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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깅여름 Aug 30. 2023

신(新)기록

매일 새로운 일 #4. 수술할 결심

2023년 6월 13일

오늘의 신(新)기록 : 수술할 결심


오랫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수술을 결심했다. 

이번 신기록은 좀 길고 나름 거창해서 수술을 결심하는 것, 그리고 수술을 하는 것으로 나누었다. 


언젠가부터 생리통이 심해졌다. 기억나는 걸 따져보면 약 2년 정도 된 것 같다, 더 된 것 같기도 하고. 

22년 초반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아주 많이 아픈 날이 한 달에 한두 번 정도였고 진통제를 많이 먹기는 했지만 참을만했다. 원래 아픈 건데 내가 그동안 운이 좋았나 보네라고 생각하고 넘겨버렸다.


건강검진을 받을 때마다 '자궁 안에 혹이 있어요, 알고 계시죠? 추적하면서 보셔야 합니다.'라고 늘 들었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자라면 그 정도는 흔한지라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리고 20년에 받은 건강검진에서는 '자궁 안에 혹이 있는데 위치가 안 좋아요, 알고 계시죠? 아프지 않으세요? 수술하시는 게 낫겠는데.'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결과지에도 이상소견으로 정밀 검진을 요한다는 글자가 쓰여있었다. 건강염려증이 있는 나는 유명하다는 강남의 모 여성병원에 가 검사를 받았고, 당시 의사는 나에게 아래와 같은 질문만 했다. 


"임신시도 해본 적 있으세요?" 

"네? 아니요."

"임신계획 있으세요?"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할지도 모르잖아) 네."

"언제 하실 거죠?"

"네? 아 언젠가는..."

"일단 임신 시도를 해본 후 안되면 그때 다시 얘기해요."

"... 네?"

"일단 임신 시도를 해보세요."

".... 선생님, 저는 미혼이고 당장 결혼계획도 없는데요."

"네. 그래도 임신을 시도해 봐야 알 수 있어요. 다행히 빈혈수치도 낮지만 아주 나쁘지는 않으니 6개월 주기로 추적관찰 정기적으로 받으세요."

"네.."


당시에는 잠깐 마음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아직 미혼이고 남자친구도 없고 당연히 결혼 계획도 없는 나. 언제 임신을 할지 짐작조차 불가한 나의 상황에 '나는 내 또래에 비해 많은 것이 늦어버렸다! 이번 인생은 망했다! 임신은 내 선택사항이 아닐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에 잠깐 허우적거렸지만 그때의 나는 마음이 건강한 상태라 금방 또 잊어버렸다. 그래, 당장 내년 이맘때 결혼해서 애를 낳을지도 모를 일이잖아? 인생은 그런 거지. 그렇게 2년이 흘렀다. 


22년, 새롭게 옮긴 직장에서 나는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졌다. 우울증, 위궤양, 십이지장궤양을 앓았고 몇 년 동안 잠잠했던 미주신경성실신이 월요일 아침이면 자주 찾아와 어느 날은 출근길에 1층 로비에 드러누워 누군가 날 발견해 일으켜주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리통이 아주 심해졌고 길어졌으며 생리량이 너무 많아졌다. 한 달에 한 번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털어 넣으며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것 같아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무기력에 시달리던 나는 그저 진통제만 먹었다. 


그렇게 22년 12월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날, 나 혼자만의 결심이긴 했지만 퇴사를 결정한 후 마음에 여유가 생겨 회사 근처의 대학 병원을 찾아 진료 상담을 했는데 당시 의사가 좀 웃겼다. 


"MRI를 찍어봐야 알겠지만 이건 무조건 수술해야 해! 아마도 개복? 복강경도 어려울 것 같은데.(반말?)"

"저.. 저는 가능한 수술은 안 했으면 하는데 호르몬 등 비수술 치료를 먼저 해볼 수 없을까요?"

"아~ 막 약 딱 먹으면 근종이 작아지고! 그런 거?"

"네네! 그런 거요!"

"너무 좋지 ~ 그런 건 없지. 수술해야 해"

"...?"


지금 생각하면 의사가 보기엔 별 것 아닌 수술이라 생각했던 것 같기는 한데 저 대화는 진짜 좀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내가 슬의생에 나올법한 의사를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너무하지 않나. 장난도 아니고. 뭐 핑계일 수 있는데 그래서 저 병원을 다시 방문하지 않았고, 모든 것은 퇴사 이후로 미루며 23년 4월이 되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건강 염려증이 있는 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크고 공신력 있는 병원 몇 군데를 가보고 비교하겠다 생각했다. 사실 병원을 1군데만 예약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1시간 넘게 피가 멈추지 않아 구급차를 부를지 말지 고민한 날이 있었다. 그래서 그날부터 부랴부랴 병원과 의사를 검색해 추가로 예약하고 급히 투어를 다니기 시작했다. 


3차 병원은 예약을 하면 대기가 길다. 특히 산부인과는 대기가 정말 길었다. 1~2달을 기다려 진료를 보면 초음파로는 알 수 없지만 수술을 해야 할 것 같아 보이고 MRI를 찍어본 후 수술 방식을 정하자고 했다. 근데 MRI를 찍으려면 이제 또 한 달 넘게 기다려야 하는... 거기에 첫 번째 병원은 MRI 촬영이 100만 원이 넘었다. 일단 촬영 예약을 걸어두고 두 번째 찾아간 병원에서도 역시 MRI 촬영이 필요하다 했고, 마침 협진병원을 소개해줘서 저렴하고 빠르게 촬영해 두 번째 진료를 볼 수 있었다.

두 번째 병원에서는 개복 수술을 권했다. 


"개수도 많고, 좋지 않은 위치에 있는 녀석도 있으니 개복 수술로 깨끗하게 제거하는 것이 좋겠네요. 실비가 있다면 로봇 수술도 가능해요,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네..."


개복? 개복은 생각해보지 않았었는데. 개복해야 하는구나. 근데 실비? 실비가 없으면 로봇수술을 못하는 건가? 내가 가진 실비는 엄청 예전 버전인데 로봇수술 안되면 어떡하지? 아니 전신마취에 개복을 해야 한다고? 그래 해야 하면 하자. 하면 그만이다. 아니? 아닌데? 개복이 최선일까? 어떡하지? 아 왜 하필 나에게!


6월 13일. 이제 마지막 병원이 남았다. 작년 이상한 의사를 찾아갔을 무렵 아주 친한 친구가 검색해서 찾아준 여성 병원의 유명 의사를 무려 6개월 전에 예약했었다. 기억도 못하고 같은 병원 예약을 시도하다 보니 나의 예약이 있었다! 귀찮음을 이겨내고 예약한 과거의 내가 너무 기특하고 친구에게 눈물 나게 고마웠다. 마침 두 번째 병원에서 찍은 MRI도 있어서 즉시 내 상태를 보고 수술에 대해 얘기할 수 있었다. 진료실에 마주 앉은 선생님은 아주 명쾌했다. 


"이건 수술해야 합니다. 특히 하나가 크기가 꽤 크고 위치가 좋지 않아요. 아직 미혼이죠?"

"네."

"그러면 일단 당장 생활에 지장을 주는 것만 내시경 수술로 제거하죠. 

지금 모든 혹을 제거한다하더라도 임신하려 할 때 또 있을 수도 있고, 지금 있는 것들이 임신에 영향을 줄지 안 줄지도 모를 일이에요. 그러니까 좋지 않은 위치의 하나만 제거해요. 

대신 지금 빈혈 수치가 너무 안 좋으니 두 달 동안 수치를 올려서 수술을 하시죠. 수혈은 권하지 않으니 두 달 동안 주사 맞고 잘 관리해 봐요. 자, 질문!"

"다른 병원에서는 개복해야 한다고 했었는데 내시경으로 가능한가요? "

"모든 혹을 제거하려 한다면 그래야 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일단 하나만 할 거니까. 그리고 그 하나도 100% 된다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내 경험상 가능하다고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하자고 하는 겁니다. 최대한 작은 공사를 해야지 처음부터 큰 공사를 할 필요는 없어요. 해보고 안되면 그때 다른 방법을 시도해 봐요."


내가 원하는 대답이었다! 미혼 여성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수술 방식에 대한 의견과 근거가 명확했고 자신감도 있었다. 나라는 인간의 건강과 일상을 지키면서도 향후 생길 수 있는 2세가 지낼 기관을 최대한 지키기 위한 완벽한 제안.


6월 13일, 그날 아침 진료실에서 나는 결심했다. 

수술할 결심. 


2023년 6월 13일

오늘의 신(新)기록 : 수술할 결심



어지러운 마음으로 산책을 하다 만난 아기고양이

아가야 엄마 어디있니..건강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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