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세계 속으로: 부다페스트

이방인의 여행기

by 송다니엘

벌써 십 년째 내겐 로망과도 같던 이곳. 큰마음 먹고 오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 라인과 도나우를 따라 군사 경계선을 만들었던 로마였기에, 부다페스트도 역시 그 당시 로마의 군사기지이자 대표적인 도시였다. 로마에서 그 유적을 보는 것도 감명 깊지만, 1,000km보다도 떨어진 곳에서 그들의 흔적을 마주하면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 이는 유럽인들의 뿌리가 로마라는 점과 그 문명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상기하는 건데, 정작 유럽인들, 이태리인들조차 이에 감명받지 않는다.


로마 멸망 이후, 동방에서 넘어온 유목민족, 마자르족에 의해 새로운 나라가 생기는데, 헝가리인들은 이를 본인들 역사의 뿌리로 생각한다. 마자르족 이전에 이곳에 자리 잡았던 훈족에 대해선 흉노와 같은 민족이라는 데 학자마다 이견이 있고, 현재 헝가리인의 뿌리인 마자르족이 훈족과는 다르다는 게 전반적인 헝가리 사학계의 입장이다. 이는 본인들이 아시아에서 온 것이 아니라, 유럽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는 이유에서 기인한다고 누군가가 말해줬다.


마자르족, 헝가리 왕국 최초의 왕인 이슈트반은 유럽 세계의 편입을 위해 가톨릭을 국교로 삼는데, 그 덕분에 그의 이름은 부다페스트 곳곳에 있다. 성당, 다리, 거리 없는 곳이라곤 없다. 실제로 헝가리 건국 1,000주년을 기념하여, 성 이슈트반 성당, 영웅광장 등이 만들어졌고, 그 건축물의 중심엔 그가 있다.


헝가리는 오스만 제국에 의한 통치를 받기도 하였는데, 그 흔적 또한 현재 유명한 온천 등 곳곳에 남아있다. 또, 그 이후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통치를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한 민족주의적인 움직임도 있었고, 박물관에 가보니 이런 역사를 더 강조하려고 하는 노력도 엿볼 수 있다. 여기서 난 오스트리아 왕비였던 엘리자베스 시씨 이름을 딴 건축물, 다리도 있다는 점에서, 본인들을 억압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왕족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두고 모순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그녀가 살아생전에 헝가리에 우호적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영웅광장에 있던 오스트리아인의 동상은 모두 헝가리인으로 대체됐다.


두 국가의 동행은 1차세계대전 이후 종료하게 되는데, 이는 오스트리아 제국이 패전국이 되었기 때문. 헝가리는 전쟁 이후, 많은 영토를 잃었는데 그중 일부가 현재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등의 땅이다. 2차세계대전 때도 나치 추축국에 가담하는 바람에 많은 이들이 희생됐다. 전쟁 이후, 소련의 억압된 통치 때문에 또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그들의 역사를 보면, 오랫동안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소련 붕괴 이후,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는 등 빠르게 경제발전을 하려는 모습이다. 우리나라 삼성, SK이노베이션도 이곳에 큰 공장이 있다. 글로벌 기업이 이곳을 유럽 진출의 교두보로 삼고, 비교적 저렴한 인건비로 생산하면서도, 서유럽 시장을 목표로 삼은 전략이 아니겠나 싶다. 그런 이유로, 이곳 현지인들의 임금은 아주 적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기업들의 투자가 헝가리 자체의 경쟁력 제고에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 한편, 한국 사람들도 많고, 부다페스트 내 종합대학의 한국어 학과가 있을 정도로 내가 느끼기엔 그동안 다녔던 그 어떤 유럽의 도시보다도 親한국적이라는 느낌도 받았다.


끼인 유럽(Zwischen Europa). 2등유럽. 헝가리를 비롯한 동유럽에 대한 평가다. 일단 뿌리 자체가 동쪽에서 넘어왔고, 서유럽 본인들과는 경제규모, 국제적 영향력 등 다른 위치에 있기에 이를 구분 짓고 싶은 서유럽의 오만한 오리엔탈리즘적인 사고방식이다. 이는 최근에 생긴 별명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 민족주의, 제국주의가 판을 치던 18~19세기보다도 이전에 동유럽을 평가하던 개념이다.


헝가리는 공산권 붕괴 이후, EU와 NATO에 가입하며, 친서방적인 움직임도 보이는데, EU 산하의 European Institute of Innovation and Technology도 있는 등 헝가리는 EU 가입 이후 많은 혜택을 받은 듯하다. 그런 한편, 현재 정치 지도자가 극우 성향을 띠고 있는 등 ‘끼인 유럽’이라는 표현이 공감되기도 한다.


또, 역사적으로, 합스부르크 제국 아래에서도 민족반란을 일으키고, 소련의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혁명을 일으키고, 이후 바르샤바 조약 폐지를 주도했을 정도로, 민족주의적인 색채, 애국심이 강하다고 느낀다. 도시 곳곳, 지하철 등 모든 곳에 위인들의 딴 곳이 많다. 그 어느 도시에서도 이 정도로 이름이 많이 붙은 걸 본 적이 없다.


나로선 경제적 규모가 아직은 서유럽만큼 되지 않지만, 풍요로운 역사와 이곳만의 매력. 동유럽의 진주라는 게 맞는 평가라고 하고 싶다.


3월 초 한국으로 가게 되면서부터 시작한 50일에 가까운 긴 여행을 오늘부로 마무리한다. 나도 이젠 여행객이 아니라 나의 현생을 살아야 할 시점이다. 여행객과 현생은 참 다르다는 걸, 그리고 이젠 낭만이란 걸 찾을 수 없이 현실을 살겠지만, 낭만 가득했던 여행을 좋게 마무리할 수 있어 참으로 다행스럽다. Sz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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