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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가은 Aug 12. 2019

두 번째 영화를 만든다는 것

 ‘우리들’을 보내고 ‘우리집'을 만나기까지



안녕하세요. 영화를 만드는 윤가은입니다. 

2019년 8월 22일 개봉할 영화 <우리집>의 제작기를 3화에 걸쳐 연재해보려 합니다.

1화에서는 2016년 첫 번째 장편영화 <우리들>을 개봉한 후부터 <우리집>의 시나리오를 완성하기까지,

2년여에 걸친 험난하지만 즐거웠던 여정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부디 즐거운 감상이 되시길 바랍니다!








1. <우리들>이 지나간 자리에서 


2016년 초여름, 첫 번째 장편영화 <우리들>이 전국 76개 관으로 시작해 3개월 동안 극장에 걸리는 기적이 일어났다.  무엇보다 적은 예산으로 갖은 고생을 하며 함께 달렸던 스탭진과 배우분들이 정말 뿌듯해하고 기뻐했기에, 그간의 미안함을 잠시마나 내려놓고 같이 웃을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마지막 상영 후 최종 관객수는 48,747명이었는데, 한동안 이 숫자를 마음 깊이 품고 그 모든 관객분들이 부디 무병장수하면서 부귀영화를 누리시길 간절히 기도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들>은 그 사이 찔끔찔끔 상영되다 2018년 겨울에 5만명을 돌파했다!)  


+ 아마도 개봉 2주차. 주말마다 최수인, 설혜인, 이서연, 강민준 배우와 전국 방방곡곡 무대인사를 다녔다. 긴장이 역력해서 더 사랑스러운 우리 선이와 지아와 보라. 윤이는 내내 화장실을 가고 싶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2016년은 내게 엄청난 혼란의 한 해이기도 했다. 개봉 경험도 처음이었는데(사실 개봉할 줄 꿈에도 몰랐다), 예상과 다른 좋은 반응까지 얻고 나니(평생 이런 영화 만들지 말라고 들어왔는데), 영화라는 게 정말 뭔지, 나는 과연 어떤 감독이 될 수 있을지, 앞으로 어떤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 다 모르겠는 진짜 멘붕이 이어졌다. 때론 “이제 독립영화 그만하고 본격적으로 상업영화 시작해야지?” 라던가 “아이들 나오는 영화는 충분히 만들었으니, 이제 성인배우랑 작업하면서 영화적으로 성장해야하지 않을까?”, 혹은 “치열한 영화 시장에서 제대로 경쟁할 수 있는 진짜 영화를 만들어내야 진짜 감독이 되는 거야.”하는 조언을 듣기도 했는데, 그럴수록 마음이 착잡하고 괴로워지기만 했다. 본격적으로 영화를 한다는 건 과연 어떤 걸까? 그럼 지금까지 난 영화를 본격적으로 하지 않은 걸까? 영화적 성장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 지는 걸까? 아역배우와의 작업은 언젠가 그만 둬야 하는 일일까? 대체 진짜 영화란 뭘까? 진짜 감독은 어떤 사람이지? 나는 감독이 맞긴 맞나? 아니 내가 찍은 영화는 진짜 영화가 맞을까? 대체 영화가 뭘까? 이젠 좋아하는 일로 돈도 벌고 의미도 찾고, 그렇게 진정한 직업인, 사회인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 지금까지 대체 뭐한 거지? 엄마 나 이제 어떡해......?

                        


+ (좌) 2016년 10월,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아름다운 예술인상’ 시상식 날, 아토의 든든한 세 언니들, 김지혜, 제정주, 이진희 대표님과 함께. 정작 <우리들>을 같이한 순모대표님은 바빠서 오지도 못하고. 


+ (우) 2016년 11월, 청룡영화상이 끝나고 무대 뒤에서. 박정민 배우님과 김태리 배우님 사이에서 광분한 팬. (동행했던 세훈피디도 떨리는 손으로 사진을 찍어대 사실 제대로 된 사진이 하나도 없다)


풀리지 않는 고민들을 잔뜩 안고 헤매던 그 해 가을, 신영균예술문화재단에서 큰 상금을 받게 되었다. 너무너무 기뻤다. 한창 새 알바를 찾고 있을 때라 더 감회가 새로웠다. 적어도 앞으로 1년간은 월세와 생활비 걱정은 안하겠구나 생각하자 잔뜩 신이 나서, 그만 수상소감으로 “이렇게 큰 돈을 주셔서 너무 힘이 난다”며 주책맞게 환호성을 질러댔다. 그 날 찍힌 사진 속 나는 진짜 행복해보인다. 그래도 당분간은 내게 남겨진 고민들을 좀 더 이어갈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작은 안도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로부터 한달 뒤 쯤, 대부분 상업영화들이 후보로 오른 큰 영화상에서 신인상을 받게 되었다. 예상치 못했던 결과에 쇼크 상태가 되었고, 떠밀리듯 무대에 올라가고 나서는 “감사합니다” 한다는 게 “죄송합니다” 해버려 내내 팀원들의 놀림을 받았다. 상의 무게는 무겁고 또 무서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상이 마치 <우리들>을 만든 마음과 제작진, 사랑해준 관객들에 대한 깊은 응원과 지지처럼 느껴져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힘과 용기가 생겨났다. 영화를 한 편 더 만들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후 연말까지 선배 감독님들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두번째 장편영화는 어떻게 만들어야 해요?”하고 묻고 다녔다. 첫번째 영화는 우당탕탕 만들긴 했는데, 그럼 이제부터는 어떤 고민을 안고, 어떤 태도를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가야 하는 건지, 긴 세월 여러 편을 만들어온 선배님들의 조언이 궁금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모두가 같은 대답을 하셨다. “야. 고민하지 말고 그냥 빨리 만들어. 최대한 빨리.” 


그제야 마음이 다시 단순해졌다. 그래! 어차피 답도 안 나올 거 이제 고민하지말자. 일단 만들자. 빨리 만들자. 그냥 지금 이 순간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들과 다시 해보자!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빨리! 하는 결심만 가득 차올랐다. 때마침 김지혜 대표님이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같이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치 내 마음을 읽은 듯한 고마운 제안을 해주셨다. 가장 믿고 사랑하는 영화사 아토의 언니오빠들이 다시 든든한 기둥이 되어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개봉 이후 처음으로 숨이 제대로 쉬어지는 느낌이었다.


아토와 다시 하기로 공식적으로 결정하고 돌아온 날, 오랜만에 만난 엄마가 내게 근래들어 가장 편안해보인다며 무슨 좋은 일이 생겼냐고 물으셨다. 나는 이번에도 돈은 못벌겠지만 하고 싶은 걸 또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며 뿌듯해했고, 엄마는 그럴 줄 알았단 얼굴로 일단 니가 좋으면 됐고 그렇게 천만 영화를 만들라는 이상한 주문을 걸고 가셨다. 그날 밤, 오랜만에 노트북을 열었다. 한 편의 영화를 만들어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까마득히 잊은 채, 그저 들뜬 마음으로 후반작업때부터 조금씩 써오던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2. 안녕, <소라> - 시나리오의 출발과 수정 과정


이야기는 한창 <우리들>을 편집하던 2015년 가을, 집으로 향하던 버스에서 써내려간 작은 다짐으로부터 출발했다. 그 날도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편집을 하다 간신히 막차를 타고 퇴근했는데, 종일 영화 속 아이들이 서로 날을 세우고 상처를 주고 받는 모습을 지켜보느라 정작 내 마음이 너덜너덜 다친 기분이 들었다. 문득 다음에 또 영화를 만들 기회가 주어진다면, 좀 다른 아이들의, 다른 에너지를 담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강한 충동에 사로잡혔다. 아이들이 싸우는 게 아니라 서로 고민을 나누고 위로하며 함께 무언가를 해내는 영화, 그래서 긴장하며 지켜보기 보다는 안심하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솟구쳤다. 급기야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메모장을 꺼내 이 결심을 적어두었는데, 그게 이번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처음 떠올린 이야기는 옆집 아이의 위험한 비밀을 알게 된 여중생이 주인공이었고, 그녀의 이름을 따서 <소라>라는 제목을 붙였다. 오래 전 경험으로부터 출발한 이야기였는데,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아이를 구해내는 작은 소녀 영웅을 활기차고 건강한 톤으로 그려내고자 했다. 첫 메모 이후 조금씩 써내려간 이야기를 이듬 해부터 본격적으로 수정하며 발전시켜나갔다. 이 과정에서 전체 줄기가 세 번쯤 크게 바뀌었는데, 현재의 내공으로는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소재를 밝은 톤으로 풀어내는 시도 자체가 무리라는 걸 깨닫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후엔 톤을 포기하고 주제와 본질로 깊이 들어가려 안간힘을 썼는데, 그럴수록 이야기는 점점 잔혹하고 쓸쓸해졌고, 주인공들은 점점 외롭고 괴로워졌다. 그런데 그런 변화가 감정적으로 잘 감당이 안되어 정작 내가 쓸쓸하고 괴로워졌다.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이런 이야기였을까? 과연 내가 실제 아이들과 함께 이런 장면들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 하는 의심도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왕좌왕 고민만 많아지던 시기에, 마침 아동학대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미쓰백>이라는 영화가 후반작업 중이란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저기서 들은 소문을 종합해본 결과, 캐릭터는 달랐지만 플롯은 사뭇 비슷한 구석이 있었고, 훌륭한 연출에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고, 꽤 멋진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슬픈(?) 결론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 비보를 접하는 내 마음이 진짜 이상했다. 가슴이 무너지지도, 진짜 망했구나 대멘붕에 빠지지도 않았다. 되려 묵은 체기가 내려가듯 속시원해지는 상쾌한 기분마저 들었다. 


+ 이지원 감독님의 <미쓰백> (2018). 이 영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김시아 배우와 함께 작업하게 될 지 전혀 몰랐다! 


그럼 그렇지. 이런 이야기는 잘 할 수 있는 감독님이 따로 있잖아. 게다가 이미 영화로 잘 만들어진 이야기를 내가 뒷북 치면서 또 만들 필요가 있을까? 어쩌면 이 이야기는 진짜 내 것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오랜만에 정신이 맑아졌다. 이제는 정말 후회없이 <소라>를 놓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오랜 시간 움켜쥐고 정신없이 파고 들었던 소라가 내게 남긴 소중한 이야기들이 분명 있을 거라는 확신도 들었다. 이제는 남겨진 고민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내가 정말 할 수 있는 이야기,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과연 무엇인지 면밀히 살펴보며 새롭게 나아갈 시간이었다. 


결국 이런 고민과 결심들을 대표님께 털어놓았고, 긴 논의가 이어졌다. 그리고 비록 시간은 없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이야기의 방향을 완전히 틀기로 합의했다. 물론 말은 이렇게 해도 오랜 기간 마음을 준 이야기를 완전히 놓는 과정이 아주 쉽고 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말 마음이 가는 이야기를 했으면 한다’는 대표님의 진심어린 응원과 지지에 좀 더 용기내어 한 발 한 발 다음 스텝을 밟아나가기 시작했다. 


(한참 뒤에야 제대로 만난 <미쓰백>은 당시의 결정을 절대 후회하지 않을, 너무나 고맙고 멋진 영화였다.  그런데 사실 고백하자면..... 한창 후반 작업으로 멘붕일 때 개봉을 해서 정작 극장엔 영혼만 보내고 나중에 결제해서 봤다. 감독님 죄송해요. 시아야 미안해.....) 




3. <우리집>으로 어서오세요


이후, 주변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홀로 고군분투하는 주인공 캐릭터와 아이들이 서로 연대하며 함께 문제를 해결해간다는 애초의 컨셉, 그리고 ‘가족’이라는 큰 주제를 뼈대로 남겨둔 채, 다시 처음부터 이야기를 써나갔다. 다행히 <소라>를 개발하며 건져올린 개인적인 경험들과 다방면으로 조사했던 실제 사례들이 합쳐지면서 예상보다 빨리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다. 가족 내 불화로 고민하던 아이가 가족의 빈곤 문제로 고민하는 아이들을 만나 각자의 집안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간다는 이야기였다. 유년 시절로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져온 가족에 대한 나의 태도와 감정들이 모두 담긴 이야기라는 걸 뒤늦게 발견했을 땐, 일면 당황스럽고 좀 부끄럽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 대표님과 피디님, 스탭들이 새 이야기를 진심으로 좋아해주었다. 어쩌면 모두가 나처럼, 가족에 대한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숙제를 계속 붙잡고 있는 기분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집>이란 제목을 붙였는지도.  


+ <우리집>의 제목을 붙인 뒤 시나리오 표지에 그려 붙인 그림. 나름 아이가 그린 그림처럼 표현된 것 같아 혼자 뿌듯해했는데, 나중에 표지를 보고 공포영화인 줄 알았다며 놀란 스탭도 있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내가.... 


어쩌면 그래서였을까. <우리집>의 시나리오를 본격적으로 붙들고 발전시키는 동안 이전과는 다른 바램들이 생겨났다. 이번 작품은 현실의 거울이 되는 것을 넘어, 진심으로 희망하는 바를 좀 더 담아내고 싶었다.  특히 인생의 가장 어둡고 막막한 터널을 지나는 주인공 하나가 실제의 우리가 겪어내야 했던 것보다는 조금은 덜 외롭고 덜 지쳤으면 하는 마음이 자꾸만 생겨났다. 그럴려면 하나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그 고민들을 함께 나눠 가질 친구들이 필요했다. 그렇게 유미와 유진이 자매가 이야기 속으로 좀 더 깊이 들어오게 되었다. 피보다 진한 진심을 나눈 자매와 함께 하는 하나라면 그 외롭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좀 더 용감하게 관통해 나갈 수 있을거라 믿으며, 다시 모인 ‘우리들’의 열정적인 피드백을 열심히 소화하면서, 그렇게 <우리집>을 차근차근 완성해갔다. .....완성한 줄 알았다. 이제 더이상의 수정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안심했다. 우리집의 대단한 배우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 영화 <우리집> 제작기 2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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