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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비 May 06. 2020

모두들 안녕하신가요?

코로나의 시대 - 코로나19의 시작

올해 초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다. 새해가 되자마자 몸 상태가 갑자기 나빠져서 병원에 다녔고, 설날 즈음해서는 독감에 걸려 설 연휴 몽땅 1인 병실에서 보내야 했다. 독감인데 집에서 그냥 쉬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강력하게 입원을 권유했다. 그 이유가 내가 병원 진료를 보기 며칠 전, 보건복지부에서 독감 환자는 철저히 격리를 하라는 공문이 보냈고, 그에 따라 의사 선생님도 나에게 명절에 모인 친척들에게 괜히 독감 옮기지 말고 병원에 입원을 하라고 한 것이다. 명절에 음식 만들고, 친척들의 잔소리를 들을 걸 생각하니, 나도 차라리 입원이 낫겠다 싶어 바로 입원을 했다.


1주일 정도를 병실에 혼자 있다 보니 할 거라곤 책을 읽거나 영상들을 보는 거였는데, 그때 마침 넷플릭스에 '판데믹'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올라왔다. 왠지 내가 독감에 걸린 걸 알고 올라온 것 같은 느낌적 느낌. 독감 환자가 보기에 딱인 다큐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영상을 보았는데, 나도 아픈데 아픈 사람을 보고 있으려니 힘들어서 몇 편 보고 말았다. 나는 그 다큐가 그저 겨울이라, 독감이 유행하는 계절이라 업로드된 것인 줄 알았는데, 내가 병원에 입원하기 몇 주 전에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크게 발병을 했고, 그 소식에 미리 제작되었던 '판데믹'이라는 다큐를 올린 것이었다. 그런데 한국에선 설날 즈음해서 중국 우한의 소식이 특보로 나왔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만 해도 한국에선 우한에 다녀온 사람 몇몇만이 감염이 되었다 했다. 그리고 얼마 뒤, 대구에서 집단 감염 사래가 나타났고, 경북지역은 걷잡을 수 없이 코로나19가 퍼져나갔다. 


치료제가 없는 전염병의 발병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거의 멈춤 상태에 들어갔다. 코로나19가 발병한 초기에는 내가 살고 있는 부산도 코로나19로 거리엔 사람이 없고, 대부분의 가게들은 개점휴업상태에 돌입했다. 3n동안 부산 광복동 거리가 비어있는 건 처음 보았다. 다들 몇 주만 버티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강력한 전파력은 쉽사리 꺾이지 않았고, 여기저기서 힘들다는 소리가 들렸다.

2020년 2월 22일 저녁, 부산 광복동 거리

원래 연초는 한 해 생산계획을 수립하는 시기라 일이 없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대기업의 하청을 받아 일을 하는 대부분의 제조업들이 1,2월엔 일이 없기 때문에, 코로나19에 의한 영향력이 적을 거라 생각했다. 아예 일을 못하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어차피 1,2월은 힘들었고 봄이 되면 하청이 들어오기 시작하니, 우리 공장을 비롯한 주변의 공장들도 3월이 되면, 늦어도 4월이 되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3월이 되어도 4월이 되어도 대기업의 하청은 늘지 않았고, 몇 주씩 문을 닫는 공장도 있었다. 특히 자동차 공장 부품을 하청 받아 일하는 공장의 경우는 타격이 컸다. 자동차 부품을 수출하던 중국의 공장이 멈춰 서고, 어어 현대자동차 공장 노동자 중에도 감염자가 생겨 한국의 자동차 공장도 멈췄다. 자동차 공장에서 하청을 받던 공장들도 공장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우리 공장의 경우는 주로 식품가공 업체에서 하청을 받고 있고, 다행히도 연초에 사장님이 열심히 영업한 덕분에 큰돈이 되는 일은 아니었지만 3월까지는 끊이지 않고 일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우리 공장도 약간의 문제가 생겼는데, 그건 바로 원자재 가격의 상승이었다.


우리 공장은 철강재를 가공, 용접 등을 해서 납품을 하는 업체이다. 하청을 받을 때 철강재를 우리가 직접 구매하는 경우도 있고, 우리에게 하청을 맡긴 업체가 철강재를 직접 구매해서 주는 경우도 있다. 또 우리가 하청 받은 일 중에 우리가 할 수 없는 가공 공정이 있을 경우엔 외부 업체에 하청을 주어 맡기는데, 그때도 마찬가지로 원청에서 제공한 철강재를 전달하거나, 혹은 우리가 구매를 해서 가져다주거나, 우리가 하청 맡긴 업체가 직접 구매를 해서 제작하게 한다. 문제는 철강재의 가격인데, 대개 철강재는 국내산을 쓰지만 중국산도 많이 이용한다. 그 이유가 중국산 철강재가 국내산보다 절반 정도 더 저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중국 공장들이 문을 닫고, 또 수출입이 모두 막혀버려서 가격이 오르기도 했지만 중국산 철강재를 구입조차 할 수 없게 되어버린 상황. 지금까지 계약은 기존의 중국산 철강재 가격에 맞추어 거래 계약을 했는데, 가격이 오를 대로 오르고, 또 구입을 못하니 국산 철강재로 대체해야 했지만 그렇다고 거래 금액을 높여 다시 계약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우리 공장뿐만 아니라 여러 하청업체들이 거의 본전 치기로 일을 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 것이다. 그래도 공장을 놀리지 않고 일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다행한 것이라 여겼다. 아직 우리 공장에는 코로나19에 감염된 노동자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4월 말이 지나고 5월이 되면서 우리 공장도 뒤늦게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래처에도 안 좋은 소식들 하나 둘 들려오기 시작했다. 고용과 급여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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