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월하서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비 Mar 16. 2018

루스 디프리스의 [문명과식량]

먹을 거리와 문명의 상관관계

  먹을거리를 주제로 한 방송은 아주 오랫동안 인기를 끌고 있다. 요리법을 소개하는 방송은 고전 중의 고전이고, 맛집을 찾아가 먹방을 찍는 것도 최근까지 유행을 탔다. 그러다 최근 들어 윤리적 식생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빈곤과 기아 그리고 비만에 관해 관심이 쏠리더니, 최근엔 동물의 사육환경에 관심이 모였다. 생존을 위한 음식에서 맛있게 먹기, 더 나아가 바르게 먹기까지. 음식은 인류의 생존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다양한 관점으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주제이다. 먹는다는 것은 내가 생존하기 위해서 다른 생명의 삶을 앗아가는 행위다. 먹는 것이야말로, 인류의 가장 아이러니함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해야 하는 분야일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먹을 것에 대한 투쟁의 역사였다. 최초의 혁명이 농업이 아니던가. 먹을 것을 안정적으로 수급할 수 있다는 건, 살아남을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갖춘 것이다. 그로 인해서 인류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크게 번성할 수 있었고, 문명을 형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늘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자연은 인류가 마음대로 성장하도록 그대로 두지 않았고, 그때마다 많은 수가 죽었다. 그렇지만 인류는 그 재해를 극복해냈고, 그때마다 한 단계씩 성장했다. 그런 인류 발전사를 다룬 책이 바로 루스 디프리스의 [문명과 식량]이다.                                                   

  처음 이 책을 집어 든 이유는 문명이 발생, 발전하면서 생태계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그리고 각 사회 간의 식량 격차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이 책이 사회학적 관점에서 쓰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확히는 공시적 관점일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책은 통시적이면서 공시적이었다. 처음 시작이 원시시대 인간이 어떻게 정착하게 되었는가이다.                     

                                                                                 

  통시적인 관점에서 식량을 구하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인류사의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지이다. 기존의 연구들은 인류사에 대해 크게 두 가지 주장을 했는데, 하나는 인류는 지구에서 아주 큰 업적을 남겼고 인간이 가진 창의성으로 자연의 장벽을 넘어설 수 있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우매함으로 인해 인류가 재앙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문명과 식량]의 저자는 이 둘의 주장이 미시적 관점에선 모두 맞지만, 거시적 관점에선 세상을 설명하는 데에 어렵다고 본다. 저자는 장기적 안목으로 세상을 보면 패턴이 보이는데, 그 패턴이란 '톱니바퀴 - 도끼 - 중심축'이라는 것이다. 즉 시행착오를 통해서 더 많은 식량을 얻을 수 있는 방식을 찾고, 그것을 후대에 전수해서 이어가도록 하는 '톱니바퀴'의 시대, 그것이 과해지면 중단하도록 하는 '도끼'의 시대, 그 도끼의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시도하여 '중심축'을 옮기고, 그것이 성공하면 다시 유지하는 톱니바퀴 시대가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것이다. 성장과 위기, 전환점이 번갈아 나타나며 이 주기가 반복될 때마다 인간의 수는 증가하고, 인간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이 확대된다고 보았다. 


  저자 루스 티프리스는 인류사에서 거대한 도끼가 내려쳐진 시대를 선정해서, 도끼가 내려쳐지기 전에 톱니바퀴가 어떻게 돌았고, 인간들은 도끼가 내려쳐진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서 어떤 창의적인 중심축을 만들어냈는지 보여준다. 사실 이 책에 나온 내용들은 한 번쯤 다 들어봄직한 내용들이다.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지만, 그 내용을 어떠한 기획과 구성으로 보여주느냐에 따라 신선하게 읽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책이다. 


  소를 비롯한 동물을 사육함으로 인해 자연이 오염되고, 또한 소를 기르기 위해서 식물을 재배하는 게 얼마나 비효율적인가에 대해서만 말했다면 결국 '그럼 채식을 하란 말인가?'로 끝나버렸을 거다. 하지만 [문명과 식량]은 필연적으로 인간이 동물을 사육하게 된 과정을 보여주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멘델의 우성과 열성에 관한 완두콩 실험을 생물책에서나 볼 줄 알았지, 이게 인류 식량문제와 연결하여 인류의 새로운 중심축의 기반이 되었을 줄이야. 또 지금은 금지된 화학품인 DDT가 새로운 중심축에서 도끼로 변화하는 과정을 이렇게나 쉽게 설명하다니. 

  루스 디프리스의 [문명과 식량]은 인류의 문명사를 식량의 증식 및 자연재해를 해결하려는 자구책의 발현 과정을 통해서 설명하려는 시도가 참 신선했다. '톱니바퀴 - 도끼 - 중심축'이라는 새로운 이론으로 과학과 사회, 역사, 인류학을 넘나드는 서술로 인해 읽는 속도가 좀 더디기는 했지만 알고 있었던 내용을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만 너무 통시적으로 설명하다 보니, 삶의 터전을 농사를 짓지 않으면 도시에 사는 것이라고 간주하는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아쉬웠다. 또한 학문의 경계를 너무 자주 넘나들다 보니 조금 덜 자세하게 기술한 부분도 있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학문의 경계를 설정하지 않고 서술하는 방식 덕분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드는 질문은 현재의 인류는 '톱니바퀴 - 도끼 - 중심축' 중 어느 시기에 있는 것일까였다. 저자는 주기의 반복으로 인해서 인류가 현재 당면한 문제는 이전과는 다르게 넘치는 식량과 관련한 것들이라고 한다. 비만 인구의 증가, 환경오염으로 인한 삶의 질 저하, 이로 인해 성장의 둔화. 이어 도시화로 이어지면서 사망률과 출생률의 감소로 인한 인구학적 변화 등.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현대 사회는 발전을 하거나 발전을 유지하는 단계이기보다는 거대한 도끼가 내려쳐질 시기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난 그 도끼가 내려치기 전에 인류가 방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더 든다. 너무 긍정적인가? 주기의 반복으로 인해 인류는 어느 정도 교훈을 얻었을 것이고, 기술도 많이 발전했으니 도끼날이 내려쳐지기 전에 목을 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책정보

- 저자 : 루스 디프리스

- 출간일 : 2018년 2월 9일

- 출판사 : 눌와

- 페이지 : 364쪽

매거진의 이전글 서평)가즈오 이시구로,[나를 보내지 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