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유발자가 되기 싫어요

우측통행과 런던의 신호등

by 봄가을


영어 실력이 부족해 언어의 장벽에 걸릴 걸 예상했고, 자취 경험이 하나도 없는 내가 먼 땅 영국에서 홀로서기를 하는 게 힘들 거란 걸 당연히 예상했으며, 일자리를 구하는 게 쉽지 않을 거란 것도 당연히 예상했다. 한국에선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날 힘들게 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한국과는 반대로 차가 좌측통행하는 것이다! 여기서 운전할 일도 없을 테니 별 상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방향이 익숙하지 않으니 나에게도 운전자들에게도 너무 위험했다. 차에 치인 적도 없으면서 차를 유독 무서워하는 나는 한국에서도 꼭 왼쪽, 오른쪽을 살핀 후 길을 건넜다. 런던에서도 조심한다면서 길 건너기 전에 좌우를 살피는데, 그러다 몇 번 자전거에 치일 뻔했다. 여기선 오른쪽을 먼저 봐야 하는데 그게 몸에 배어 있지 않아서 왼쪽을 보면서 길을 건너려다 오른쪽에서 자전거가 오고 있던 것이다. 그러면 자전거에 탄 사람들은 욕을 한 바가지 하면서 지나가는데 잘못한 거 알고 사과는 하지만 얼마나 억울하던지. 물론 차나 자전거를 운전하는 입장에서 사람이 툭 튀어나오면 위험한 거 다 안다. 나도 위험한 거 알고 사고 일으키기 싫어서 살핀다고 살핀 건데요… 몇십 년간 몸에 밴 습관을 어떻게 하루아침에 바꾸냐고요… 게다가 런던은 자전거 도로가 따로 있어서 차를 피하고 또 자전거를 피해야 한다. 신호등을 지키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엄청 큰 도로에 신호등이 없는 경우도 많다. 횡단보도는 그려져 있지만 신호등이 없어서 눈치로 건너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보통 이럴 때 위험한 일이 생긴다. 그래도 다행히 이게 나한테만 생기는 일이 아닌지 횡단보도에 오른쪽 또는 왼쪽을 보라고 적혀 있다. 초반에 (지금도 그렇지만) 나한테 정말 큰 도움이 됐다. 도로 중간에 버스 정류장이 있거나 자전거 주차장 같은 게 있고, 일방통행인 도로도 있어서 나한테는 런던 길이 너무 복잡하다. 그래서 차가 당최 어느 쪽에서 올지 예상하기가 힘든데 바닥에 적힌 글자를 보고 그쪽을 살피면 되니 정말 좋다. 누가 이런 아이디어를 낸 건지 큰 상을 받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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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파리에 여행갔을 때 일이다. 프랑스는 우리나라와 똑같이 차가 우측통행하는데, 길 건너기 전에 자꾸 런던에서처럼 오른쪽을 먼저 봐서 위험했다. 런던에 고작 6개월 살았다고 그새 우측통행에 적응을 했나 싶어서 혼자 놀랐던 적이 있다. 난 아직도 런던이 낯선데 내 몸은 런던에 적응했다면서… 허허


런던도 그렇고 파리도 그렇고 신호등이 없어도 될 만한 곳에 신호등이 있으니까 자꾸 무단횡단을 하게 된다. 현지인들도 신호등을 기다리는 사람이 별로 없고 다 무단횡단을 하고, 차들도 무단횡단하는 사람들을 기다려 주기도 한다. 물론 모든 운전자가 다 기다려 주는 건 아니라 조심해야 한다. 무단횡단을 안 하는 게 제일 좋지만 그래도 신호등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 무단횡단을 꼭 해야겠다면 런던에서는 차가 오는 방향이 완전히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무단횡단을 하지 않는 걸 추천한다. 빨리 가려다가 골로 갈 수…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마다 내가 주의 깊게 보는 건 신호등과 표지판이다. 같은 유럽이어도 나라마다 특색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런던의 신호등은 크게 특별할 건 없지만 신호등을 건너려면 버튼을 누르고 기다려야 한다. 대부분 비슷하게 생겼는데 동네마다 버튼이 조금씩 다르게 생겨서 그걸 보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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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텐 별게 다 신기하고 웃겨서 런던 생활이 너무 재미있다. 런던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채로 와서 그런지, 별 기대 없이 와서 그런지, 요즘엔 하나하나가 재미있고 흘러가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런던에 아는 사람 한 명 없이 와 혼자 살면서 힘든 게 정말 많다. 물론 지금은 전화 한 통으로 바로 만나 맥주 한잔할 친구들도 많고 든든하지만 혼자 견뎌야 할 것도 있는 법이니까.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힘든 일이 정말 많아도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이 행복하고 재미있고 만족스럽다는 거다. 인스타그램을 보고 부럽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부러워하지 말라고 힘든 것도 많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면 런던에 살던 내가 부러워질 것 같다. 앞뒤가 안 맞는 나는 멋진 사람이 되려면 아직 멀었나 보다. 성장할 기회가 많다는 얘기겠지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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