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무언가에 닿는다는 게

by 환문




나는 말수가 적고 표현이 서툴다. 이 두 가지는 내가 자랐던 사회 안에서 썩 좋은 요인이 되지 못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말을 걸기가 느렸고 싫어하는 사람에게 선을 긋기가 느렸다. 그러다 보면 지금 옆에 서 있는 사람과도 마음의 반경이 꽤나 멀어졌다. 그래서 늘 셋보다는 둘이 편했고 둘보다는 하나가 편했다. 그렇게 내 작은방에는 혼자가 편한 행동들이 쌓여갔다.


처음에는 거실에 놓여진 화면으로 하는 게임이었다. 화면이 켜져 있는 내내 시간은 흘러갔고 화면이 꺼지자 남는 건 없었다. 그저 오늘 남은 시간이 어서 지나가기를 바라는 행동이었다. 그래서 느리게 흘러가는 행동을 찾기로 했다. 좋아하는 노래를 찾아 듣고 기타를 연습하거나 시절에 닿지 않았던 영화를 보고 그 안에 나왔던 행동을 따라 했다. 문자를 보내지 않고 편지를 쓰고 블루투스 스피커를 사지 않고 턴테이블을 샀다. 나는 그런 느린 방식이 좋았다. 아니 좋아졌다. 아니 좋아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더 찾기로 했다. 그리고 그 무언가에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처음으로 혼자서 여행을 가기로 했다. 내가 담을 수 있는 시선이 궁금해서 아빠의 낡은 필름 카메라를 빌렸고 낯선 장면에서 느낀 감정을 기록하려고 공책을 샀다. 벚꽃이 피기 전에 돈가스를 날랐고 돈을 모아 삿포로행 비행기 표를 샀다. 조그만 여행 가방 안에 지금 좋아하는 책 그 사이에 돈을 넣어 두었고 필름 10통과 카메라 그리고 글을 적을 공책과 좋아하는 색상의 볼펜을 쌓았고 얇은 옷들을 여려 겹 포개어 가방 문을 닫았다.


삿포로에 도착하니 벚꽃은 보이지 않았고 녹아가는 눈은 쌓여있었다.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 창문에는 낯설지만은 않은 시골길이 보였고 벚꽃이 없어도 눈이 소복이 쌓이지 않아도 충분히 예뻤다. 버스에 내려 15일 동안 머물 숙소에 들렸다. 3층 정도 되는 작은 건물이었고 2층의 공용 숙소에서 짐을 풀었다. 필름 카메라와 공책을 담을 작은 가방을 메고 조금은 가볍게 숙소 문을 열었다.


정처 없이 걸었다. 걷다가 보이는 노면전차에 올라타기도 하고 창가에 비치는 가게의 분위기가 예쁘면 내려서 들어갔다. 그리고 가게에 나올 때면 명함을 들고 나왔다. 내가 보이는 시선에서 좋아하는 장면이 비추면 셔터를 눌렀고 평소 좋아했던 대관람차에 올라가거나 도로 사이를 지나는 노면전차에 올라 타기도 하고 창가에 비치는 장면 안에서 하나를 골라 내리기도 했다. 혼자서 다니니 누군가의 걸음 폭을 맞추지 않아도 되고 대화보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어서 좋았다.


비가 오는 날에는 편의점에서 산 우산을 꺼내어 다녔다. 그 낯선 장면에서는 꼭 우산을 쓰지 않고 후드를 쓰고 뛰지도 않고 걸어가는 사람이 놓여 있었다. 비조차도 저렇게 태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게 놀라웠고 나도 한번씩 우비를 쓰고 비를 맞았다. 그리고 점 찍어둔 카페에 들어가 그날의 감정을 적거나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 눈이 오는 날이면 바닥을 가득 채우는 하얀색에 놀라워 뛰어다녔고 러브 레터에 나오는 장소를 찾아서 기차를 탔다. 작은 항구도시에 내려 영화 안에서의 장면을 찾았고 멀리 보이는 설산을 배경으로 셔터를 눌렀다. 오르골 상점에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줄 오르골과 유리 공예를 포장하다 보면 어느새 밤이 되었다. 밤에는 운하에 흔들리는 조명의 선율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했고 그 옆의 산책로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기도 했다.


숙소에서 필름을 갈다가 친해진 오사카 사람에게 하코다테라는 항구도시를 추천받았고 바로 다음날 아침 기차를 탔다. 종착역에서 내려 잠시 앉아 숨을 고르는데 삿포로행 기차에 오르는 남자아이와 하코다테에 살고 있는 여자아이가 창문을 사이로 두고 인사를 하고 있었다. 기차로는 6시간 정도의 거리여서 그런지 너무나도 아기자기하면서 애틋했다. 결국 기차는 떠났고 역에서 남은 여자아이는 울고 엄마는 아이를 달래 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 조금 더 이 도시에 오래 있고 싶어져서 하루 정도 묵기로 했다. 하코다테 항구 옆 빨간 창고 안에는 상점가가 많았고 그 옆에 언덕에는 고양이들이 수시로 횡단보도를 건너며 등장했다. 마치 지브리 영화의 한 장면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그 아래를 걷다가 콘크리트 집들 사이에 녹음이 짙은 작은 공원이 보였다. 그 안에는 오래된 나무와 낮은 조도의 신사가 있었다. 그 옆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새와 사람들의 걸음 수를 세며 잠시 동안 머물렀다. 잘 못 그려도 되니깐 그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고 지금 느끼는 감정을 적었다.


언덕 아래에 노면전차에 짐을 실어 숙소로 향했다. 젊게 나이가 흘러가신 부부의 2층 주택이었다. 부부는 숙소 맞은편 건축가 할아버지의 아틀리에로 날 초대했고 어쩌면 하코다테 역이 되었을 수도 있었던 설계도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정말 낡은 종이에 검은 선을 따라가 보면 기차역 모양이 나왔다. 신기했다. 할머니는 다시 나에게 열쇠를 주었고 밤이 더 짙어지기 전에 산에 올라 야경을 보라고 했다. 조금은 추워진 날씨에 팔짱을 끼고 케이블카를 탔다. 나는 일부러 전경이 보이는 반대 방향으로 섰다. 그리고 정상에 올라 전경을 바라보았다. 검은 밤바다에 작디작은 별들이 뿌려지고 그 위로 물결이 흔들리는 장면같이 보였다. 아름답다고 형용하기가 아쉬웠고 카메라로도 담기지 않았다. 눈 위에 서서 눈으로 바라보며 좋아하는 게 쌓여가는 기분을 느꼈고 좋아하는 무언가에 조금이라도 더 닿고 싶어졌다.



처음으로 혼자서 삿포로에 여행을 갔던 단편적인 기억이에요.

좋아하는 무언가에 닿고 싶어지고

누군가의 좋아하는 무언가가 되고 싶어졌던 계기가 되는 여행이자

저의 시작이에요.

작은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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