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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re Oct 08. 2023

수도원에서의 하룻밤

너는 어디에 있는가.

걷기 첫날 알베르게를 못 잡은 트라우마로 단순한 우리 일행은 둘째 날 목표를 그냥 알베르게 입성으로 정한다.

가까운 곳에 오래된 수도원을 알베르게로 만들어 운영하는 곳이 있다 해서 그곳이 목적지가 되었다.

천천히 걸어 두 시간쯤 거리에 있다.

인도가 너무 좁아 바로 옆으로 차가 쌩쌩 달리는 아슬아슬한 포르투갈 길을 걸어 마침내 조용한 골목길로 접어든다.

그저 시골 샛길 같은 곳을 걷다 돌담을 따라나가니 돌연 묘지가 나오고 수도원이 보인다.

마을도 조용하고 돌로 지어진 수도원 건물도 육중하다.

낮 햇살이 뜨거워도 돌건물 속엔 시원한 냉기가 서려있다.

몇 백 년 된 돌 속의 공기가 내려앉아선지 차분하고 절로 경건해지는 듯하다. 창백하고 천천히 걷고 조용히 말을 하는 여자가 체크인을 해주고 검은 옷을 입은 거구의 남자가 잡다한 시중을 든다. 이 한적하고 구석진 산간마을에 눌러앉은 순례자들이다.


해 질 녘 고요한 동네를 산책하며 수도원 바로 뒤편에 있는 묘지를 둘러봤다. 죽은 이들의 사진이 묘비에 다 들어가 있다. 죽은 자들의 살아 있던 모습을 보는 것이 모르는 사람들의 죽음을 가깝게 느끼게 해 준다. 지금 내 나이 보다 십여 년이나 어린 나이에 죽은 어떤 남자 사진은 참 아름다웠다. 예술가였을까 싶은.

두 살 때 죽은 아기 사진은 어제 찍은 듯 생생한데 살아있다면 오십 중반이 되었을 나이이다. 그런데 그 묘비 앞에 생화가 놓여있다. 그 아이가 살다 간 이 년여의 짧은 시간이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꽃잎처럼 살아있다.

묘지를 나오는 늦은 시각 어둠이 내리는데 그때 어떤 사람들이 꽃을 들고 들어온다.

세월은 길기도 하면서 짧고 또 영원하다.


밤이 되기까지 들어온 순례자들의 수는 건물에 비해 너무 미미하다.

우리 일행 셋만 커다란 방에 배정되어 밤을 보내야 한다.

돌계단으로 이어진 복도는 어둡고 깊다.

겁이 많은 나는 왠지 잠을 못 들고 뒤척인다.

복도밖에서 쇠사슬 끌리는 소리가 날 것 같고 우리 방앞에 있는 계단 위에서 누군가 내려올 것 같다.

하필 화장실도 가고 싶어 져 오랫동안 참다가 결국 일행을 깨워 같이 다녀온다. 바로 방옆인데도 혼자 갈 엄두가 안 난다.

스무 개쯤 되는 침대가 놓인 커다란 방 구석지에서 세명의 여자들이 밤을 보낸다.

다른 순례객들은 모두 3층에 있는데 우리만 4층 끝에 있다.

5유로 더 주고 침대에 넨 깔아주는 방을 선택했더니 아주 조용한 곳으로 분리가 된 것이다.

뒤척이며 온갖 생각에 시달린다.

어떤 사람들이 수도사가 되었을까? 그들이 이 육중한 돌건물 속에 자신을 내려놓고 얼마나 신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을까? 복도 끝에 펼쳐진 채로 놓여있던 성경책은 어떤 페이지였을까? 인간은 얼마나 고통과 슬픔이 많아 이렇게 돌을 쌓고 쌓아 이런 건물을 짓고 스스로 들어와 자신을 유폐시키기도 하는 건지. 혹은 자신을 초월하는 건가.

자신을 없애고 없애 결국 하나님의 드넓은 세계에 입성할 수 있었을까.


뒤척이다 어찌어찌 잠이 들었다가 새벽 동행들의 기척에 잠이 깼다. 내가 일어나니 나를 걱정스럽게 보며 잘 잤느냐고 묻는다. 내가 밤중에 가위눌린 듯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고요한 밤중, 작은 소리도 다 울리는 수도원에서 내가 소리를 질렀다면 얼마나 괴했을까?

낭만으로 들어온 수도원 알베르게에서 나는 내 속 깊은 곳에 웅크린 공포만 다 드러낸 듯하다.


알 수 없는 세계, 켜켜이 쌓여있을 누군가의 기도들이 내 불안하고 연약한 내면을 건드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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