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다짐

성장보다 유지가 더 어렵다는 것을 배운다

by sun


다시 일어서는 법은 늘 조용하다



언제부턴가 나는 다짐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러워하게 되었다.

다짐은 늘 ‘변화’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지기 위해 더 열심히 살기 위해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그 모든 ‘더’의 방향은 결국 지금의 나를 불완전하다고 단정짓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요즘은 결심 대신 조용히 마음속으로 읊조리는 말이 있다.

“지금의 나로도 충분히 괜찮다.”


이 문장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지만 내 안에서는 작게 파문을 일으킨다.

세상은 여전히 바쁘고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를 앞지르며 살아가는데

나는 그 틈에서 잠시 멈춰 서서 그저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것만으로 스스로를 칭찬하려 한다.

누군가는 그걸 게으름이라 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모든 다짐이 성장으로 향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어떤 다짐은 그저 ‘지금의 나를 지키는 용기’일 수도 있다는 것을.


한때 나는 다짐이란 ‘목표의 선언’이라 믿었다.

다이어리를 새로 사고 손끝에 힘을 주며 “올해는 꼭”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적던 때가 있었다.

그 다짐들은 언제나 시작할 때

가장 뜨거웠고 오래가지 않았다.

며칠만 지나면 일상의 무게가 그 열정을 눌러버렸다.

결국 남는 것은 무너진 목표와 자기혐오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짐의 방향을 바꿨다.

무엇을 이루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무엇을 놓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매일 아침 일어나서 무사히 하루를 마치는 일

사소한 일에도 고마움을 느끼는 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일.

이런 일들은 거창하지 않다.

하지만 인생의 대부분은

이런 사소한 일들로 채워져 있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조용한 다짐은 세상에 소리치지 않는다.

자기 자신과의 대화 속에서 아주 천천히 쌓인다.

예전에는 다짐을 세우면 그것을 반드시 누군가에게 보여줘야 했다.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친구들에게 말하고, 때로는 성취감을 자랑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늘 ‘보여주는 사람’이었지, ‘지켜내는 사람’은 아니었다.

지금의 나는 다르다.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오히려 아무도 모르게 꾸준히 나를 지켜내는 일에 더 깊은 의미가 있다.


그건 마치 작은 촛불 같다.

크게 타오르지 않지만 바람이 불어도 꺼지지 않는다.

조용한 다짐은 그런 것이다.

눈에 띄지 않지만

삶의 어둠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게 하는 불빛.

그 불빛 하나면 충분하다.


요즘은 다짐 대신 하루의 끝에 짧게 기도처럼 중얼거린다.

“오늘도 무너지지 않아서 다행이야.”

이 말 속에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위로가 담겨 있다.

누구나 무너질 수 있고 누구나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다시 일어나고 다시 걸어가려는 마음이 있다면,

그건 이미 다짐이다.

조용하지만 단단한 다짐.


나는 이제 사람들에게

“열심히 살아라”는 말을 쉽게 하지 않는다.

그 말 속에는 너무 많은 오해와 압박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미 충분히 버티고 있고

누군가는 그 말 한마디에 무너진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저 오늘을 살아낸 것만으로도 잘했다.”


예전에는 성취가 내 존재의 증거라고 생각했다.

남들보다 앞서야 하고

더 많은 것을 가져야 의미가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내 마음을 끊임없이 지치게 했다.

이제 나는 그 반대로 믿는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누군가보다 느려도

그저 나답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조용한 다짐은 욕심을 비우는 연습이기도 하다.

그 안에는 ‘더 나은 나’가 아니라 ‘지금의 나’가 있다.

모든 다짐이 세상을 향해 있던 시절엔 늘 불안했다.

이제는 나를 향한 다짐으로 바꿨다.

나는 나를 버리지 않겠다고

내가 나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고

그 조용한 약속 하나면 충분하다.


때로는 다짐이 실패로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조용한 다짐은 실패하지 않는다.

그건 성취를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매일 조금씩 마음을 정돈하고, 자신을 다독이는 그 과정 자체가 이미 완성이다.

마음이 무너지는 날에도,

누군가에게 상처받는 날에도,

그 다짐은 내 안에서 여전히 나를 지탱한다.


삶이란 늘 거대한 도전의 연속이 아니라,

작은 평온을 지켜내는 싸움의 반복이다.

그리고 그 싸움은 소리 없이 벌어진다.

누군가의 눈에는 아무 변화도 없어 보이겠지만

조용히 하루를 버티는 사람의 내면에는

세상을 이길 만큼의 강인함이 숨어 있다.


나는 이제 안다.

크게 다짐하지 않아도 거창한 계획이 없어도,

인생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조용한 다짐은 그저 방향을 잃지 않게 해주는 나침반일 뿐이다.

누구보다 천천히 가더라도 어제보다 조금 더 자신을 이해하고 조금 더 다정해진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오늘도 나는 조용히 다짐한다.

내일도 오늘처럼 나답게 살아가자고.

완벽하지 않아도, 혹은 느려도 흔들려도 괜찮다고.

세상에 들리지 않는 이 작은 다짐이

누군가에겐 아무 의미 없어 보일지라도,

내게는 가장 진한 약속이다.


삶은 거창한 다짐으로 바뀌지 않는다.

대신 수많은 조용한 다짐들이 모여 조금씩 변해간다.

그렇게 하루를 건너고 한 계절을 보내고,

어느새 나도 모르게 단단해진다.

그게 천천히 살아간다는 것의 진짜 의미 아닐까.




조용한 다짐은 소리보다 깊습니다.
소리내지 않아도, 마음은 알고 있어요.
오늘도 무너지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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