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침향, 이번엔 해병대

사람 쉽게 안 변하지

by 여름햇살

패키지여행은 편한데 쇼핑이나 선택관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생각 없이 골랐다가 쇼핑 포함된 상품이라는 걸 발견하면 이번엔 00은 사지 말자하며 둘이 출발 전부터 마음을 맞춘다. 이번여행에서 가이드는 선택관광을 몇 개 추천했고 일행들 모두 가이드의 말을 따랐다. 가이드는 나름 원칙이 있는 듯 "이제 여러분은 저의 vip 고객입니다. 쇼핑일정이 있지만 눈치 보지 마세요. 신경 안 쓰겠습니다. 이거면 충분합니다."라고 쏘쿨하게 선언했다.


선택관광 덕분에 바쁜 일정이 더 정신없이 지나갔지만 그래도 쇼핑센터에서 가이드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지 않아도 되어 편했다.

침향만 네 번째, 동남아 패키지 쇼핑에는 침향이 많다. 게다가 가는 곳마다 중국산은 가짜라고 하던데 이곳 샤먼의 침향연구소는 진짜라고 했다. 강의실 같은 곳으로 들어갔고 판매자가 들어오기 전 남편은 확인하듯 침향에 대해 내게 물었다. 남편은 소비형에다 몸에 좋은 건 다 먹으려 해서 들어가기 전에 한 번 더 다짐받은 터였다. "아무 말 말고 조용히 듣기만 해."


조용한 분위기, 판매자가 "해병대 나오신 분?"하고 물었다. 남편이 손을 번쩍 들었다. '가만히 있으라니까, 이놈의 해병대.' 판매자가 몇 기냐고 물었다. 그는 선임이었고 남편은 그때부터 좀 쫄린 표정이었다. 그는 나에게 제수씨라고 부르며 침향치약을 선물했다. 건강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이 오갔다. 응급구조사출신도 있었고 나이 많은 분들이라 건강에 대한 지식도 많았다. 문제를 맞히면 선물을 나눠줬다.

아무도 침향을 구입하지는 않았다. 만약 여기저기서 하나씩 구입했으면 남편은 또 해병대 선임인데 어쩌고 하며 덩달아 샀을 것이다. 판매자에게는 미안한 마음을 남기고 모두 밖으로 나왔다. 남편이 한동안 안 보여 물어보니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인사하고 왔단다. 제주는 해병대가 흔해서 별로 신경 쓰지 않지만 육지는 분위기가 다르다나 뭐라나. "그래서 뭐래?" 했더니 침향 싸게 줄 테니 사고 가라고 했다는 웃지 못할 대답이 돌아왔다. 한편으론 말도 없고 수줍은 남편이 어떻게 따로 인사하러 갈 생각을 했는지 신기했다. 그 마음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아내에게 경제권이 있어서 못 산다고 했다길래, 어째 안 넘어가고 잘했네 싶었다.


전에 베트남여행에서 침향과 나를 번갈아 보며 어쩔 줄 몰라하던 남편의 표정 때문에 침향을 구입해서 먹은 적이 있다. 잠을 못 자 고생 좀 할 때였는데 덕분인지 한동안 잠을 좀 잘 잤다. 남편도 혈압이 좀 떨어졌다고 한다. 주로 자기 전에 먹는데 트림을 하면 옅은 솔향이 나서 기분도 좋았다. 만병통치약 같은 침향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너무 고가라 부담스러웠다.

며칠 뒤, 남편이 치약을 찾았다. 자랑스러운 해병대의 아내라서 받은 침향치약이 생각나서 꺼내줬더니 "중국산이잖아" 하며 다른 치약을 썼다. '네가 안 넘어간 이유가 있었구나. 사람 쉽게 안 변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