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겨울
#1
작년에 쓰던 폰을 방치해뒀다가 드디어 사진 백업을 했다.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닌데 잊고 있던 게 꽤 있어서 좀 놀랐다. 사진으로 남아있지 않은 일들 중엔, 내가 잊어버렸다는 사실 조차 인지 못하는 일들도 있을까.
#2
책 정리를 하다가 옛날 노트, 편지들을 읽기 시작했다. 10년도 더 전에 누군가가 써서 주었던 꽤 두꺼운 일기도 있었다.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기록된 15년 전의 내 이야기. 기억은 사라지지만 기록은 남는다. 일기의 주인은 아마 잊어버렸을 기억이 내 책꽂이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3
글, 사진, 어떤 수단으로든 기록으로 남기는 데 신경쓰는 편이다. 옛날 물건도 잘 못 버리고. 지나간 일 자꾸 돌아보면 뭐하나 싶을 수 있지만 그 지나가는 순간들의 합이 내 인생이고, 곧 나다. 그러니까 지나간 일은 그냥 지나간 일이 아니고 나의 일부인거지. 어쨌든 인정. 그래, 나 과거에 연연한다.
#4
하나도 안 버리고 다 쌓아뒀다가는 티비에 나오는 그런 쓰레기집이 될테니, 간혹 큰 맘 먹고 버리기도 한다. 어느 정도 떠나보낼 수 있겠다 싶은 것만 떠나보내지만 그래도 하나도 아쉽지 않은 적은 별로 없다. 오랜만에 옛날 편지 뭉치를 꺼내보았더니 그 전 정리때 큰맘먹고 버렸던 다른 뭉치가 문득 아쉽더라. 역시 버리지 말았어야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