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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May 14. 2024

중국. 가까우면서도 먼 그들

중국 이야기, 헨리 키신저


I. 개론: 중국 이야기, 그리고 그들의 위치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국제정치의 거물, 헨리 키신저의 중국 이야기에 대해 읽어보았다. 중국의 근현대사를 에드거 스노의 글로부터 접하기 시작해 중국인 이야기와 같은 글로 보았던 중국과 누구보다도 중국에 대해 잘 이해할 거로 생각한 미국인이 바라본 중국에 대한 글은 내게 관심을 끌 만했다. 물론 독일로 떠날 시점부터는 실질적으로는 멀어질 수밖에 없는 주제였으니, 3년만에 이 주제에 대해 고민하게 된 셈이다.


키신저에 관해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2차 세계대전부터 한국전쟁까지 자유라는 신성한 이념을 세계에 퍼뜨리던 그들은 베트남에서도 똑같은 임무를 수행하려 했으나 그들이 퍼뜨리고 있다는 자유가 진정으로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회의감이 들고 있었다. 미국의 신념,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주의가 흔들릴 때, 이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책이 된 건 자유주의자들은 경멸하는 세력균형의 개념이었다. 그리고 이 세력균형을 현실로 실천한 인물이 헨리 키신저. 중국과의 데탕트, 협력을 이끌어내며 냉전의 판세를 완전히 바꾸어냈다. 이는 소련의 위협을 받던 중국에게도 필요한 것으로써 그 시작이 1970년 초반이었다. 이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두 나라를 누가 이끌든, 조만간 일어날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처럼 단호하게 이루어졌고, 거의 에두르는 일이 없이 진척되었다는 사실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리더십의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다. ... 리더의 뚜렷한 공헌은 주어진 상황이 허락하는 최대 한도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데 있다.”


비판할 요소는 사실 많다. 최악의 학살이라고 평가되는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주 사태에 방관하였으며 세력균형의 개념 아래 많은 미국의 국익을 위해 수많은 이들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부분도 많이 찾을 수 있었다. 마치 더 큰 목표를 위해 어느 정도의 희생은 정당하다는 듯한 그의 논조. 무조건적인 자유주의자들이 몰고 온 피가 더 많을 수도 있지만, 그가 결정한 정책 때문에 목숨을 잃은 이도 얼마나 많았을지 생각을 해보게 한다. 다만 여기서 나는 덩샤오핑이 마오쩌둥에 대해 평가한 공칠과삼과 같은 표현을 그에게도 적용하고 싶다.


무엇보다 강조하고 싶은 점은 미국보다 훨씬 가까운 우리가 중국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 이 미국인보다 훨씬 미약하다는 점이다. 중국의 외교정책, 특히 한반도를 향한 부분에 있어서 과연 우리는 그들을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 반성해본다. 지엽적으로 지난 몇 년간의 이슈로 판단하는 것이 아닌 그 역사적인 흐름, 중국의 고대사부터 외세로부터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던 지난 200년간의 역사, 미국과 소련, 두 핵 강대국 앞에서 큰 소리를 떵떵 거렸던 그들의 모습을 우리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두 개의 핵 강대국 사이에 나타난 중국은 집요하게 공산주의를 선동했음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냉전 시대의 ‘지정학적으로 구속받지 않는 나라’로 행세할 수 있었다. 상대적인 약점은 있었지만, 완전히 독립적이고 고도로 영향력 있는 역할만 맡았던 것이다. 중국은 미국과의 적대 관계에서 거의 동맹 수준으로 변했으며, 소련과는 정반대로 동맹관계에서 대립으로 가는 길을 걸었다. 아마도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결국 중국이 소련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냉전의 ‘승자’ 편에 들게 되었다는 사실이 아닐까.”


이 책이 쓰인 게 2012년. 난 당시 사관학교에서 배우던 국제정치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2014년, 당시 미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이 학과 수업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였는데, 공교롭게도 당시 마크 리퍼트 주한美대사가 학교로 초빙강연을 오게 됐다. 질문의 기회가 있어 난 이 아시아 재균형 정책이 중국을 겨냥한 정책이냐고 질문했는데 그는 외교관으로서 할만한 대답만 주었다. 다소 아쉬웠지만 어쩌면 그로서도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미중간의 갈등은 훨씬 더 격화되었고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모습을 언뜻 보였던 중국은 내부적인 경제 상황 때문에 기가 한풀 꺾인 한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그들 행동의 운신 폭은 어쩌면 더 넓어졌는지도 모르겠다. 한편 자유라는 신념으로 인권을 옹호하던 미국은 국제사회의 경찰 노릇을 이제는 그만하려고 하면서 동맹국들에게 그 책임을 더 지우고 있다. 또한 자유무역을 옹호하던 그들이 이젠 라이벌로 성장한 중국에 관세 폭탄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우방국인 유럽 국가에도 보호무역을 하고 있다. 이는 비단 트럼프냐 바이든인 것과는 무관한 현재 미국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다음 대통령 선거에 어떤 대통령이 되더라도 이 경향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단지 공화당의 후보가 됐을 땐 다소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협상 자체가 더 공격적으로 변할 수 있지 않겠냐고 전망한다.


한편 이렇게 중국과 미국이 각을 세우고 있는 듯하면서도, 50년 넘는 세월 동안 미국과 중국의 외교 채널이 완전히 단절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경쟁 구도를 유지하는 가운데에서 협력하는 부분을 이어나갈 거라고 예상한다.




II. 외교 정책으로서 우리에게 주는 함의


여기서 대한민국의 실책이 드러난다면, 더더욱이나 중국과의 외교를 현명하게 이어나가야 함에도 한쪽에 너무 많은 균형을 몰았다는 점이다. 자유, 인권이라는 개념을 옹호하면서. 아이러니한 건 우리나라의 국내 이슈에선 그런 개념에 부합하는 정치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꽤 오랫동안 우리나라가 북한보다도 러시아와의 관계가 훨씬 더 좋았기에 할 수 있었던 많은 선택지가 사라진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었지만, 국익을 위해서 우리가 그런 외골수적인 선택을 할 필요가 있었냐는 근본적인 의문이 남는다. 역사에서 비슷한 사례를 언급하고 싶다.


“클린턴 행정부는 아마도 그 파장의 정도를 충분히 깨닫지도 못한채 이렇게 ‘결투 신청’을 하고 난 다음에, 미국이 폭넓은 이슈에서 중국과 ‘교류할’ 준비가 되어 있노라고 선포했다.”


우리의 대중국, 대러시아, 대북 외교가 이것과 다르다고 이야기할 이가 몇이나 있겠는가. 아니 이보다 더욱 현명하지 못한데, 이는 우리의 국력이 미국만큼 강한지에 대해 스스로에 대한 성찰로부터 나온다.


이처럼 외교에 있어선 더욱더 영악해질 필요가 있고 한편으론 그들을 더 이해하려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 러시아, 중국, 북한이 예뻐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이는 우리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지금 일본과 가까워지려고 한 노력 끝에 일본 측으로부터 돌아온 모습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절대 중국 정부의 대내외 정책에 대해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개인적으론 외국에 있는 중국인들의 안하무인 격 태도 때문에 그들과 거리를 멀리하여 제대로 된 교류를 해본 적이 없다. 사실 이런 편협한 나도 문제지만, 도저히 그러고 싶지 않다.


중국과의 외교에 있어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점을 저자는 꼽는다. 관계. 중국어로 꽌시라고도 부르는 관행이다. 이를 살펴보면 우리가 꽤 많은 실책을 저질렀음을 생각해볼 수 있다.


“동시에 개인적 관계를 중시하는 것도 전략의 수준을 넘어선다. 국제적 이슈에서는 뚜렷한 해법 하나하나가 통상 연관된 새로운 여러 가지 문제로 들어가는 입장권이라는 것을 중국 외교는 수천 년의 경험에서 터득했다. 그래서 중국 외교관들은 관계의 지속성을 하나의 중요한 임무로 간주하고, 어쩌면 그들에게는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공식 문서보다도 중요했다. ... 중국 지도자들이 ‘우정’이라는 것을 개인의 인품보다는 오히려 장기적인 문화-민족-역사의 유대 관계와 연관 짓는 반면, 미국 지도자들은 그들이 상대하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인품을 강조한다.”


한편, 중국 지도부의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한 제일 큰 고민을 나타낸 건 이미 권좌를 떠난지 30년이 훌쩍 지난 덩샤오핑의 지시사항으로부터 살펴볼 수 있다.


이는 냉정관찰(靜觀察 : 냉정하게 관찰하고), 참온각근(站穩脚筋 : 입장을 확고하게 견지하며), 침착응부(沈着應付 : 침착하게 대응하고), 도광양회(韜光養晦 : 때에 이르기 전까지 자신의 능력을 노출하지 않고), 선우수졸(善于守拙 : 교묘하게 세태에 융합하지 않고 우직함을 지키며), 절부당두(絶不當頭 : 결코 우두머리로 나서지 않는다), 총 24자라고 저자는 전한다.


저자는 이어서

“혼란과 고립으로 점철된 내리막길에서 덩샤오핑은, 중국이 목전의 위기에만 너무 정력을 낭비할지 모른다는 점과 다음 세대 지도자들이 지나친 자신감의 위험성을 인식하기 위한 균형 감각을 얻을 수 있느냐에 중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점을 걱정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의 글은 중국이 당면한 고충을 이야기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중국이 24자 원칙을 지키지 않아도 좋을 정도로 강력해졌을 때도 중국이 그 원칙을 지킬 것인가의 여부를 이야기하고 있었을까? 중미 관계의 상당 부분은 이들 질문에 대한 중국의 대답에 달려 있다.”


혹자는 이로부터 30년이 훌쩍 지난 중국이 이 격언보다 더 운신 폭을 더 넓혀 행동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최근 몇 년 간의 행보를 그렇게 바라봤는데 어쩌면 이보다 더 복잡한 의사 결정이 있을 거라고 추측되기도 한다.


참고로 내가 공부하는 에너지 분야에 있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중국의 미세먼지에 대해 비난하는 것과 별개로 중국의 재생에너지 발전량의 증가 폭은 가히 놀라운 수준이다. 2023년 한해 동안 중국 내 신규 설치된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이 세계 다른 모든 국가를 합친 것보다 더 많다. 이외에도 세계 최대의 태양광 패널의 회사도 중국 기업이다. 안타까운 통계지만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총 전력 생산에 차지하는 비율에서 중국은 16%, 한국은 9%에 불과하다. 그들이 석탄 화력발전을 많이 설비하는 것도 간과할 순 없지만, 이런 추세를 바라볼 때 우리 스스로가 과연 미세먼지 등을 들어 환경오염을 중국이 다 한다는 주장을 우리의 에너지 포트폴리오를 보고도 떳떳이 할 수 있을까.


이처럼 우리 스스로의 제일 큰 문제라면 중국을 비롯한 공산주의 내지는 구 공산권에 대한 맹목적인 반대와 경멸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분단의 상황을 끝내 극복하지 못한다면 언제까지나 이성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도 주장할 수도 있으나 서슬퍼런 냉전의 대치 속에서도, 그 최전선에 있던 미국이 중국과 협력하고 그들의 정치 체제에 대해 인정했는데도 유력 정치인부터 기업인까지 그저 공산당이 싫다는 식의 표현을 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안타깝다. 중국 공산당이 정권을 잡고 지금의 과정까지 오게 된 과정을 아는 이라면, 그들의 체제가 몇몇 이들이 예측하는 것처럼 붕괴하리라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기에 나로선 키신저와 같이 그 체제에 대해 이해하는 태도, 그리고 슬기로운 외교 정책을 구상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개인적으로는 세상을 떠난 저자가 희망했던 것처럼 국제 협력의 시대가 더욱 다가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만 지난 몇 년 간의 세계가 그러지 않았다는 점, 아직도 곳곳에 전쟁이 이어지고 갈등이 도사리고 있단 점이 그 희망을 무색하게 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우린 시간이 지나면 정치인에 대해 평가할 기회가 있을 테다. 다만 우리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대해 큰 키를 쥐고 있는 건 단지 미국만이 아니라 중국도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키신저가 그랬던 것처럼 현실적인 판단을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50년 전 자유주의자들이 그토록 경멸한 세력균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처럼.


“한 사회의 기본 방향은 그 궁극의 목표를 규정하는 가치관에 의해 정해진다. 동시에 자기 능력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은 정치 수완의 테스트 가운데 하나이다. 가능한 일이 무엇인지를 판단한다는 뜻이니까. 철학자들은 자신의 직관에 책임을 진다. 정치인들은 시간이 흘러도 자신의 개념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에 의해서 판단된다. ”








부록.

관료제와 공산주의, 천안문 사태 등에 대한 저자의 평가가 인상 깊어 남겨본다.


“근대의 과제는 인간의 이슈들이 너무나도 복잡하여 법률적인 틀이 갈수록 난공불락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 체제가 지시를 내리긴 하지만, 그것을 수행하는 것은 정치 과정이나 대중과는 동떨어진 관료에게 점점 더 의존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을 지배하는 유일한 길은 (그런 게 있다면) 주기적인 선거 뿐이다. ... 그래서 정치 계급과 관료 계급 사이, 또 그들 모두와 일반 대중 사이에 틈새가 벌어지게 마련이다. 이런 식으로 새로운 관리 계급은 관료주의적 모멘텀에 의해서 대두되는 위험성을 안게 된다. 이 문제를 단 한번의 대규모 공세로 해결하려 했던 마오쩌둥의 시도는 중국 사회를 거의 난파시켰다.”


공산주의.

“관리들의 손에 쥐어진 어마어마한 재량권은 불가피하게 부패로 이어졌다. 이랒리와 교육, 그리고 대부분의 특권은 일종의 사적인 관계에 달려 있었다. 계급 없는 사회를 가져온다고 선전했던 공산주의가 가히 봉건적 수준에 이르는 특권 계급을 낳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중앙 계획으로는 근대 경제를 운영할 수 없음이 드러났지만, 그 어떤 공산주의 국가도 중앙 계획 없이 운영된 적은 없었다.” ...


“덩샤오핑의 개혁에는 두 명의 협력자가 있었다. 후야오방과 자오쯔양이었다. 나중에 그들이 경제 개혁의 원칙을 정치 분야에까지 끌고 들어가려 했을 때, 덩샤오핑은 두 사람과 소원해지긴 했다.”


톈안먼

“중앙 계획에서 좀 더 분산된 의사 결정으로 전환하는 일은 두 방향에서 끊임없이 위험을 만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나는 현재 상황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견고한 관료들의 저항이요, 다른 하나는 개혁 과정이 너무 지지부진하다고 생각하는 성급한 개혁론자들의 압력이다. 경제 권력의 분산은 정치적 의사 결정에서 다원주의의 촉구를 가져왔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의 혼란은 개혁 공산주의가 지니고 있는 참으로 다루기 힘든 딜레마를 반영했다. 톈안먼에 관하여 중국 지도부는 정치적 안정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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