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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다니엘 Nov 09. 2024

이탈리아 북부기행 1편

코모와 제노바

이번에는 이탈리아, 마지막으로 방문한 게 2년 전이다. 슈트라우빙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방문했으니, 새 터전으로 옮긴 이후엔 처음인 셈이다. 그러고 보면, 이곳으로 온 이후엔 휴가다운 휴가를 보낸 적이 손에 꼽았단 생각도 든다.

 

예전엔 이탈리아가 워낙 멀기도 해서 운전해서 가겠다는 생각은 꿈도 못 꿨는데, 이번에는 차를 끌고 가기로 해본다. 사실 이건 나의 자차가 없는 것이 더 큰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독일은 우리나라처럼 렌트가격이 저렴한 편은 아니기에. 아니, 우리나라도 그렇게 저렴하진 않은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차를 빌리게 된 주된 이유는 나의 식구인 고양이를 챙겨야 했기 때문이다. 고양이와의 여행이라. 영역 동물인지라 집 주위를 제외하곤 다녀본 적이 없는 녀석을 데리고 간다는 것 자체가 꽤 모험이었던 게 사실이다. 역시나 고양이는 차가 움직이자마자 불안해하며 온갖 소리란 소리를 다 내고 움직인다. 첫 30분만 생각해보면, 이탈리아는커녕 녀석을 데리고 독일 국경도 못 넘고 돌아가야 하나 싶었다.

 

독일의 아우토반을 지나, 스위스에 접어들고도 한 시간은 힘들어하던 녀석이 어느 순간 온순해진다. 스위스의 평화로운 자연과 그전보다 본인이 보는 차량이 적기 때문이었을까. 알 수 없다. 노곤노곤해진 녀석은 어느새 잠이 들었다. 그렇게 두 시간은 아주 평화롭게 스위스를 지나갔는데, 그 풍경이 정말로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확실하진 않지만, 유럽의 최고봉 융프라우를 비롯한 알프스 고봉들의 능선을 지났으며, 알프스에서 내려온 빙하로부터 형성된 수많은 호수가 우리를 반겼다. 그리고 그 풍경 속에 스위스 특유의 마을과 곳곳에 우뚝 솟은 상대적으로 낮은 돌산들과 폭포 등이 기억에 남는다. 그런 풍경은 마치 우리나라로 따지면 지리산 주변의 산청과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스위스 사람들은 이에 공감할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험준한 산을 지나 호수 사이로 난 다리를 지나는데, 이름도 들어본 루가노다. 꼭 와보고 싶다고 생각한 도시들을 내가 직접 운전하며 지나니 감회가 새롭다. 이 정도면 성공한 인생인가 싶다. 루가노를 지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탈리아와의 국경이 나타난다. 순수 운전 시간만 4시간. 400km를 달려 첫 번째 목적지, 코모에 도착한다. 사실 코모의 첫 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독일보다 낙후된 인프라와 쓰러져가는 집들이 보였달까. 운전도 쉽지 않다. 아주 조그만 골목에 경사는 어찌나 심한지, ‘이게 정말 길이 맞아?’를 연신 외치다가 겨우겨우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워낙 고지대에 있었던지라, 숙소 위에서 저 멀리 그토록 유명한 코모 호수가 눈앞에 펼쳐진다. (고양이는 새로운 환경이 낯설었는지 숨어서 도통 나오질 않는다.)

 



다음날, 숙소를 떠나기 전에 잠시 시내를 구경한다. 호수는 얼마나 멋지고, 마을은 또 얼마나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지. 여긴 은퇴하고 사람들이 쉬러 오기에 좋은 곳이겠거니 싶다. 지나가다가 볼타의 박물관과 동상이 보인다. 생각해보니 코모를 들어올 때에도 볼타의 도시라고 적혀있었던 게 떠오른다.

 

볼타는 최초로 배터리를 발명한 인물로, 그를 기려 우리는 전압의 단위를 볼트로 칭한다. 그는 이곳 코모에서 태어나고 은퇴 후 고향으로 돌아와 여생을 보내고 숨을 거뒀다. 보통 대단한 업적을 이룬 이들은 고향을 떠나 다른 곳에서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고향이 정말 좋았었나보다. 나도 와보니 왜 그런지 이해가 가는 게 참으로 살기 좋고 평화로운 곳이다.

 

사실 도시는 인구 8만명밖에 안 되는 작은 도시인데, 부자들의 별장이 정말 많다. 예전부터 부자들도 여기가 좋다고 생각했는지 호수를 끼고 으리으리한 집, 궁전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다. 코모 대성당도 아주 아름답다. 조그만 도시, 호수 앞에 바로 있는 축구 경기장도 굉장히 신선하다. 이곳이 올해 처음으로 1부리그에 진입한 팀으로, 유명 축구선수였던 파브레가스가 감독으로 있다. 경기장만 따로 구경할 순 없었다. 흡사 경기장만 보면 동네 축구팀 같아 보이긴 한다.

짧게 코모를 둘러보고 이제 이 여행의 주된 목적인 바다를 향해 떠나기로 한다. 가는 길에 밀라노에 있는 친구를 잠시 만나 수다를 떨기도 했다. 어찌나 말이 많던지, 이태리인이 이랬었지 싶다. 부모님이 사는 집에 아직 얹혀 살고 있는데, 이 아파트 단지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지은 아파트라며 아이들을 키우긴 좋은데, 젊은이들이 놀러다니기에 참 불편한 곳이라며 불평하는데, 본인은 정작 밀라노에서 방값을 낼 자신이 없어 얹혀산다고 신세한탄을 한다. 똑똑한 젊은이들은 이탈리아를 어떻게든 떠나려고 하는 모습에서 이태리인도 아닌 내가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각설.

밀라노를 거쳐 제노바 근처 휴양도시로 떠난다. 처음엔 평야가 쭉 펼쳐져 있는 곳에 많은 차선과 화물차가 다니는 탓에 우리나라 경부고속도로가 연상되었는데, 이 평야지대를 거치니 갑자기 산길이 나온다. 이탈리아 반도의 척추, 아펜니노 산맥이다. 2차선 도로인데 도로폭은 얼마나 좁은지, 그 와중에 화물차가 2차선을 다 자리잡고 있고, 1차선엔 성격 급한 이태리인들이 좁은 도로 사이로 속도를 낸다. 나도 급한 마음에 그렇게 달리다보니, 동승자는 멀미를 호소하고, 내 고양이는 괴성을 낸다. 1시간 넘게 산을 넘었을까. 저 멀리 드디어 바다가 보인다. 숙소에 도착하니 정말 피곤함이 몰려온다.

이튿날.

안정을 찾은 고양이를 숙소에 있고, 이 리구리아 지방의 최대도시인 제노바로 향한다. 나의 밀라노 친구는 “Genova is a horrible city. Full of tourist.”라고 했는데, 왜 그가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갔던 게 수많은 관광객이 줄을 지어 다녔다. 재밌는 건 이 행렬이 외국인이 아니라 대부분 이태리 학생들이었던 점이다. 마치 우리로 따지면, 경주로 수학여행 온 학생들 같은 느낌이었달까. 외국인은 그에 비해 소수였다.

 

사실 도시는 그의 평가가 무색하게 참으로 멋졌다. 어쩌면 친구가 그런 평가를 한 이유는, 휴양의 목적으로 바다로 떠난 이들에겐 사람들이 복작거리는 것보단 한적함이 좋을테니 그랬을 거라 이해해 본다.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마천루와 별개로 오랜 역사가 빛나는 수많은 건축물은 이곳이 한때 지중해를 호령했던 해상강국이었음을 실감케 한다.

 

또, 이 수많은 마천루를 통해 이곳이 이태리 공업의 중심도시라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거의 대부분의 자본과 기술력이 집약된 북이탈리아 중에서도 제일 대도시는 밀라노와 토리노인데, 여기에 더해 제노바도 이 행렬에 동참한다고 할 수 있겠다.

 

제노바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라 하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와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다. 두 사람 모두 동상이 도시에 세워져 있다. 콜럼버스가 스페인 왕실로부터 지원을 받아 신대륙을 발견했던지라 그의 동상은 스페인에서 찾아보기가 더 쉬웠는데, 제노바 사람들은 이곳이 고향이니 그를 자기들 사람이라고 기리는 듯하다. 결국 성공하니 역사적 평가가 바뀌는 셈이다. 그의 생가가 남아 있긴 하지만, 별달리 유적지로써 좋은 평가는 받지 못하는 듯하다.

역사상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도 제노바 출신인데, 그는 콜럼버스와 달리 제노바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안타까운 건 그가 숨을 거둔 뒤에 꽤 오랫동안 성당에 묻히지 못했는데, 이는 그가 악마와 거래를 했다는 루머 때문이었다. 악마와 거래를 할 정도의 바이올린 실력이라, 가늠은 가지 않지만 대단했던 모양이다. 결국 그는 고향의 교회에 묻히지 못했고, 파르마의 묘지에 묻혔다. 그의 바이올린은 시내에 있는 옛 궁전에 전시되어 있는데, 무지했던 지라 직접 보지는 못했다.


제노바의 시내. 화려한 메인거리, 그 언덕을 쭉 올라가면 웅장한 광장이 나온다. 그곳에 옛 궁전과 콘서트홀 등이 자리잡고 있다. 그 아래를 조금만 내려가면 대성당이 있는데, 마치 피렌체의 성당과도 비슷한 건축양식을 띠고 있다. 골목 아래에 있는지라 별 기대가 없었는데 그 규모가 상당하다. 성당을 지나 쭉 내려가면, 항구가 나온다. 그리고 콜럼버스의 이야기도 있는데, 이는 나중에 만들어진 이야기로 느껴진다.


제노바 자체만 해도 대학 건물까지 아주 볼거리가 많은데, 시간관계상 충분히 즐기지 못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어쩌면 관광객이 너무 많아서 치였는지도 모르겠다. 또, 이태리어로만 있는 설명에 다소 낯설음을 느꼈던 듯하다. 이태리가 좋다면, 이제 이태리어도 배워야 하는 단계가 된 걸까. 그 정도의 필요성까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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