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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항수 Feb 22. 2016

진정한 공부란 무엇인가

2014. 03. 10.

"시간표에 '공부'라고만 적어두니 궁금하죠?

공부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아이들의 불만 어린 소리가 잔뜩 나왔다.

"포스트잇을 나눠줄 테니 10장이든, 100장이든 마음껏 써서 붙이세요."

뭘 적어야 할까 고민하던 애들도 칠판에 붙는 쪽지가 늘어나는 것을 보며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적었다.


어느새 칠판이 다채로운 색으로 가득했다.

아이들도 짧은 시간에 많은 의견이 나오니 놀란 모양이었다.

이끄미들이 쪽지를 긍정적인 내용과 부정적인 것들로 나누는 동안 나머지 아이들은 어른들이 공부하라고 할 때 드는 생각과 하는 행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분류가 끝나고 칠판을 보니 긍정적인 쪽보다는 부정적인 쪽이 훨씬 빽빽했다.

내용을 조금만 살펴보면 부정적인 내용은

재미없는 것
안 하면 혼나는 것
문제를 푸는 것이다
시험
짜증 나는 것
귀찮은 것이다
대학을 가기 위해 해야 하는 것
교과서만 보는 것
밤샌다
팔이 아프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
지금은 하기 싫지만 어른이 되면 꼭 필요한 것이다
대학교 끝날 때까지 떠나보낼 수 없는 것
전생이나 후생에서도 꼭 해야 하는 것
죽을 때까지 하는 것
인생 종 치는 날
지옥의 문을 통하여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
공부는 우리에게 교도소이고 부모님께는 행복이다.
꾀고닥 하는 날
공부는 경찰서이다
팔이 아프다
머리 아프게 하는 못된 것


반면 긍정적인 내용은

공부는 나를 위해 하는 것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나에게 공부란 커서 잘 되라고 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공부란 살아가는 것이다
인생을 위해 하는 것이다
선생님과 오랫동안 공부를 하며 즐겁고 추억을 만들어 가는 것
공부는 선생님과 함께 하면서 재미있는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똑똑하려고
우리 생활에 쓰는 것
공부는 인생이다
공부는 꿈이다
창의력
공부는 놀이다
책상에서 불 같이 노력하는 것
대학시험을 합격하기 위해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하는 것이다
집안의 명예를 위해서
꾸준하게 해야 한다
학교, 학원, 집에서 하는 것
친구와 친해지는 것
배려심 기르기
하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것
나에게 공부란... 지식을 쌓기 위해 노력하는 것


요약하면, 부정적인 내용은 지루하고, 힘들지만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고 긍정적인 내용은 재미있다, 미래를 위해, 나의 성장을 위해 해야 하는 것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재미있다는 내용 말고는 긍정이든 부정이든 '의무'의 표현이라는 점이 인상 깊다.



이어진 시간에 아이들에게 물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공부와 교육은 여러분들의 경험을 넘지 못해요.

다른 나라도 여러분들처럼 공부할까?"

그리고 '공부 못하는 나라'를 보았다.

독일교육을 짤막하게 다룬 영상이다.

감상한 후 느낌을 공유하게 했더니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공부를 못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선행학습은 정말 좋지 않네요."

"인간으로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목표라고 생각해요."

"독일에서는 학교를 다녀도 행복할 것 같아요."


아이들의 발표가 끝나자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을 다시 짚었다.

독일은 예전에 지금  우리나라 같은 방식의 교육으로 최고였다.

그런 나라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2차 세계대전 때 가장 유명했던 사람이 누구지?"

"히틀러요."

"잘  아는구나. 그럼 히틀러의 오른팔이 누구였는지 아니?

아이히만이라는 사람이란다.

그는 충실한 군인이었고, 착한 아버지이자 독실한 신자였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사형을 당했단다.

왜 당했을까?"

"잔인한 짓을 해서요?"

"의심하지 않은 죄, 생각하지 않은 죄, 행동하지 않은 죄였어."

"자신의 행동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생각하지 않아서군요!"

"그래. 아이히만은 자신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말했지.

그러면 문제가 없는 걸까?"

"아니에요."

"그래,  그때 독일의 교육은 '괴물'을 키우고 있었지.

히틀러의 말에 따라 전쟁을 하는 괴물들을.

너희도 그렇지 않을까?

너희들 중에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말을 따르지 않는 친구 있니?

뒤에서 욕을 하더라도 말이야."

"따르지 않았다가 혼났어요. 맞았어요."


지금껏 너희들이 했던, 어른들이 하라고 했던 공부 말고 진정한 공부란 무엇일까 하고 물었다.

아이들은 모둠별 토의를 거쳐 다음과 같이 발표하였다.


1. 뇌가 발달하면서 세상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해가는 것

2. 모르는 것을 배워가는 것

3. 세상을 배워가는 것

4.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가는 것

5.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는 것

6. 사람들의 소통과 사람들과 지내는 방법을 알아가는 것

7.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을 말해주는 것


아이들의 발표를 짧게 정리하고,

2003년 OECD에서 발표한 핵심역량에 대해 설명하였다.


1. 도구를 상호 교류적으로 사용할 것

2. 이질 집단에서 상호 교류할 것

3. 자율적으로 행동할 것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일 년 동안 권리, 책임, 소통에 대해 배울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공부의 원칙에 대해 말했다.


1. 지금부터 행복해야 한다.

2. 나중에도 행복해야 한다.

3. 모두가 행복해야 한다.



본격적으로 우리가 지금까지 알아본 것처럼 진정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생각을 모아보자고 했다.

교과서로 수업을 하지는 않지만 그 안에는 보물 같은 활동들이 숨어있으니 찾아내어 합쳐보고 바꿔보자고 했다.

다음은 아이들이 직접 5학년 교육과정을 재구성한 것이다.


1. 찰흙으로 고인돌 만들기

2. 음악을 듣고 색깔이나 그림으로 나타내는 것

3. 수학 이어달리기

4.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피구

5. 플라잉디스크 이어달리기

6. 노래하면서 옆에서 오카리나랑 리코더 등을 연주하기

7. 역사 시간 때 연극이나 만들기

8. 실과 – 재활용 옷 그림 그리기

9. 사회 – 역사 스피드 퀴즈

10. 국어 – 보고서를 아주 크게 해서 각 모둠 별로 만들기

11. 시를 읽고 자신이 느낀 점을 포스트 잇에 적고 몸에 붙인 후 떼기

12. 강당에서 수학 문제를 포스트잇에 적고 먼저 뛰어가 제일 먼저 수학 문제를 푼 팀이 이기는 게임

13. 식물에 대한 퀴즈 – 꽃 그림 나무 그림 이름 맞추기

14. 역사 – 찰흙 무기를 만들기

15. 탈춤 + 광고

16. 비빔밥 만들기 + 탈춤 = 우리 문화 체험

17. 강강술래 + 국악 -> 신발 만들기 -> 신발 광고 -> 신발 멀리 던지기

18. 피구 술래잡기

19. 자전거 바퀴 모양 룰렛 -> 사회 역사 퀴즈

20. 스파이 피구

21. 권투 글러브 알까기

22. 우주의 탄생

23. 옛날 한복 입고 패션쇼 하기

24. 음악의 흐름을 따라 피구하기

25. 베개 샌드백 만들어 권투하기

26. 슈퍼맨 피구

27. 남자는 여장을 하고 여자는 남장을 하기 - 패션쇼

28. 영화나 드라마 찍기



하루닫기 시간에 아이들의 마음을 엿보니 교육과정을 재구성한 것이 가장 재미있다는 아이도 있었다.

일 년 동안 함께 진정한 공부를 할 수 있기를.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는 의미가 왜곡된 단어가 참 많다.

'공부'도 그중 하나다.

자신의 내면을 성장시키기 위한 공부가 어느새 미래의 입신양명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누려야 할 오늘의 행복은 미래의 불확실한 지위를 위해 유예된다.


사실 공부는 어떤 경험을 통해 내면의 바람직한 변화를 일으키는 활동 모두를 뜻한다.

책을 읽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야를 얻고, 몸을 움직이며 근육과 감정이 변함을 느끼고 의지를 다지는 것처럼 문학, 예술, 놀이, 학문, 공예, 체육 등 다양한 분야를 통해 나를 바꿔가는 과정이다.

인류가 지금껏 쌓아놓은 문화유산과의 관계 속에서 나를 새로이 구성하는 일이다.


변화를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이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과정이 공부인데 우리는 '공부'라는 틀로 이를 가두어버린다.

그러나 욕망을 실현하면 즐거운 것처럼 공부는 본질적으로 즐거운 일이다.

공부의 즐거움을 아는 교사는 아이들에게도 이 즐거움을 느끼게 하고 싶어 진다.

나와 함께 즐겁게 공부할 사람을 찾아가는 과정, 그것이 교육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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