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은 것과 화해하며, 잊지 않아도 괜찮은 일들
사람은 본능적으로 빈자리를 두려워한다.
무언가를 잃고 나면, 그 자리를 급히 메우려 한다.
물건으로, 사람으로, 혹은 새로운 일로.
그 공백이 너무 낯설어서,
텅 빈 채로 두면 금세 부서질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야 안다.
어떤 자리는 채워야 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대로 비워두어야 완성되는 공간이 있다는 걸.
그리움이란 단어는, 사실 ‘사라짐’이 아니라 ‘머묾’에 가깝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이미 지나간 것이 아니라,
아직 떠나지 못한 감정의 잔향이다.
그 여운은 언제나 우리 안에 남아,
어떤 날엔 따뜻하게, 어떤 날엔 서늘하게 흔들린다.
그런 날이 있다.
익숙한 노래가 우연히 들리면,
그 노래가 아닌 한 시절이 되살아난다.
그때 함께 걷던 거리, 그 사람의 뒷모습,
아무렇지 않게 웃던 자신의 얼굴.
그 모든 것이 지금은 없지만,
이상하게도 그 부재 속에서
나는 여전히 ‘함께 있었다’는 온기를 느낀다.
그리움이란, 끝이 아니라 형태를 바꾼 동행이다.
사라진 자리를 억지로 채우지 않고 그대로 두면,
그 빈자리에는 바람이 드나들고,
빛이 머무르고, 마음이 쉰다.
그건 상실의 공간이 아니라,
삶이 한 번 더 숨을 쉬는 공간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리움 속에서
인간다움을 가장 깊이 배운다.
잡을 수 없는 것을 인정하는 일,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받아들이는 일,
그리고 여전히 마음 한쪽에 남은 온기를
미련이 아닌 기억으로 간직하는 일.
이건 체념이 아니라 이해의 과정이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그때 조금만 덜 애썼다면,
조금만 덜 매달렸다면,
조금만 더 그 공허를 믿었다면 어땠을까.
빈자리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평화로웠을지도 모른다.
그리움은 결국 나를 살아 있게 만든다.
누군가를, 혹은 어떤 순간을
이토록 그리워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진심으로 살아냈다는 증거다.
그래서 그리움은 아프지만, 동시에 아름답다.
그건 지나간 시간의 잔재가 아니라,
‘내가 그때 존재했다’는 생의 증명이다.
이제는 억지로 지우지 않는다.
남겨진 기억은 손대지 않은 채 둔다.
가끔은 먼지가 내려앉은 채로,
가끔은 바람에 흩날리듯 그렇게 두기로 했다.
그렇게 비워진 자리에서 나는 조금씩 자란다.
상실은 사라짐이 아니라,
삶이 스스로 균형을 맞추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잃으며 산다.
그러나 그것이 비극이 아니라는 걸
시간이 우리에게 천천히 가르쳐준다.
무너진 자리에도 여전히 하늘은 열려 있고,
그리움의 공간에도 바람은 머문다.
삶은 그렇게, 빈자리를 통해 다시 이어진다.
그리움이란 어쩌면,
‘잊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의 다른 얼굴일지도 모른다고.
잊지 못해 괴로운 게 아니라,
잊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 단단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조금씩 또 내일도 조금씩
떠난 것들과도 평화롭게 공존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러니 채우려 하지 말아요.
그리움은 사라져야 할 감정이 아니라,
그대로 두어야 완성되는 마음의 풍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