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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Dec 02. 2022

베를린, 컨퍼런스에 서다.

오늘도 조금 더 성장했다.

나는 비교적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했었다. 학창 시절 줄곧 조별 모임 발표도 도맡아 했고, 대학교 때도 팀 프로젝트 때마다 발표를 맡아했다. 그때마다 떨림은 있었지만 이내 5분 뒤로 가라앉고는 했었다.


7년 전 베를린에서 처음으로 회사에서 10분 동안 간단히 프레젠테이션을 할 상황이 생겼다.


미팅 들어가기 30분 전 팀장이 나에게 혹시 네가 이번에 한 프로젝트를 소개할 수 있냐 했다. 미리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전사 미팅이었다.


잘 된 프로젝트였으니 자랑하라고 만들어준 자리였다. 다만 그 당시 주니어였던 나에게 이런 갑작스러운 고난을 안겨준 팀장이 원망스러웠다.


모두가 노려보는 듯했던 그 분위기에서 나는 긴장하고 떠느라 말을 이어가지 못했고, 급기야 나는 그 자리에서 말을 멈췄다.


"미안, 내가 지금 너무 떨어서 말을 못 하겠어, 잠시만 시간 좀 줘, "라고 했고 모든 직원들이 웃으며 박수를 쳐줬다. 그 바람에 내가 웃음이 터졌고, 이내 페이스를 되찾고 다시 발표를 할 수 있었다.


그 이후 나는 회사 내에서 하는 발표들은 줄곧 잘하는 편에 속했다. 물론 타고난 떨림은 있었지만 그 잘난 탑스타들도 무대공포증은 누구나 있다는 말이 참 위안이 되었고, 실제로도 마인드 컨트롤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청중 앞에서, 그것도 국적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컨퍼런스에서 발표를 해본 적은 없었다.


이번 베를린 한 호텔에서 열린 앱 마케팅 컨퍼런스에서 스피치를 할 수 있냐는 제안을 받았다. 별로 생각이 없었는데, 우리 매니저와 팀 동료가 "썬, 너 이번에 인플루언서 마케팅으로 UA 했던 거, 그건 좀 특이하고 재미있을 것 같아, 어렵게 낸 성과니 충분히 컨퍼런스에서 이야기 할만해. 한번 해볼래?"라고 제안을 했다.


제안을 받을 당시 9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그래 해보자- 덜컥 받아들였다.


그리고 다가온 12월 1일 오늘.


오늘이 오기까지 나는 3주간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었다. 2년 간의 프로젝트를 30분 내의 시간 안에 단축해서  임팩트 있게 보여야 하는데 이걸 내가 영어로 잘 전달할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했다.


아침에 나가면서 -아, 나 너무 떨려-라고 했더니 남편이 -할 수 있어!-라고 한국어로 응원했다. 너 원래 청중 앞에서 이야기 잘하잖아, 걱정 마- 라고 말하며 내 어깨를 토닥였다.


내 워크샵 장소는 3층의 꽤나 외진 곳에 위치했다. 찾아오기가 힘들어서 사람들이 좀 덜 오려겠거니 하고 마음을 놓는 그 순간. 아뿔싸, 회사의 보안장치로 내 랩탑이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준비된 랩탑으로 겨우겨우 연결해서 발표를 하려니 이미 5분이 지연되어 있었다. 연결이 다 되고 인사를 하니 모두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처음부터 시작이 좋지 않다는 생각에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람들은 80명 규모의 룸에 반 정도 차 있었다. 준비한 카모마일 차를 들이키며 마인드 컨트롤을 했지만 쉽게 진정되지는 못했다. 또다시 7년 전 주니어 때가 떠오르는 듯했다.


그러다 이내, -나는 좋은 발표를 하고 있다, 쫄지 말자,- 는 생각을 머리에 곱씹었고, 조금씩 내 마음도 차분해졌다.


한 10분이 지났을 때쯤 워크샵 룸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맨 앞 줄에도 몇 명이 안게 되었는데, 유난히 한 독일 남자와 독일 여자의 표정이 너무 심각했다. -내가 뭘 잘못 이야기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괜히 더 긴장이 되어 그들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 와중에 나를 응원해주러 온 몇 명의 친구들과 회사 동료들의 얼굴이 보여 다행이다 싶었다.

 

내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핸드폰으로 내 프레젠테이션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세상 심각하던 그 독일인 두 명도 계속 내 프레젠테이션을 찍고 있었다.


그때부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자, 발표 중간부터 나는 더 이상 떨고 있지 않았다. 이내 농담도 즐겼다. 친구 말로는 어느새 내가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그래, 질문 한 번 해보시지, '라는 태도였단다.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던 내 매니저도 마지막에 와서, 원래 프레젠테이션 이렇게 많이 해봤냐고 물어봤다. 심지어 다른 워크샵 세션들은 질문도 많이 안 하는데, 여기서는 청중들이 정말 관심을 가지고 좋은 질문이 많이 오고 간 것 같다며 칭찬해줬다. 덧붙여 -혹시 다른 회사에서 너 뽑겠다고 안 하냐-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물었다.  발표가 끝나고 많은 이들이 -너무 유익한 내용이었다, 고맙다-고 말해줬다.


내가 하는 일을, 회사 밖에 나가 업계 컨퍼런스에서 전문적으로 발표한 적은 베를린에 와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스페인에 있을 때도 가끔씩 국제 행사에서 한국 시장에 대해 발표를 한 적은 있었다. 그때는 한국인으로서, 한국 시장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한국 시장이 아닌, 내가 한국인임을 떼어놓고 정확히 내가 하는 업무만으로 여러 사람들 앞에 섰다. 물론 일주일 내내 긴장되고, 떨렸지만 참 하고 나니 아무것도 아니다 싶다.


발표가 다 끝나고  "뭐야, 사람 사는 것 다 똑같네, "란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 어이가 없다.


어쨌든, 외국에 나와 또 나 스스로의 한계를 깨는 경험을 했다. 오늘도 조금 더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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