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無題)
당신의 독서 방향성은 어느 쪽으로 가고 있는가?
마음을 소비하는가?
깨달음을 얻는가?
공감과 위로를 얻는가?
질문을 해소하는가?
자신만의 선호하는 독서의 방식이 있을 것이고,
자신이 얻고자 하는 답을 독서를 통하여
얻으려 하는 사람 있을 것이고,
자신이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장르가 있을 것이다.
책장을 덮은 뒤 남는 것은
이미 알고 싶은 세계만 반복하고 있는가?
아니면 잘 포장된 체념인가?
책을 읽고 난 후에는 무엇을 배웠으며, 공감 되었는지
선택이라는 정해진 길이란 없다. 따라서 정답도 없다.
자신이 성찰한 것을 통하여 느낀 점을
대부분 자신이 세상 속에 내던져진 상황에.써먹으려
계산적으로 대입시키려 한다.
어쩌면 우리는 본질적인 인간 그 자체에 대한
것을 알고 싶어하는 것일까?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는 드넓은 세상과 화합을 아름답게 하기 위한 사회적인 생존을 알아가기 위한 것일까?
나는 고전을 많이 읽는다.
탐구심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 탐구심은 때로는 나의 상황에서
세상과 내면이 될 수도 있지만,
고전 성인들은 삶의 전체를 고귀한 문학으로
살아온 노고 덕분에 후세까지 남아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자신이 필요한 깨달음을 얻어가고는 한다.
보통 현대에서 천재라고 칭송받는 작가들도
신탁이라고 할 만한 답을 줄 수 없을 것이다.
같은 주제를 말해도 여러 명의 저자들 중 자신과 공명하고
자신의 가치관을 보완하여 준다고 생각하는 저자와
잘 맞는다고 생각하면 그 영감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니면 말고"라는 식으로 흘러 넘긴다.
모든 작가들의 작품과 글들은 고귀하고
건강하며, 풍요로운 정신에서 나오는
그들의 가르침과 무언으로부터의 질문은
신성한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각자의 입맛대로 골라서
독서를 하는 것이 아닌,
정말 진정한 독서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단순히 슬픈 소설을 읽고 훔친 눈물,
단순히 인문학을 통하여 가치관을 확장하려는 고뇌,
단순히 카탈로그를 읽고 현대적인 세상을 이해하려는 시선
이 중 한 쪽으로만 치우쳐지면
다른 쪽은 휘발성 지식으로 본다는 것이랑 뭐가 다른가?
대표적으로 공자의 -논어- 위정편 중
“배우되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험하다.”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학익불사증망 사이불학즉태))
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사유하고 배워야한다.
반대로 사유만 있고 배움이 없다면,
그건 허공을 헤매는 오만한 자의 독백에 불과하다.
사유는 배움을 통해 ‘질서’를 입고,
배움은 사유를 통해 ‘방향’을 얻는다.
공자가 말한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는
단순한 균형론이 아니다.
그는 인간이 의식적으로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말했다.
배우는 자는 반드시 의심해야 하고,
사유하는 자는 반드시 근거를 가져야 한다.
사유 없는 배움은 노예의 언어이고,
배움 없는 사유는 망상의 자유다.
결국 우리는 배우기 위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기 위해 배워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앎’의 출발점이며,
인간이 무지로부터 벗어나 존재로서 깨어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독서는 단순한 배움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무지를 해체하는 고행이며,
내면 깊숙이 감춰진 침묵한 자아와의 대면이다.
책은 결코 친절하지 않다.
그것은 거울처럼 차갑고, 칼날처럼 정확하다.
어떤 이는 그 칼날을 피해 흉내 내며 읽고,
또 어떤 이는 그 칼날에 찔리며 자신을 본다.
책이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그 말 앞에서 당신이 얼마나 흔들리는가이다.
같은 문장을 읽고도 누구는 잠들고, 누구는 깨어난다.
그 차이는 재능이 아니라 의식의 깊이,
즉 진실을 견딜 수 있는 존재의 강도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독서를 통해 무엇을 얻고,
무엇을 깨닫는지는 책의 몫이 아니다.
그건 철저히 독자의 운명이다.
어떤 이는 문장 속에서 위안을 얻고,
또 어떤 이는 그 문장에 의해 파괴된다.
독서는 배움의 과정이 아니라
자신을 잃고 다시 태어나는 의식의 통과의례다.
모든 독서는 질문으로 끝나야 한다.
답을 얻는 순간, 사고는 멈춘다.
당신은 배운 것을 믿는가, 아니면 믿는 것을 배우는가?
깨달음이란 빛의 경험인가,
아니면 어둠을 끝까지 바라본 자의 상처인가?
지식은 늘 옳은가, 아니면 단지 더 세련된 무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