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삶에서 나를 만나다' 서평
학교라는 모래성이 흔들리고 있다.
학교가 우리에게 무얼 해주었냐며, 그리고 무얼 해줄 수 있느냐며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흔들리는 학교를 따라 교사 역시 휘청거리고 있다.
단단하게만 보였던 교사라는 정체성이, 교사는 도대체 무엇인가 라는 질문과 회의로 바뀌고 있다.
멀지 않은 미래에 교사라는 직업이 사라질 거라는 이도 있고, 학교 교사보다 학원 강사가 낫다는 말도 있다.
교사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을 떠나, 교사 역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방식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 수업 중에 유행어를 하고, 유머도 섞어 본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피씨를 활용하여 수업을 해본다.
수업을 게임 형식으로 바꾸고, 토론을 한다.
조만간 교육과정에 들어온다는 프로젝트 수업이나 거꾸로 교실은 어떻게 하는 건지 연수도 다녀온다.
교육에서 관계가 중요하다는 말에 학생들과 친하게 지내려 노력한다.
이 모든 것을 시도해본 교사는, 여전히 교사가 무엇인지 막막하다.
연수에서 강단에 선 교사나 SNS에 올라오는 행복한 교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왜 그렇게 못하나 자책한다.
교사가 전문가라고 하는데 교실에 들어가기 두려워하는 내 모습을 보면 과연 전문가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 혼란이 내 탓인지, 교육 정책 탓인지, 사회의 인식 탓인지 알 수가 없다.
'교사, 삶에서 나를 만나다'의 저자 김태현은 흔히 말하는 '스타 교사'다.
TV에 여러 차례 출연했고, 전국의 학교와 연수원을 돌아다니며 강의한다.
수업코칭활동가로서 교사들의 수업을 코칭하고 수업나눔 운동을 하고 있다.
강의가 원격연수로 제작되었으며 전에 쓴 책은 30쇄를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이만하면 누가 봐도 남 부럽지 않은, 성공한 교육 전문가다.
그런 그가 힘들고 아프다며, 당신도 그렇지 않냐며 말을 건다.
그의 고백은 처절하다.
그리고 끊임없이 고통의 근원을 성찰한다.
희로애락을 담은 그림과 시를 곁들여 교사로서 자신의 고민과 질문을 풀어놓는다.
우리의 관심과 노력을 외부에만 두지 말고, 내면을 단단하게 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자며 독자를 다독인다.
여기에서는 그의 생각을 요약하고 정리하기보다는 교사란 존재는 무엇인가에 대한 의견을 보태려 한다.
교사를 '전문가'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교사라면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해내기 위해 이러저러한 능력과 자질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발달단계를 잘 알고, 최신의 수업방법을 활용할 수 있으며, 학생들을 훈육하고 그들과 관계 맺는 기술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언뜻 보면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교사의 전문가로서의 특성은 전체 중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이것을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교사의 역할을 왜곡할 여지가 있다.
교사의 역할은 가르치는 것이지만, 가르치기에 앞서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위에 서술한 능력과 기술을 안다고 해서 인간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알지는 못한다.
즉 무엇을 배워야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여기서 '무엇'이란 특정 지식이나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세상 속에서 살아갈지에 대한 관점과 안목을 뜻한다.
이것은 자신과 타인(과거부터 현재까지, 모든 인류에서부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삶을 깊게 바라볼 때야 비로소 '나의 것'이 생긴다.
이렇게 해야만 어떤 내용을 다루더라도 먼저 살아온 삶과 수업을 연결할 수 있다.
그렇기에 교사를 선생(先生-먼저 산 사람)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교사(敎師)의 진정한 의미는,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을 지닌 사람이다.)
교사는 전문가의 모습뿐만 아니라 예술가와 학자, 시민의 면모도 띠고 있다.
가르치기 위해서는 전자의 측면이 필요하지만, 가르침의 근본은 후자에서부터 나온 것이다.
보이는 기술과 효과를 강조하는 시대지만 오히려 예술과 함께 삶을 성찰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교사를 전문가라는 틀에 가둬두지 않을 때, 교사의 삶은 더욱 풍부해지고 두터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