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일상에는 분명 좋아하는 선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흘러가는 일상의 선율 속에서 좋아하는 게 닿으면 문득 작은 단상들이 떠오르기 시작하는데
떠오른 단상들이 표면에 닿아 글로써 옮겨지는 과정을 작은 글로 적고 있습니다.
01. 우산의 높이에 대해 생각하다가 마주한 꽃
구름이 젖은 날이면 종종 베란다에 서서 바깥이 보이는 작은 창을 들여다보았다.
마주한 높이의 오래된 나무는 비에 젖어 짙게 그을려져 있었고
내가 좋아할 정도의 흙냄새를 풍기는 아파트 산책로 위로는
오고 가는 사람들의 단색의 동그라미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 단색의 색들은 서로의 방향대로 움직이고 있었고
마주한 상대의 품을 스치는 장면이 그려지면
누군가의 색으로 소복이 덮이는 순간이 비추어졌다.
아마 저 따뜻한 장면에는 다른 누구의 작은 배려로 구성이 되어있을 거다.
손잡이를 잡고 마주하는 상대의 우산의 높이보다 높게 들어야 하며
어깨에 빗방울이 튀어도 인상을 구기지 않고
상대의 온기가 멎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행동을 했다고 해서 작은 인사나 선물조차 받을 수 없는 과정이니 말이다.
그런데도 저 작은 배려는 일상생활 속에서 나름 자주 보이기 도 하며
막상 마주치면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세상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동안 내가 한 배려도 누군가의 시선에 저렇게 담겨 있었을까?
라는 고민을 하다가 왠지 저 장면을 그려보고 싶어 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배려의 상대가 되어보고 싶어 졌다.
물이 스며들지 않을 정도의 단화를 신고 노란색 단 우산을 들 고 밖으로 나와 우산을 펴고
들뜬 마음을 감추며 조심히 걸어서 장소에 도착했다.
위에서 보았던 장면에 들어서니 정말 좋아할 정도의 흙냄새가 풍겨왔고
단색의 동그라미는 정면에서 바라보니 상현달 정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비는 보슬이라는 단어에 가까웠고 이제 우산의 높이가 다른 누군가를 마주하면 되었다.
쉽지 않았다.
다섯 번의 움직임 동안
작은 화면에 의지해서 걷는 사람이 세 번
그냥 무작정 들어오는 사람이 한 번
우산을 들어주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한 번
정도이니 말이다.
그렇게 낙심을 하고 마주하는 상대의 품을 스치는 동안
노란색 단 우산을 들어 올렸고 평소 보이던 시선에 담겨있던
우산의 높이보다 조금 위에 핀 꽃 하나를 보았다.
가을이 지나서 주변 잎은 무채색에 가까운 감정을 내며 말라 있었고
혼자서 연한 보라색을 띠며 비를 맞아가면서도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렇게 마주한 젖은 꽃을 오래도록 바라보았고
어쩌면 누군가 하는 작은 배려도 이처럼 아름다운 꽃이 아닐까 싶고
당연히 해야 하는 배려가 주변 잎처럼 시들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아쉬운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지나온 길을 조심히 걸어 현관문을 열었고
우산 통에 우산을 접어 넣은 뒤 거실에 누워 가만히 빗소리를 맡았다.
우리는 어떤 배려를 해야 하는 걸까?
어쩌면 세상에 전부 꽃이 피어있고 가끔씩 시든 잎이 비친다면
시든 잎이 배려라는 단어로 포장되어 있진 않았을까?
뭐 그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낮이 지기 시작했고
꽃이 아름다운 줄 알기에 작은 배려라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라는 결에 닿았다.
02. 가끔은 침묵이 좋을 때가 있다.
잠들기 전 작은 화면에 기대어 잠을 청하거나
밥 먹는 동안 큰 화면에 대화를 이어가 숟가락을 뜨거나
작은 방을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로 가득 메우거나
그러다 보면 가끔 정말 귀가 시려 울 때가 있다.
마치 내가 행했던 모든 게 그저 시간을 채우는 거였고
좋아하는 가수의 노랫말도 거센 파도 소리로 들려오며
내게 권해왔던 짧은 단상들 또한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보면 내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고
작게나마 침묵이라는 단어를 꺼내어 내 작은 일상에 넣어본다.
작은 화면은 지금 좋아하는 작은 책으로 변화를 주고
큰 화면에 닿았던 시선은 마주하는 상대의 표정으로 이어간다.
그리고 내 방을 메우고 있던 거센 파도는 잠시 꺼 두고
거실로 가서 암막 커튼을 치고 탁상 스탠드를 켠 뒤
거실 모서리에 놓인 아빠의 턴테이블 위의 파란 천을 바닥에 내려 두고
나무 탁상 아래 쌓인 일분에 서른세 번 도는 동그라미 형태의 물건 사이
빨간색 종이 표지로 감싸여 있는 좋아하는 사람과 도쿄에 가 서 샀던
몽크 씨의 파란 몽크라는 이름을 가진 레코드판을 튼다.
그렇게 가만히 침묵과 가까이하다 보면
그저 잠시나마 감정만이 읽히는 기분이 들고
머리를 지끈거리게 하던 소음들과 멀어지게 된다.
아마도 모든 단어에 편리함이 숙어가 되어 버린 지금은
화면을 통해 일상에서 가볍게 좋아하는 순간과 마주하기 쉽고
마주하는 상대의 기분을 맞추어 주지 않아도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좋아하는 노랫말을 따라 해도 내 감정을 유추할 수 있게 되어 버려서
가끔은 옛날의 조금은 귀찮고 느리지만 하고 나면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낡은 수식어가 붙는 행동들에 대한 그리움이 존재하는 거 같다.
그래서 아직
종이 책을 넘기며 좋아하는 문구에 줄을 긋고 자신의 공책에 적는 사람이 있다.
나무 연필을 깎으며 누군가에게 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
담백한 시선을 필름에 기록해두고 현상소를 찾는 사람이 있다.
여행을 하다 마주한 장면을 섬세히 묘사하며 대화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니 일상은 아니더라도 가끔은 편리함을 침묵하는 게 어떨까 싶다.
라는 그냥 개인적인 생각에 닿았다.
03. 작은 방안에 화병을 드리는 과정
내가 닿지 않았던 시절을 마주하고 싶어 지면 옛날 노래를 찾아들었다. 그렇게 김광석과 산울림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의 담백한 어조로 내뱉는 소절을 새기다 보면 어느덧 일상에서 상황에 맞추어 흥얼거리게 되었다. 사랑이 조금 쓰다면 "내게 사랑은 너무 써 아직 전 너무 어려 요"라는 소절을 창밖에 비가 내린다면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 요"라는 소절을 누군가 그립다면 "우 떠나버린 그 사람 우 생각나네"라는 소 절을 흥얼거리다 보면 조금은 그 감정들이 대신 채워지는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한때는 산울림의 해바라기가 있는 정물을 틀어놓고 수건을 널 고 있었는데 "조그만 액자에 화병을 그리고 해바 라기를 담아놨구나"라는 소절이 "조그만 탁자에 화병을 들이고 해바라기를 담아놨구나"라고 들렸고
그렇게 흥얼거리다 보니 어느새 차가운 빨래 대에 더 걸어둘 수건이 없어졌고 조그만 탁자에 화병을 드리고 예쁜 꽃을 담아놓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예전에 일을 했던 장소의 식탁 위에는 그 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식물이 과학실에나 있을 법한 플라스크 병 안에 담겨 있었다. 이른 봄 에는 주로 배색이 좋은 꽃들이 화사한 감정을 비추었고 늦은 여름에는 무성한 야자 잎들이 녹음을 선사했다. 그리고 익은 가을에는 억새풀을 꽃아 두어 가을인 걸 알았고 마른 겨울에는 목화가 담겨서 포근함을 주었다. 아마 나는 이 장소에서 식물이 줄 수 있는 감정이 있다는 걸 알았고 그 식물들을 데리고 오 는 법을 배웠다. 누군가에게 선물할 꽃은 꽃집에서 사도 되지만 그 꽃집을 채 우는 꽃들은 꽃 도매시장에서 가져온다고 했다. 그래서 만약 방안에 꽃을 놓고 싶다면 근처 자유 도매 시장이라는 장소에서 데려오라고 했다. 나는 지금에서야 꽃을 데려오고 싶어 졌고 거실에 볕이 드는 정도를 보고 나갈 채비를 했다. 가벼운 차림을 하고 좋아하는 단화를 신고 산울림 6집은 꺼 두고 밖으로 나왔다. 바깥은 볕이 잘 들어서인지 어제 들었던 '한파'라는 단어와는 다르게 따뜻했고 늘 차가워 보였던 담벼락도 샛노란 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자유 도매시장은 시장이라는 단어와는 다르게 아주 큰 건물이었고 모퉁이의 우산 가게에는 내가 좋아할 만한 색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한참을 우산을 보다 꽃을 사러 왔다는 걸 다시금 되새기고 줄 줄이 나열되어 있는 점포들 사이의 입구로 들어갔다. 꽃 시장이라 고 적혀있는 3층으로 올라가면 조화가 먼저 반기는데 멀리서 보았을 때는 분명 꽃이었지만 가까이 가면 향이 나지 않고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조화를 멀리하다 보면 어느새 문턱 하나 사이로 감정을 풍기는 꽃내음과 마주하기 시작했다. 문 바로 옆에는 화초가 담긴 작 은 화병이 나무판 위로 줄을 서 있었고 조금 더 걸으면 유자나무가 심어 진 화분이 인사를 했고 그 뒤로는 정말 큰 꽃다발들이 나란히 앉아있었다. 그 사이에서 해바라기는 아니지만 단내가 날 정도의 꽃내음을 풍기는 프리지어라는 꽃을 샀고 오래된 신문지로 감싸준 뒤 고무줄 하나를 끼워 양손으로 건네주었다. 거실에 나무 탁자 위에 하나 큰 방 침대 옆에 하나 작은방 스탠드 옆에 하나 담아 두어야 하니 색이 없고 줄이 긴 화병 두병과 줄 서있던 화초 중에 작은 화병에 담긴 작은 야자수를 마지막으로 데려왔다.
다시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볕이 잘 드는 자리에 앉았고 하늘색에 닮아있는 내 펑퍼짐한 바지 위로 앉아있는 검은 봉투에 화병 세병과 작 은 야자수도 신문지에 곱게 쌓여있는 프리지어 두 종도 볕이 드는 정도가 좋아서 그런지 생기 있어 보였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을까 걱정을 하며 버스에서 내렸고 줄무늬 화병에 맞게 꽃을 잘라 물을 주었고 방안에 두었다.
화병에 맞게 키를 맞추는 과정은 너무 미안했지만 매일 물을 줄 거라고 달래주었고 조그만 탁자에 화병을 들이고 해바라기는 아니지만 지금 좋아하는 꽃을 담아 놓는 과정은 볕이 드는 자리에서 누워 잠을 자는 움직임처럼 좋아하는 기 분에 닿을 수 있었다.
04. 나는 왜 왜 왜 달을 좋아하는가
구름 소리 안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찾다가 나는 왜 왜 왜 달을 좋아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작은 세모 모양을 누르고 손 두 뼘 정도의 공책을 펼친 뒤 그 대답을 찾기로 했다.
첫 번째
동그란 형태를 하고 있고 색은 노란 계열을 띠며 고개를 기우 뚱 오른쪽으로 옮기면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는 모습이 보이 고 보름이라는 단어와 가까워지면 토끼가 더 잘 보인다.
그래서 귀엽다.
두 번째
해피 해피 브레드라는 영화를 보면 달과 마니라는 동화 이야 기를 들려준다. 그 이야기 안에선 달이 해를 질투했고 해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마니라는 아이가 달에게 이렇게 말했다. "해를 없애면 네가 사라져 버리는 걸 그러면 밤길을 걷는 사람들이 길을 잃게 되잖아 중요한 건 네가 빛을 받아서 너는 또 누군가를 비춘다는 거야" 이 이야기를 듣고 달은 어디로 누워도 가끔 부끄러운지 형태를 달리해도 밤이 더 좋은 사람들을 위해 어디에도 위치하여 배려를 하는 따뜻함을 비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따뜻하다.
세 번째
무려 반나절 이상 시간에 차이가 나는 낯선 시선 사이를 걷다 보면 누군가 말했던 '보고 싶다'라는 서술어가 알림을 주지 않고 찾아온다. 그럴 때면 눈 위로 수분이 맺기도 하고 어떤 위로를 주어야 안정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 한참을 걸어 보기도 하고 자기 전에 좋아하는 맥주를 마셔보기도 한 다. 그래도 마음이 누그러지지 않을 때는 시절이 다른 건축양식 사이로 달을 보며 지금 곁에 없는 사람과도 오늘 같은 달을 보았다는 것만으로 위로를 받기도 한다.
그래서 나에겐 위로다.
네 번째
새벽에 잠이 들지 않아 조그만 산책을 나갈 때면 아파트 사잇길에 있는 흙길을 걸었다. 주위에는 발길이 줄어든 놀이터와 나무 벤치가 놓여있고 오래된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사잇길을 지키고 있다. 그 아래를 걷다가 푸릇한 나뭇잎 사이로 아침 달이 뜨는 장면을 보았는데 그 순간에 무척 기분이 좋았다. 그 래서 아침 달을 마주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반갑다. 다섯 번째 빨래가 널려있던 옛날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커다래진 달을 보며 소원을 빈 적이 있다. 달이 잘 보이는 곳에서 자리를 하 고 두 손을 모은 뒤 부모님이 늦게 와도 형이 울지 않게 해달라고 했다. 그 뒤로 정말 형이 울지 않아서인지 나는 커다래진 달을 보면 늘 소원을 빈다. 이루어지지 않아도 상관없으니 내 게 덮인 고민들을 내뱉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으니 말이다.
그래서 고맙다.
좋아하는 이유를 형용할 수 없을 때 정말 좋아한다고 하던데 예쁜 단어들을 골라 채우고 싶었던
이유가 잘 표현이 되지 않는다.
도시에서 남아있는 자연에 대한 애틋함 때문인지 순수한 아름 다움을 갈망하는 욕구 때문인지
나는 나는 나는 달이 좋다 그것도 무척이나 말이다.
05. 나른에 가까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나는 지금 거실 마루에 누워있다. 뒹굴뒹굴 거리다 보면 어느새 건너편에 보이는 대문만 한 창틀에 볕이 들기 시작하는데 시선은 자연스럽게 볕을 따라가게 되며 베란다로 가는 문을 지나 아빠의 식물들이 존재하는 공간을 비추었다. 다시금 나는 볕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천천히 따라가 보았다.
(오른쪽부터) 나보다 나이가 많은 물밤 나무는 항아리에서 살고 거실의 마지 막을 큰 손을 뻗어 초록으로 물들이고 가끔 꽃을 피워 자신 이 여전히 아름다운지를 알려준다.(다시 아래로) 목화가 커피 가루 위로 펴있고 서빈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선인장이 앉아있는 화분 안에는 벼룩시장에서 사 왔던 부서진 보라색 조개가 깔려있다. (옆으로) 작은 나무 탁자 위로 도토리가 보이고 호 두가 보이고 커피콩이 보인다. (지금 볕이 드는 장소로) 베란 다 문을 열면 풀 내음이 강하게 풍기고 볕이 닿고 있는 아빠의 식물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 아빠의 생 일이 다가오면 식물을 골라서 데려왔고 아빠는 자신의 화분에 담아 잘 키우셨다. 그 사이에 내가 좋다고 데려온 측백나무가 내가 볕을 쇠어주지 않았는데도 저렇게나 잘 커있다니 미안했다. 책 한 권 정도의 크기에서 무릎에 닿을 정도의 크기까지의 나의 할 일을 아빠에게 미룬 증거이니 말이다. 앞으로는 책임질 수 없는 좋아하는 감정에 대해서 조심하기로 했다. 아 간만에 다른 무언가에 시선을 오래 두었더니 나른해졌다. 지금은 짙은 주홍빛을 띠는 조명과 나름의 녹음을 지켜주는 야자수가 놓여있는 탁자에서 윤희에게를 보려고 한다.
눈이 와도 우산을 펴지 않는 슬픈 도시에서 나는 겨울이 되면 눈을 보러 여행을 떠났다. 기차를 타거나 버스를 타서 오늘 가장 눈 이 많이 온 도시에 내렸고 정말 내 눈앞 에는 눈이 내렸다. 그런데 이번 겨울에는 눈이 오는 날이 많지 않았고 폭설이 내린 날에는 일을 하러 갔다. 그리고 쉬는 날에는 못된 바이러스가 퍼져 여행을 자제하게 되었다. 그 슬픈 감정을 조금이나마 달래주었던 프리지어도 매일 물을 갈아 주었지만 어느새 말라있었고 그래서 울고 싶어 져서 눈이 많이 오는 윤희에게를 골랐다.
새봄이의 윤희가 쓰던 카메라, 경수가 새봄이에게 준 크리스 마스 장갑, 쥰이 앉아있는 좌식 탁자 그리고 고양이, 꽃무늬 커튼 사이 창밖으로 내리는 부드러운 눈, 서로에게 조심스럽게 품을 내어주는 마사코와 쥰, 어느새 앉아있는 오타루행 전차에 서 윤희와 새봄 뒤로 보이는 풍경, 귀엽게 들여다볼 수 있는 카페 창문, 조금은 춥지만 따뜻한 새봄이와 윤희의 대화, 눈싸움, 눈사람, 경수 머리 위로 얹은 새봄이의 손, 아파트 조명 아래의 윤희와 인호.
무척이나 내리던 눈은 나른에 가까웠고 눈이 언제쯤 그치려 나라는 대사는 세 번 동안 다 다른 감정을 비추었으며 너무나 도 큰 사랑이라 힘들었을 윤희를 응원하게 되었다.
06. 저기 봐. 달이 나무에 걸린 거 같아.
바깥의 장면에서 꽃내음을 맡을 수 없는 지금은 산으로 가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중학교 시절 자연 동아리에서 갔던 회동 저수지가 보이는 낮은 산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종점에 내 리면 어디서부터 오는지 모를 하천의 끝자락이 보이고 물결에 비치는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과 하얀 매화는 보기 좋게 피어있었다. 그 위의 작은 다리를 건너 찻길을 따라 쭉 걸어 언 덕 두 개를 넘어가다 보면 '도토리를 주워가지 마세요'라고 적 힌 현수막과 아홉 산 수변 길이라고 적힌 나무판자가 나왔다.
이제야 산에 온 거 같았다. 발을 딛고 있던 바닥은 고가도로 에 가려진 차가운 아스팔트에서 나뭇가지 사이에 내리는 볕에 달궈진 따뜻한 작은 돌들이 뿌려져 있는 흙길로 바뀌었고 그 위에서 듣던 차들이 내는 소음은 어느새 바람에 흔들리는 나 무와 그 위에 앉아있는 다람쥐, 새가 내는 작은 소리로 들렸다. 산책로 주변에는 보라색 진달래가 피어있었고 멀리 보이던 송전탑은 더 가까워졌다. 송전탑 아래에는 돗자리를 깔아두고 멀리 보이는 산자락을 보며 김밥을 먹고 있는 엄마와 딸과 작은 돌들을 쌓고 있는 할머니와 손녀가 앉아 있었다. 그 장면은 너무도 봄에 가까웠 고 무척이나 닮고 싶었다.
다시 한참을 걷다가 힘이 들어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를 틀었고 노래가 끝나갈 즈음 멀리서 기타 연주가 들렸다. 눈 을 의심했지만 그는 분명 기타를 메고 산길을 걸으며 바지춤 에서 나오는 반주 소리에 맞춰 기타를 치고 있었다. 정말 신기 한 건 산새와 전혀 어색함이 없었으며 오히려 나무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기타 연주가 더해지자 더 정겨웠다. 나는 그의 뒷 모습을 담았고 꾸밈없는 좋아하는 것에 대한 사랑이 느껴져서 부러웠다.
우리는 다시 걸었고 '대체 회동 저수지는 어디 있는 건데'라 고 투정을 부릴 때 즈음 다음 송전탑이 보였다. 그 아래에는 종이가방을 든 할아버지가 서 있었고 우리가 그 안에 도토리 가 담긴 걸 알게 될 때까지 그대로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바라본 건 회동 저수지였다. 초록 위에 파란 저수지가 길을 내고 있었고 다시 색이 섞인 반영이 비치며 건너편 산자락이 보였다. 그 사이의 잔결에는 낮게 뜬 해가 볕을 내리고 있었고 밤 하늘에 별이 반짝이는 장면처럼 저수지의 잔결 위에는 볕이 반짝이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그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았고 눈을 처음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작은 화면에는 역시 담기지 않았고 우리도 그대로 다 음 사람이 이 장면을 마주할 때까지 서 있었다. 분명 힘들었는데 처음 산을 마주한 사람처럼 설레어서 수변 길을 한참을 걸었고 정자에서 잠시 쉬고 다시 왔던 길을 돌아 갔다. 해가 저물어 갔고 희미했던 아침 달은 분명해졌다. 가족 들이 앉아있던 송전탑 아래의 길에는 고양이 발자국이 있었고 분명해진 아침 달은 해가 저무는 색이 되어 버린 나무 사이로 떠 있었다. 마치 달이 나무에 걸린 듯 보였다. 이래서 산에 오나 보다.
07. 우리가 앉아있는 여기는
중앙동을 걷다가 목이 말라 지번이 이름인 가게에 들어갔다. 우리는 소파에 앉아 진저비어와 라씨를 시켰다. 그리고 가게 를 살폈다. 넓은 책상에는 고양이 관련 책들이 서 있었고 칠판 에는 노란색 분필로 음료 이름들이 쓰여있었다. 그 아래에는 겨울인데도 시원한 음료를 시킨 우리를 위해서 작은 선풍기가 하나 틀려 있었고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음료를 마실 수 있었 다. 우리가 앉은 소파 옆 감귤 박스 안에는 초록색 패딩 위로 한쪽 귀가 잘린 검은 고양이와 품을 내주고 있는 하얀 고양이 가 앉아있었다. 마치 그들이 이렇게 얘기하는 듯했다. " 우리가 앉아 있는 여기가 감귤 박스여도 괜찮아 다른 무엇도 지금 여기보다 따뜻할 수는 없어 " 선풍기가 돌아가는 데도 따뜻한 감정이 느껴졌고 지금 우리가 앉아있는 여기가 좋아졌다. 전달된 온기는 표면에 닿기 시작했 고 각자의 단상 속으로 풍덩 빠져들었다.
(짧은 단상)
처마 밑 마루에는 파도 소리가 들리고 작은 상자가 하나 떠 있다.
그 안에는 한쪽 귀가 잘린 듯 보이는 검은 고양이와
그 옆을 지키는 하얀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어느덧 처마의 물받이에 동그란 원이 여러 개 생기더니
마당에 피어있던 선풍기는 약풍에서 강풍으로 바뀌었다.
작은 상자는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자는 방 문턱에 닿았고
정면의 줄무늬가 더욱 선명해지더니 마루의 수면이 올라갔다.
그 안의 고양이 두 마리는 흘러 흘러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 수면에서 깨어보니
발바닥 아래를 간질던 거센 파도는 동그란 거품만을 남겼고
잔잔한 파도만 담긴 푸른 카펫 위에는
방안을 채우던 볕색 조명이 비추는 결만 남아 춤을 췄다.
작은 상자 안의 고양이 두 마리는 그 위의 작은 섬들이 되기로 했고
꽃잎에 새가 다녀간지도 모른 채
지평선 너머 자리한 작은 섬들을 세며
손바닥 위로는 담을 수 없는 별들을 그렸다.
08. 마루에 앉아 낮잠
아빠가 다녔던 초등학교를 따라 고즈넉한 내리막을 내려가다 보면 검붉은 나무색이 짙은 고옥이 보인다. 여기는 우리 할머 니 집이다. 집 앞에는 옅은 보라색 스쿠터가 하나 놓여있는데 시내로 가는 날이면 우리는 스쿠터 발판에 서서 할아버지의 시선을 마주하곤 했다. 대문을 열면 송아지방과 마당이 보인 다. 송아지방에는 예전에 살았던 송아지의 흔적이 남아있고 모 래사장이 없는 시골 마당에는 옅은 모래색에 가까운 흙이 깔 려있다. 그 가운데는 감나무 한 그루가 보기 좋게 자라있고 녹 음을 지닌 화초들 사이의 수돗가에는 빨간 대야가 놓여있다. 형과 나는 빨간 대야를 수영장 삼아 찌는 여름의 더위를 달랬 고 신나게 놀고 난 뒤에는 그늘이 잘 지는 툇마루에 앉아 낮 잠을 청하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새 엄마의 품에 안겨 눈을 뜨 면 나른한 볕이 들던 마루에는 다홍색의 은은한 조명만이 담 겨있고 종달새 대신 소쩍새가 조금 더 슬프게 울고 있었다. 그 렇게 우리는 한없이 고요에 가까워졌고 작은방에 들어가 이만 이불을 펴고 잠을 자야 했다.
마루에 올라가려면 바닥에 놓인 돌을 밟아야만 했던 시절의 여름방학 기억이다. 요즘은 아빠의 필름을 자주 보는데 내가 없던 시절에 시선을 볼 수 있어서 좋았고 정말 어린 형과 나 를 보아서 신기했다. 그중에 엄마와 형이 이불을 감싸며 무언 가를 생각하는 장면이 있었다. 형은 엄마의 몸짓을 따라 해서 손을 괴고 엄마를 쳐다보았고 엄마는 어떤 감정을 느끼셨는지 초점 없이 생각에 빠져 있었다. 인화 된 필름은 자잘 자잘한 노출뿐만 아니라 정말 담백하게 사각형 안의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비추는지 잘 노출되었다. 마치 그 공간 안에 날짜 안에 분위기가 그대로 표현되어 보였다.
엄마와 형은 각자 어떤 생각에 닿아있었을까?
09. 있잖아, 참새가 꿀을 먹더니 벚꽃이 내려서 바닥을 채우더라
따뜻한 봄이기를 바랐는데 어지러운 봄이 되었다. 그렇게 좋 아하던 벚꽃이 폈는데 부엌의 작은 창으로 오래된 벚나무를 내려다 바라보아야 했다. 바깥은 봄인데 왜 우리는 입과 코를 막고 꽃들 사이로 걸어 다녀야 하고 거실에 놓여진 상자에서 는 눈과 귀를 찌푸리는 문장들만 나열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작은 방안에 꽃내음을 풍겨야 했고 거실에 놓여진 다 른 상자로 좋아하는 가수의 동그라미를 그려야 했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선율에 닿지 않는다면 걸어서 닿을 정도의 거 리에 놓여진 오래된 아파트를 즐겨 찾았다.
내가 자랐던 수안동을 지나 세병교를 건너 온천천을 따라 쭉 걷다 보면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오래된 아파트가 나온다. 그 안에는 동백, 상록수, 벚나무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놓여있 고 따뜻한 봄이 되면 아파트 사이에는 벚나무가 길을 감싸 마 치 상현달의 형태가 되어 사람들에게 그늘을 건넨다. 그늘의 정면에 서면 그동안 보지 않았던 벚꽃이 여기 다 모여 있구나 생각이 들기도 하고 따뜻한 봄이었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 을 하게 된다.
아파트 정문의 그늘막에는 참새들이 둥지를 틀었고 그 아래 의 공터에는 벚꽃이 채워져 있었다. 벚꽃이 질 시기가 아닌데 어찌 저렇게 예쁘게 내려와 있을까 했는데 시선을 위로 옮기 니 이유를 알게 되었다. 벚나무 가지에서 참새와 작은 새들이 앉아 꽃을 때어 꽃물을 받아먹고 그 꽃들이 본래의 형태 그대로 바닥으로 내려와서 가득 채웠던 거였다. 정말로 눈앞에는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속도의 봄비가 내렸고 그 아래의 물 웅 덩이는 보기좋게 자리했다.
그 옆을 지나던 아이들은 내리는 벚꽃을 주우러 뛰어다녔고 다른 누군가는 나무 아래에 놓여진 벚꽃들을 주워서 손바닥에 올렸다. 마치 그 장면은 눈이 오는 날 아이들이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손으로 잡아 보려고 뛰어 다니고 쌓인 눈들을 모아서 눈송이를 만드는 누군가의 모습이 비추어 지기도 했다.
그렇게 그 장면 안에서 한참을 마주하다 보니 좋아했던 선율에 닿았고 따뜻한 봄이기를 바라며 어지러운 봄은 이제 좀 갔으면 했다.
10. 저수지에 일렁이는 반짝임에 대한 태도
인위적으로 만든 저수지 안에는 자연적인 풍경들이 섞여있다. 수변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나오는 나무로 된 흔들 다리 정면 에는 짙은 풀잎 색을 띠는 작은 수풀들이 모여있다. 그 형태 를 따라 시선을 이어나가다 보면 그 안에는 뭐가 들었는지 궁 금하기도 하고 그 옆에 보이는 돌다리의 간격이 귀여워 보이 기 시작한다. 그 아래의 파도가 치지 않는 웅덩이에는 결의 방 향이 그대로 보이고 그 위로 볕이 내리기라도 하면 밤 하늘을 올려다보듯 자잘한 별빛이 가득하다. 그 장면을 작은 프레임 에 담으려고 하다 보면 일렁이는 결 덕분에 형태가 흐릿해지 고 저수지 표면의 색과 내리는 볕의 색이 섞여 보라색과 가까 운 색이 비친다. 그래서 더 몽환적인 피사체가 되어지기도 하 고 일렁이는 반짝임을 어떻게 잘 바라볼 수 있을까 고민을 하기도 한다. 지금 느끼는 감정을 종이에 적고 자잘한 노출을 프 레임에 담아 보아도 일렁이는 감정은 멈추지 않았고 물결과 볕이 주는 기분 좋은 멀미에 귀밑에라도 붙이고 싶은 정도였 다. 우리가 만든 저수지안에 담긴게 이렇게나 많은데 더 커다 란 자연을 정면으로 마주한다면 어느 정도의 멀미가 찾아올까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아 참, 기분 좋은 멀미를 주는 대상들을 조금이나마 더 담아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낡은 캠코더를 하나 샀다. 이제는 조금 오래 마주하고 더 느리게 담아서 깊게 들여다 보기로 했다.
11. 물장구를 치던 작은 거북이와 마주하기
우리가 닿지 않게 되어진 바다의 변두리에서는 앉을 자리가 없던 거북이가 이제서야 앉게 되었고 옅은 색의 모래 안에 동 그란 알을 낳았고 어느새 작은 거북이가 태어나 물장구를 치 고 있었다. 우리는 얼마나 '자연'이라는 단어에 불친절했을까? '언어'라는 커튼을 치고 듣기만 했던 건 아닐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안 좋은 이 시기는 커튼을 조금이 라도 젖혀두게 하려고 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마주한 장면이 있다면 작은 배려라도 해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래야 내가 좋아하는
파도를 따라가는 작은 새, 저수지에 일렁이는 물결 위에 비치 는 볕, 경주 오릉 안의 연못 위로 떨어지는 연노란 목련, 버스 창가에 비치는 황금색의 지는 해, 새벽 산책길에 나뭇잎 사이 로 보이는 아침 달, 낯선 도시에서 보이는 익숙한 구름의 형 태, 감귤 박스 안에 든 고양이, 우산을 들어 올려야 보이는 연 보라 꽃, 이웃집 마당에 놓여있는 빨간 토마토, 다른 사소한 색들을 풍성하게 해주는 하얀 눈, 가로수로 보이면 너무나도 반가운 감귤 나무, 좋아하진 않았지만 자주 반기는 동물원, 좋 아해서 식물원에 가면 늘 처음 순서로 보는 선인장 코너, 구름 색에 가까운 호수와 포개어지는 하늘, 그늘의 배치가 적당한 버드나무의 움직임,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야자수, 노란 눈처럼 쌓이는 은행 잎
에 마주할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