지 순수했고 누구보다 해맑았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 또래와 다른 무엇인가 있다면 어렸을 적 경험했던 시골에서 삶이 그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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