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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향 Jul 11. 2021

심리치료와 예술

심리치료와 예술의 유사점

약 처방이 일종의 예술이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약 하나하나의 성분과 효과를 배우기는 쉽지만, 어떤 환자가 왔을 때 적절한 약을 선택하고 추가하고 늘리고 줄이고 빼나가는 과정이 직감과 경험이 없으면 빠르게 진행될 수가 없기 때문에 나온 이야기였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심리치료도 예술과 유사한 지점이 많다.


1. 춤

 춤을 추기 위해서는 몸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작은 동작들로부터 시작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자신의 근육과 관절을 하나하나 움직여보면서 움직일 수 있는 범위와 한계를 알아가야 하고, 지루한 반복 연습을 해나가면서 동작들을 몸에 익히고, 또 누군가와 함께 추게 된다면 합을 맞춰야 한다. 심리치료를 시작할 때도 유사하다. 아주 어릴 적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지루하고 긴 여정을 걸어야 한다. 다만 이는 혼자 추는 춤이 아니라, 함께 추는 춤이다. 긴 여정을 걷다 보면 어떤 순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아, 이래서 춤을 추는구나, 내 몸이 이렇구나, 내가 이렇게 자유롭구나,라고 느껴지는 순간. 그리고 그때 치료자와 함께 있는 진료실 공기의 미세한 진동의 변화. 그런 순간들을 겪고 나면 이전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것 같지만, 또 똑같은 일상의 연습을 반복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이 쌓이다 보면 나는 조금씩 더 나를 잘 다룰 수 있게 되고 자유로워진다.



2. 요리

치료자의 입장에서 심리치료는 요리와 유사한 면이 많다. 좋은 식재료와 양념들, 조리도구가 많을수록 좋은 결과물이 나올 가능성이 높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레시피북에 나와있는 대로 만들어도 요리를 하는 사람이 누구이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요리는 요리사의 손이 깨끗한 상태로 시작되어야 한다. 야채들을 얼마나 잘게 썰었는지, 고기를 제대로 해동했는지, 적절한 시간 동안 끓이고 적절한 타이밍에 양념을 넣는지에 따라 결과물은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 능숙해지려면 레시피북에 나와있는 것 이상의 직감과 축적된 경험이 필요하다. 심리치료 역시 좋은 기법들을 교과서를 통해 익히고, 매뉴얼대로 적용해보지만 그런다고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는 어렵다. 내담자가 어떠한 사람인지, 나는 나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아는지,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과정은 무엇이고 나는 깨끗한지, 그래서 이 내담자와 나 사이에서 일어나는 과정이 무엇인지 볼 수 있어야지만 좋은 심리치료를 제공할 수 있다.



3. 소설과 시와 그림

 은희경의 ‘태연한 인생’ 에는 이미지적 인간과 서사적 인간에 대한 설명이 있다.


“사랑에 빠진 여인은 생애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빛날 것이다. 류의 아버지가 포착하고 전율한 것은 그 아름다움이었다. 그 아름다움은 대개 이미지로 구현된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서정적 이야기들은 연인의 포옹이나 결혼식으로 끝이 나고 그런 것을 해피엔딩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 이후 벌어지는 생활과 이데올로기라는 서사의 세계는 이미지의 세계와 인과관계가 없는 다른 영역이다. 이미지는 순간적으로 쏘이는 광선 같은 것이고 자체로 완결되기 때문에 진위 같은 건 없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의심하지도 상처 받지도 않았다. 빚 같은 것도 지지 않았다. 하지만 서사의 영역에 속한 어머니의 삶을 이끄는 것은 이미지가 아닌 패턴이었고 그것은 뜨개질 본처럼 이어져가야만 했기 때문에 절단면의 상처는 깊었다. 그것은 비용을 요구했다. 서사의 세계에 속하지 않았던 류의 아버지는 단독자인 셈이었다. 고독은 피할 수 없었다. 반대로 류의 어머니는 서사의 세계를 택했고 그 부조리함 때문에 필연적으로 고통을 받아들여야 했다.”


 문장들을 읽고는 한동안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나는 명백한 서사적 인간이기에 역사와, 현재와, 이후에 벌어질 일들을 상상하고 그렇게  사람과 세계를 이해해간다. 어떤 한순간을 잘라 원인과 결과만으로 단면적으로 사람을 설명하려는 태도를 싫어한다. 그런 나에게 소설은 조금  익숙하고 편안하지만 그림이나 시는 어려운 예술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림과  감상을 어려워한다. 하지만 어렴풋이 알게  것은 작품을   설명을 읽지 않고도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하고, 상상하려는 태도의 필요성이다. 심리치료는 명백히  사람의 서사를 탐색하고 이야기를 구성해나가는 다루는 과정이지만,  사람을  사람의 역사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가끔은  순간에 단서가 있고, 이야기가 아닌 나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일들을 들여다보아야 하고, 그렇기에 이야기만으로 설명할  없다. 이야기밖에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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