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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해 Aug 26. 2020

들개는 힙스터  

힙스터 존에서 살아남기  

 "힙해"     

 들개는 상수역의 카페나 음식점에 들어와 앉을 때마다 감탄사를 연발했다. 넓고 세련된 곳을 가도, 좁고 허름한 곳을 가도 반응은 같았다. 깔끔하면 세련되었다는 이유로, 낡고 허름하면 빈티지하다는 이유로 힙하다고 했다. 

 카페에 앉아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데 긴 머리에 수염을 기르고 온몸이 타투로 뒤덮인 남자가 지나갔다. 그는 오버핏 바지에 후드티를 입고 에어팟을 귀에 꽂은 채 도베르만을 산책시키고 있었다.     


 " 저 사람은 진짜 로컬 힙스터네" 

 언젠가부터 힙스터라는 단어를 쉽게 들을 수 있었다. 힙스터, 힙하네 같은 말은 한 시절을 풍미한 간지라는 단어와 비슷한 뜻인 듯했다. 뭐랄까 느낌과 쓰이는 상황은 대충 알았지만, 정확히 어떤 뜻인지 몰라 검색을 해보았다.     


 힙스터(Hipster)는 아편을 뜻하는 속어 hop에서 진화한 hip, 혹은 hep이라는 말에서 유래했고 1940년대의 재즈광들을 지칭하는 슬랭이었다. 한 세대가 지난 1990년대 이후, 독특한 문화적 코드를 공유하는 젊은이들을 힙스터라고 부르고 있다. 힙스터들은 유행 등 대중의 큰 흐름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만의 고유한 패션과 음악 문화를 좇는 부류를 뜻한다.     


 나는 힙스터를 꿈꾸었다. (사실 지금도 꿈꾸고 있다) 문제는 힙스터라는 뜻을 알게 되자 힙스터를 꿈꿀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힙스터가 되기 위해 함부로 고양이나 강아지를 기를 수 없는 노릇이고, 선뜻 비건을 시작할 수도 담배를 필 수도 없었다. 유행을 좇지 않는 사람들이 유행이라니. 그러면 유행을 따르지 않는 것이 유행인 건가? 머리가 아팠다.     


 "오늘 빈티지 샵에서 청바지 좀 보려고"

 들개는 꼭 필요한 옷을 생각하고 쇼핑에 나선다. 우리는 둘 다 빈티지 샵을 좋아해서 자주 쇼핑을 다닌다. 어린 시절 빈티지가 싸다는 이유로 구입했다면, 지금은 스타일을 위해 구입하게 되었다. 유행하지 않는 옷, 나만 갖고 있는 특별한 옷들을 입고 싶었다. 하지만 촌스러움과 멋은 한 끝 차이라고 마음에 드는 빈티지 옷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많은 수고로움이 필요했다. 옷을 뒤적거리고 입어보고 확인하는 것을 반복해야 했다.


 "바지는 빈티지에서 고르기 어렵지 않아?"

 "청바지 한 벌 만들어지는데 물이 너무 많이 필요해서 환경에 안 좋대. 버려질 때도 분해가 안 되고. 그래서 빈티지 옷으로 사고 싶어"

     

 빈티지 샵에서 바지를 고르는 건 특히 더 어려운 일이다. 사이즈를 구분하기 어렵고 언제 유행했는지 모를 난해한 핏이 많아 직접 입어봐야만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내게 맞는 사이즈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런 수고로움을 겪는 이유가 돈도 스타일도 아닌 환경을 위해서라니. 자신의 멋이 아니라 지구를 위해서라니. 한 철 유행하는 옷들을 사 입고 다음 해에 버려왔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들개는 한 벌을 몇 년씩 오래 입는 멋을 알았고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 자신의 것을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그리고 그런 들개가 바로 힙스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도 유행에서 벗어나고 싶어"

  내가 들개에게 말했다.

 "우리가 어떻게 유행에서 벗어날 수 있겠어. 빈티지 옷도 결국 유행에 맞춰서 팔리는데 뭐. 눈에 자주 보이는 게 예뻐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야"

 "따라 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따라 하게 돼. 누가 멋져 보이면 나도 그 사람처럼 되고 싶고, 그 사람이 하는 걸 따라 하고 싶고, 그걸 따라 하게 돼. 나는 자꾸 베껴. 옷도 음악도 생각도"

 그렇다고 무작정 아무거나 따라 하는 건 아니잖아. 그중 네가 맘에 드는 걸 따라 하고 있고. 그 여러 가지가 모이면 네가 되는 거야. 하나도 안 똑같아.    


 남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예술가의 필수 덕목과도 같은 말을 되새길 때마다 나는 내가 평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내가 누군가에게서 떼어낸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에 때로는 죄책감이 들었고 패배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어쩌면 평생 누군가의 뒤꽁무니나 쫓아다닐지도 모른다고.

 매일 꼬리잡기 하는 것 같다. 내가 쫓는 그들 역시 자신의 것에 만족하지 못해 몸을 움직이고 그 꼬리인 나도 움직이게 된다. 우리는 끊임없이 꼬리를 움직인다. 그게 흐름을 만들고 유행을 만들게 되겠지. 그 흐름 속에서 나는 내 속도와 방향을 제어해야 한다.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며 무수히 많은 꼬리를 잡고, 놓다 보면 휩쓸리거나 우당탕 무너지는 일은 없지 않을까.  끊임없이 생각하고 반응하는 것. 그게 이 힙스터 존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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