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서 소프트웨어 산업, 에너지까지
어젯밤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에 뜬 바둑 다큐멘터리, 알파고가 이세돌을 꺾은 지 10년이 된 현재, 바둑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10년 전을 잠시 돌이켜볼까. 대국이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인공지능의 능력을 의심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는 보기 좋게 깨졌다. 알파고의 엄청난 기세에, 이에 한판이라도 이겼던 이세돌 기사에 대한 경의를 표하지만, 이건 과히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지금의 바둑계는 소위 말하는 스타일, 기풍 같은 것은 모두 사라지고, AI가 주는 정답과 맞춰 두는 게 보편화하였다고 한다. 세계 1위인 신진서 9단이, 누구보다도 AI와 제일 가깝게 두는 기사이고, AI와 다른, 즉 정답에서 틀린 개성이 있는 바둑들은 적어도 프로 사회에서는 완전히 없어졌다. 한편, 예전의 바둑기원에 가면 사람들은 예전 그대로 모습을 하고 있다. 이세돌 기사는, 예전만 해도 프로 기사들의 수준 차이가 그다지 심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그 차이가 예전보다 훨씬 심하게 됐고, 앞으로 그런 추세가 훨씬 심해지리라 생각했다.
10년 전 알파고의 기념비적인 사건을, 나는 그동안 그저 바둑이라는 세계에서만 해당된다고 생각했다. 2022년 11월에 나온 한 소프트웨어, ChatGPT가 등장하기 전까지.
이것이 나온 이래, 수많은 이들, 세계적인 석학들부터 빅테크의 CEO까지, 종말론적인 이야기를 포함한 미래에 대한 많은 추측이 난무했지만, 아무튼 변화의 폭은 일반 대중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했다.
이제 내가 몸담은 산업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1년 전 연초에 입사했고, 나는 학계보다 인공지능의 사용에 관대한 모습에 다소 신선하다고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AI가 코딩 보조 수단이지, 인간의 일을 대체할 수준은 아니었다. 몇몇 간단한 일은 쉽게 도와줬지만, 몇몇 문제는 아무리 물어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경우도 대부분이었다.
1년이 지난 현재도 그럴까. 그렇지 않다. 실로 AI의 성능 향상은 참으로 놀랍다고밖에 할 수 없다. 이젠 내가 프롬프트에 명확히 지시만 하면, 기존에 있는 구조를 고려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판단해서 코드를 작성하고 그것에 맞춰 테스트까지 한다. 일반적인 개발자가 하는 업무를 모두 대체하는 셈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된 이상, 무엇이 구현되어야 하는지만, 상세하게만 적으면 AI가 모든 업무를 대신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비개발자가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정말 현실이 됐다.
이런 결과에 여파라면 무엇이 있겠는가. 과거 열 사람이 하던 일을 한 사람이 할 수 있게 된다. 적어도 아직까진 한 사람은 있다. 빅테크에서 대규모의 구조조정이 있는 건 괜히 그런 것이 아니다. 이는 산업 전반에 이를 변화다. 분명 수익은 오를 것이고, 구조조정된 이들처럼 이에 소외되는 이들도 생길 테다. 바둑계의 변화와 크게 다르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한 우리 회사라고 다르지 않다. 몇몇 이들은, 이 도구를 생산성 향상에 이용하는 반면, 누군가는 계속 전통적인 방식으로, 예전처럼 한 문제에 소위 열 명씩 일하고 있다. 실제로 몇몇은 아직도 ‘내가 AI보다 코딩을 잘한다.’라고 착각을 한다. 실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언제까지일까? 1년이 지나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아니 몇 개월 후에도 그럴 수 있을까. 개발 업무만 그런 게 아니다. 컨설팅 분야부터, 고객 응대까지. 전통적인 방식으로 남아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 생산성, 효율 측면에선 빅테크의 판단이 사실 옳은 판단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본다.
나는 어제 오후, 동료로부터 구조적인 설계에 대한 아주 짧은 조언을 듣고, 불과 두세 시간 만에, 내가 그동안 개발했던 에너지 모델을 바탕으로 한, 하나의 웹서버를 구현할 수 있었다. 여기서, 난 단 한 번도 웹개발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기존의 몇몇 동료들은 변화의 바람이 불 때, 웹개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금방 그 일을 해낼 수 있겠냐고 이야기했지만, 그건 실로 현재 기술의 발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오만한 발언이었다고 꼬집고 싶다. 물론 그 많은 코드를 이해하고 유지하는 건 또 시간이 걸릴 일이지만, 현 시점에 그런 정형화된 (보일러 플레이트) 코드를 작성하는 것이 어렵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여기서 아직 인간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건, 매번 사용되는 (보일러 플레이트) 코드를 제외한 실제 '마법'이 이뤄지는 핵심적 코드, 그리고 이를 구현할 사고능력이다. 부차적으로 적어도 우리 회사에선 작성한 코드를 리뷰하고, 이것이 기존의 파이프라인에 적용되기 전, 테스트하는 것 또한 인간의 영역이다. AI를 얼마나 많이 사용하는 건 상관이 없고, 이 코드에 대한 책임을 인간이 지는 셈이다. 물론 그 테스트를 똑바로 하지 않아서, 엉망이 되는 경우도 만연하다. 그리고 이에 책임을 제대로 안 지는 일도 만연하다, 이것만큼은 예전 인간 사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무튼, 사람들이 예전에 높이 평가하던 대부분의 능력은, 분명히 예전보다 가치가 없어졌다. 어떤 보고서에 좋은 텍스트를 작성하는 것, 발표자료를 예쁘게 꾸미는 능력, 좋은 코드를 작성하는 것 등등.
감히 내가 생각건대, 그나마 지금까지 가치가 남아있는 건 아이디어, 혹은 누군가가 이야기하는 도메인 지식 내지는 누군가는 그저 인간의 취향에 맞게 무엇이 더 ‘바람직한’ 방향인지 지시하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그리고 나는 이것에 더해 이걸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능력, 아니 능력이라기보다도 의지를 꼽고 싶다.
사실 재밌는 건, 그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진 이도, 그리고 이걸 구현하려는 의지를 갖춘 이도 많이 없다. 사실 이것만 있다면, 혼자 1인 창업을 해도 되는 시대가 되었다. 실제로 우린 그런 이들이 상대적으로 ‘쉽게’ 백만장자가 되는 일들을 보고 있다. 이처럼 사회는 바뀌었고, 이외에 대부분의 일은 실로 부가적인 일이 되었다. 누군가는 너무 기술만능주의라고 비판할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그렇다.
소프트웨어가 이처럼 쉽게 만들어진다는 생각을 하다 보면, 무언가의 어떤 유형물의 인프라와 연결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적어도 애플의 주가가 다른 빅테크에 비해 굳건한 건 실체가 존재하기 때문이고, 엔비디아가 작년까지만 해도 대단한 성장을 이뤘다거나, 우리나라 반도체의 약진도 그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생각을 조금만 이어가면, 결국 필요한 건 에너지라는 생각에 이른다. 성범죄자 엡스틴 파티에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남아공 태생의 사업가가 매번 하는 이야기다.
여기서, 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컴퓨팅 파워의 수요를 빨리 조달할 수 있는 에너지자원은 태양 에너지밖에 없다. 원자력은 그렇게 빠르게 조달할 수 없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귀결하는 건 전력 시스템의 확장이다. 여기서 나오는 폐열을 잘 활용하는 것과 같은 스마트 에너지 시스템은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고 있으니 좋은 아이디어가 될 수도 있겠다.
이처럼 AI가 이미 4차 산업혁명을 이끌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는 실례지만, 제레미 리프킨이 2012년에 냈던 3차 산업혁명, 즉 에너지와 인터넷이라는 통신기술이 복합적으로 연결된 주장이 - 여기서 인터넷, 아니 인공지능의 파급력은 그가 예상한 것보다 컸다고 그도 인정하지 싶다 - 이제야 실질적으로 환경의 논리가 아니라 자본의 논리로 실현되지 싶다. UN 기후변화협약 등이 유명무실해지는 환경의 논리를 이긴 건 결국 자본주의의 논리이다. 지속가능성이라는 인류의 숭고한 가치는 이 시대에 살아남기가 어렵지 싶다.
이런 이유를 총망라해서 다시 생각해보면, 전통적인 방식의 많은 것들이 무의미해졌다.
적어도 나는 전통적인 방식의 배움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쯤에, 학계를 떠날 수 있었다. 아직도 수많은 세상의 일들은 마치 그런 건 아무 문제가 없다고, 그저 기존의 방식에서 조금 적용하면 된다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다. 정말 큰 착각이다. 전통적인 배움, 연구의 방식은 더이상 존재할 수 없으며 그 가치도 예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런 것들에 많은 시간과 노력, 자본 등을 투자하는 것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는 개인이 판단할 몫이다.
마찬가지로 이는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플랫폼도 마찬가지다. 학계 논문도 예전과 같은 의미가 아닌데, 블로그라고 다를 수가 있겠는가. 되지도 않는 스팸성 피싱 댓글들을 보면, 이곳에 글을 쓰는 게 의미가 있는 건가 싶은 의문이 든다. 지금까지 인간이 실제로 글을 쓰고, 그 취지가 제대로 남아있는 곳은 어르신들이 사용하는 방식의 페이스북 내지는 최근에 많은 이들이 짧거나 길게 본인의 생각을 전달하는 스레드, X (옛 트위터), 그리고 조금은 더 전문적인 방식으로 이용되는 링크드인 정도가 전부이지 싶다. 물론 이 모든 곳에도, AI가 쓰이지 않는 곳은 없고, 그 글이 실제로 얼마만큼 실재한 것인지는 판단할 수가 없다. 실제로 매체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느낄 뿐.
이런 이유로 글을 쓰는 것을 게을리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얼마 전까지 꽤 많은 열정으로 이곳에 글을 쓰던 나의 반려자는 계정을 삭제했다. 어쩌면 나도 그걸 실행에 옮기게 될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