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순간, 뇌는 과거를 뒤진다

주마등

by sun

죽음의 문턱에서 사람의 기억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간다는 현상을 흔히 ‘주마등’이라 부른다. 삶의 장면들이 순식간에 펼쳐지는 이 경험은 오래전부터 문학과 철학의 소재가 되어 왔다. 그런데 이 현상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하나의 흥미로운 질문이 생긴다. 그 기억의 폭주는 과연 죽음을 극복하기 위한 긍정의 탐색일까, 아니면 부정의 기억을 통해 생존의 해답을 찾는 과정일까?


먼저 인간의 기억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간의 뇌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중심으로 기억을 축적한다. 즐거웠던 경험보다 실패와 고통의 기억이 더 또렷하게 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생존을 위해서다. 불에 데인 경험을 강하게 기억해야 다시 불에 손을 넣지 않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주마등은 어쩌면 생존을 위한 부정적 데이터의 빠른 탐색 과정처럼 보인다.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신호가 들어오는 순간, 뇌는 지금까지 겪었던 위기와 고통의 경험을 빠르게 훑으며 “어떻게든 살아남을 방법이 있었는가”를 찾는 것이다.


실제로 인간은 위기의 순간에 과거의 실패나 고통을 더 선명하게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이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긍정적인 기억은 삶을 풍요롭게 하지만 부정적인 기억은 생존을 보장한다. 따라서 죽음의 문턱에서 기억이 빠르게 재생되는 현상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생존 전략의 마지막 작동일 가능성이 있다. 그 순간 뇌는 지금까지 축적된 경험을 데이터베이스처럼 뒤지며 탈출구를 찾으려 한다. 주마등은 단지 감상적인 삶의 회고가 아니라 극단적 상황에서 작동하는 마지막 계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해석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주마등을 경험했다고 말할 때, 그 속에는 단순한 고통의 기억만이 아니라 사랑, 어린 시절의 풍경, 누군가의 얼굴, 따뜻한 장면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만약 주마등이 오로지 부정의 기억만을 탐색하는 과정이라면, 왜 이런 장면들이 나타나는 것일까. 이것은 주마등이 단순히 생존 기술의 데이터 검색이 아니라 존재의 의미를 재확인하는 과정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인간에게 생존은 단순히 육체의 지속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삶을 계속하려는 의지는 대개 살아야 할 이유와 연결된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족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사랑이며, 또 어떤 사람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꿈이다. 따라서 죽음의 문턱에서 떠오르는 기억들이 반드시 부정의 경험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뇌는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가장 강렬한 감정이 담긴 장면들을 불러올 수 있다. 그 감정이 긍정일 수도 있고, 후회일 수도 있으며, 미완의 욕망일 수도 있다.


이 지점에서 주마등은 부정과 긍정이라는 단순한 구분을 넘어선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계산과 존재를 위한 의미 탐색이 동시에 일어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위기를 극복할 단서를 찾기 위해 과거의 경험을 훑고, 다른 한편으로는 삶을 붙잡을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가장 강렬했던 기억들을 불러온다. 그래서 어떤 장면은 두려움으로, 어떤 장면은 그리움으로 나타난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주마등이 지나가는 속도다. 사람들은 그것을 “말이 달리듯 빠르게 스친다”고 표현한다. 이 속도는 단순한 기억 재생이라기보다 압축된 삶의 검토에 가깝다. 인간의 뇌는 평소에도 수많은 정보를 동시에 처리하지만, 극단적인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그 속도가 더욱 극대화된다. 주마등은 어쩌면 뇌가 마지막 순간에 수행하는 삶 전체의 압축 검토일 수 있다. 살아온 경험이 생존의 기술이었는지, 아니면 의미의 흔적이었는지 확인하는 마지막 과정 말이다.


따라서 “주마등은 부정인가 긍정인가”라는 질문은 사실 조금 다른 방향으로 수정될 필요가 있다. 주마등은 특정한 감정의 방향성을 가지기보다 삶 전체의 기억을 생존과 의미라는 두 축에서 동시에 탐색하는 과정일 가능성이 높다. 인간은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 존재하는 생물이 아니다. 동시에 의미를 찾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 앞에서 떠오르는 기억들은 단지 위기의 데이터가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흔적이 된다.


어쩌면 주마등의 본질은 긍정도 부정도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총합이다. 인간이 살아오며 경험한 기쁨과 고통, 사랑과 후회, 승리와 실패가 한순간에 압축되어 스쳐 지나가는 장면. 그 장면 속에서 어떤 이는 살아야 할 이유를 찾고, 어떤 이는 지나온 삶을 받아들이며, 또 어떤 이는 단순히 기억의 흐름 속에 몸을 맡긴다.


결국 주마등은 죽음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일 수도 있고, 삶을 정리하는 마지막 장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이 단순히 부정적 기억의 탐색도, 긍정적 기억의 회귀도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인간이 살아온 시간 전체가 마지막 순간에 스스로를 비추는 거울 같은 현상에 가깝다.


그래서 주마등을 바라보는 가장 적절한 표현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 그것은 죽음을 이기기 위한 긍정도 공포에서 비롯된 부정도 아니다. 단지 한 인간이 살아온 삶이 마지막 순간에 스스로를 훑어보는 가장 빠른 사유의 형태일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평균이라는 집단 최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