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드라마로 시작된 화제, 학교폭력이 온 사회를 덮고 있다. 이런 이야기가 공감받는 건 피해자들이 사회에 많다는 거일 테다. 그러고 나의 삶을 되짚어보게 된다.
어렸을 때 크고 작게 놀림을 받았었다. 그 놀림은 어린 시절의 이름을 따서 놀리는 거였는데, 그게 무척 싫었다. 어떨 땐 이 때문에 학교를 안 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내가 놀림받는 건 체구가 왜소해서였을까, 아니면 그 놀림을 할 때의 반응이 재밌어서였을까. 뭐가 됐든 그 기간은 짧지 않았다. 하지만 물리적인 폭력은 거의 없었다.
중학교에 올라왔다. 그때부터 인간은 본능적으로 힘의 논리를 더 따지게 되는 듯하다. 시쳇말로 중2병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기억해보면 이름으로만 놀리던 시대는 갔다. 중학교 당시 나름의 세력이 있었는데 흔히 덩치 크고 싸움 좀 하는 무리와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소위 말해 잘 나가는 무리가 큰 무리였다. 동네에 오래 살았던 이유로, 첫 번째 무리와 중학교 1년을 같이 다니곤 했는데 이들이 흔히 말해 비행 청소년이 되면서 조금씩 거리를 두게 되었다. 나와는 그 결이 달라도 너무 달랐으니.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이자 트라우마로 남는 것은 3학년 때. 그 주먹 좀 한다는 무리 중 하나가 반에서 대장 노릇을 했다. 돈도 심심찮게 뜯고 완력 행사도 꽤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는 별 대단한 인물이 아니었는데 반 구성원 그 누구도 그에게 모두 대항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랜 기간 이런 생활이 이어졌는데 졸업을 얼마 앞두고 한 친구가 이를 부모님께 알렸다. 내 생각엔 그는 별로 괴롭힘을 당하지도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친구는 나와 또다른 친구가 제일 많이 당했다고 본인의 부모님에게 이야기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나의 어머니는 이게 정말이냐고 물었는데, 나는 그냥 아니라고 걔가 뭘 안다고 하며 얼버무렸다. 나는 당시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어쩌면 그 무리와 완전히 단절되지 않은 그 어디 무언가에 있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때부턴 학업에 집중하는 쪽과 아닌 쪽이 극명히 갈라졌다. 학업과 거리가 멀었던 무리는 더욱더 힘의 논리의 세계로 심취했고. 나는 그 무리와 일심동체는 물론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척지지도 않았었다. 그당시 날 힘들게 하는 건 이따금씩 말이나 위협을 행사하던 몇몇 소위 말해 잘 나가는 이들. 그런 이들이 이제는 완전히 친구가 되었다. 그 친구는 당시 본인이 나를 세게 밀쳤는데 그 행동이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그 일이 기억에 남지 않지만 내가 그를 싫어했던 기억이 길었기에 그런 게 무의식적으로 기억에 남았었던 건 아니었을까.
잘 나가는 이들. 꼭 학창시절에만 있는 건 아니다. 외모를 비롯한 많은 매력이 있을 수 있다. 그 동창은 학창시절 그랬기에, 그에겐 학창시절의 어둠이 별로 없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그에겐 많은 어두움이 있었다. 그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던 이야기를 들으니 나보다도 그가 더 큰 상처가 있음을 생각해본다.
예전의 이런 생각을 하다가 결국 이어지는 건 이런 폭력이 학창 시절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학 시절은 물론, 군대에서, 사회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조금은 더 특별한 경험을 살아왔던 내겐 그런 폭력이 계속 상존하는 곳에 살아왔다. 학창 시절의 폭력은 사실 군에서의 선배들에게 당하는 훈련과 폭력 사이의 무언가를 겪다가 모두 잊혀졌다. 두려움에 떨던 많은 순간들, 학교에 가기 싫다는 생각들 모두 사관학교에서의 경험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으니까.
임관하고 장교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리적인 폭력은 없었으나 상부로부터 받는 다른 유형의 폭력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내가 언제나 피해자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학창시절, 사관생도 시절, 장교가 되어서는 더욱 더 많은 권한을 가지고 폭력을 행사했을 테다.
해외에 살고 있는 지금은 이게 없느냐. 여기선 단순히 피부색만으로 폭력을 당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런 생각에 이어 결국은 인간 사회의 폭력은 항상 상존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생각하기를, 드라마 속의 주인공처럼 처절한 복수를 할 힘도 할 의지도 내겐 없다. 그저 그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 생각과, 폭력이 있을 때 어릴 때처럼 그저 묵인하고 방관하고 두려움에 떠는 게 아니라 당당히 맞서 싸우겠다는 정도의 생각을 할 뿐이다.
이게 30년 가까이 살면서 그 전보다 내가 더 발전한 모습이라면 그럴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