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퀘테레와 포르토피노
이튿날.
이 리구리아 지역에서는 제일 유명한 관광지인 친퀘테레로 향한다. Cinque가 이태리어로 다섯을 뜻하고, Terre가 Lands, 즉 직역하면 다섯 마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섯 마을이 해안가와 아펜니노 산맥의 절벽을 따라 줄지어 있다. 단테의 신곡,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등에서도 언급된다. 뭐 이탈리아 문학의 정수에서 언급되는 마을이니 이태리인들이 아름답다고 찬양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린 첫번째 마을 (Monterosso)에서 내려 두번째 마을 (Vernazza)까지 걸어갔는데, 가는 길이 참 아름다웠다. 국립공원이라고 입장료라 다소 사악한 건 어쩔 수 없는 몫이다. 바닷길을 따라 가는데 꽤 험한 등산길이라 좀 놀라기도 했다. 두번째 마을에 기진맥진하며 도착했을 땐, 이미 관광객이 골목골목에 꽉 찼다. 어딜 가나 관광객을 피하긴 어렵다…
그곳에서 기차를 타고, 다른 마을로 가는 방법도 있었는데, 역시 배를 한번쯤은 타보고 싶다. 그래서 세번째, 네번째 마을을 건너뛰고 다섯번째 마을에 도착하게 됐다. 아기자기한 마을이 퍽 아름다웠는데, 역시 너무 관광화되어 있었다. 결국 생각해보니, 첫번째 마을이 제일 좋지 않았나 싶은 생각을 해본다.
이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La Spezia라는 곳이 있는데, 이태리 해군의 최대 항구 중의 하나이다. 가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급작스레 피곤을 느껴 돌아가기로 했다.
이튿날.
이제 진짜 관광이 아니라 그저 바닷가에서 휴양을 즐겨보기로 한다. 날씨가 놀랍게도 섭씨 20도를 훌쩍 넘어 다소 후덥지끈하기도 했다. 바닷물의 온도는 역시 차가웠는데, 언제 바다에 뛰어들 수 있겠는가. 몸을 푹 담그고 수영하니, 생도 시절 바다수영을 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해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처음으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데, 이것이 참으로 휴가이지 싶은 생각이 든다. 물론, 관광지라 그런지 물가는 사악했지만.
떠나기 전 마지막 밤. 이곳 주변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 같아 유명하다는 항구마을, Portofino를 찾기로 했다. 차를 타고 이동했는데, 주차하려고 보니, 한 시간에 8유로라는 가격에 눈을 의심한다. 뭐지? 그리고 차를 세우고 항구로 향하는데, 차원이 다른 물가와 상점 등을 보고 놀라 자빠진다. 식당의 가격은 주변에 비해 최소 두배부터 세배, 네배는 했으며, 식당을 찾은 이들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는데, 엘튼 존, 등등이 보인다. 개인요트와 호화로운 식당, 사람들의 옷차림새와 차량 등을 보며 내가 사는 세상과 다른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이곳이야말로 찐 부자들의 세계구나.
호화로운 마을을 뒤로 하고, 숙소로 돌아온다. 우린 다음날, 다시 고양이와 함께 이탈리아를 떠난다. 새벽에 떠나니 화물차도 없고 운전길이 수월하다. 며칠 전에 이곳을 왜 그렇게 험하게 넘었는지 싶다. 길게만 느껴졌던 아펜니노 산맥이 생각보다 너무 짧게 느껴졌다. 이후, 끝없는 평원이 펼쳐지는데, 이곳이 이탈리아의 젖줄, 롬바르디아 평원인가. 정말 평평하다. 한 시간을 달렸을까. 밀라노가 가까워지니, 차량이 점점 많아진다. 그렇게 이탈리아를 넘어 스위스로 오니, 또다시 장엄한 풍경이 펼쳐진다. 특히, 가는 길에 있는 호수는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는데, 내가 들어보지 못한 것이 우리에겐 유명하지 않은 호수인 듯하다. (알고 보니 루체른 호수인데, 독일어론 다른 이름이라 그랬었다. 루체른 호수가 그렇게나 크다니!)
재밌는 건, 이태리어를 쓰는 스위스에서 독일어를 쓰는 스위스로 넘어오는 그 순간, 맑은 날씨가 기막히게도 흐리멍텅해졌다는 사실이다. 하늘도 독일 날씨가 더 나쁜 걸 아는 걸까. 그렇게 흐리멍텅한 날씨 속에 한참을 달려 집으로 돌아온다.
한국에서야 600km를 달릴 일이 거의 없으니, 아니 한번도 없었던 듯한데 쉽진 않았다. 그래도 언제 이런 경험을 해보겠는가. 참으로 좋은 여행이었다. 독일보단 역시 이태리가 더 먹을 것도 많고, 날씨도 온화하고, 볼거리도 풍성하다. 이래서 독일인들도 항상 휴가를 남부 유럽으로 가는 것 아닐까. 지금 돌아오곤 날씨가 일주일내내 해가 안 뜨고 으슬으슬하다. 이제 긴 겨울을 슬기롭게 보내야 하는 시절이 돌아왔다.
에필로그.
베를루스코니 이야기를 듣고 생각이 나서 이태리 정치를 살펴보게 됐다. 수많은 비리와 마피아 등의 연루된 정치의 개혁이 미완으로 그친 와중에, 정치권력을 잃은 부패 보수세력을 대체한 게 괴짜 베를루스코니. 그때 이후, 이탈리아의 정치는 포퓰리즘이 지배하게 됐다. 현재는 파시즘 이후 최악의 극우정치가 권력을 잡았다고 하는데, 생각보단 총리의 행보가 파괴적이지 않고 합리적인 편이라는 것에 위안을 삼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