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젊은데 왜 못 올라
하롱베이의 보석이라 불리는 티톱섬으로 향했다. 섬의 이름은 호찌민 주석이 이곳의 아름다움에 반한 소련의 우주비행사 '게르만 티토프'에게 선물하듯 붙여준 이름이라 한다. 전망대에 오를지 말지는 선택이었지만, 다 경험하고 싶어 하는 나는 힘들어도 올라가겠다고 말했다. "400 계단 정도야 어렵겠어"
계단은 가팔랐다. 헉헉거릴 때쯤 나온 전망대. 다 왔다며 활짝 웃는 나를 보고 남편이 위로 나 있는 계단을 가리켰다. 굳이 정상까지 가서 보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충분히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래도 다시 힘을 냈다. 현기증이 나는 것 같았다. 정상인 줄 알았더니 또 전망대가 나왔다. 두 명 아줌마 팀이 더는 못 오르겠다며 내려갔다. 남편이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남편 네가 가서 잘 보고 말해줘. 사진 잘 찍어와."
가족팀 아줌마가 그 말을 듣더니
"기왕 왔으니 조금만 더 가봐요."라고 말했다. 그 말이 이상하게 따뜻했다. 우리 부부처럼 조용한 가족이었다. 먼저 말을 거는 일도 거의 없었고 마주쳐도 별로 아는 척하지도 않는 일행이었다. 새초롬하던 그녀의 말을 들으니 이상하게 돌아갈 수 없었다. 오르는 동안 그녀의 말이 맴돌았다. 별 의미 없이 했을지도 모르는 그 말이 때로 힘을 주기도 한다.
가족팀 아저씨는 남편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는데 거뜬히 올랐다. 정상에서 하롱베이의 군도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배 위에서 보던 풍경과는 또 다른 웅장함이었다. 일행 중 티톱섬 전망대까지 오른 건 우리 두 가족뿐이었다. 묘한 동질감이 생겼다. 그때까지 각자 사진을 찍던 우리는 상대 가족을 찍어주는 수고를 했다. 우리는 찍어주는 것보다 '찍어 드릴까요'라고 묻는 게 어렵고 번거로운 사람들이다.
내려가는 길은 미끄럽고 가팔라서 더 힘들거라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쉬웠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왔을 때 헥헥거리며 언제까지 올라가야 하는지 궁금해하는 한국인들의 대화가 들렸다. 오름을 오를 때마다 '언제면 정상에 다다를까' 할 즈음 '다 왔어요' 하는 말에 힘을 내던 생각이 났다. 다 오려면 멀었는데도 말이다.
먼저 올라 마음이 여유로워졌고 느긋 해진나, 무슨 오지랖인지 "조금만 더 가면 돼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여행객의 얼굴이 밝아졌는데 옆에 있던 이가 '한국 사람말은 믿으면 안 돼.'라고 말했다. 정말인데, 내 딴에는 얼마쯤 내려왔는지 생각해 보고 객관적으로 대답한 건데.
해변의 파라솔아래 아예 오르지도 않은 그녀들과 오르다만 그녀들이 여유롭게 음료를 마시며 쉬고 있었다. 땀 흘리는 나를 보고 정상에 올랐냐고 물으며 대단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왕복 30분이 안 되는 거리였다. 잘 오르던 가족팀 아저씨는 칠십이었다. 그 나이에 체력이 놀라워 물어보니 어릴 때 다리가 좀 아팠다고 한다. 수술을 해서 걷는 것도 힘들고 움직이는 걸 싫어했는데 50대가 되니 근육이 자꾸 줄어 안 되겠다는 생각에 틈만 나면 산을 올랐고 이번 여행에서 본인 스스로도 놀랐다고 말했다. 꾸준함이 준 결과였다. 멀쩡한 다리를 갖고 태어난 50살 우리는 헉헉거렸는데 말이다. 티톱섬의 400 계단이 내게 남긴 것은 멋진 풍경만이 아니었다. 조용히 힘을 북돋아 주는 말 한마디의 온기, 그리고 약함을 극복하는 '꾸준함'의 위대함이었다.
조용한 그 부부는 외유내강이었다. 티톱섬을 생각하면 그 부부가 함께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