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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뭐 할까?
다시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비전공자 직장인의 이모티콘 도전기

엄마가 유독 자주 언급하시는 ‘네 살 때 내 모습’이 있다. 엄마가 밥 하는 사이, 내가 <김영만 아저씨의 종이접기>를 보고 토끼 가면을 그려서 쓰고 다니는 모습이 신기했다고 하셨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던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그림을 그릴 때면, 행복한 몰입에 빠져들 수 있었다.

어릴 때 나는 그림 그리는 시간 자체를 좋아했어서 누군가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 때, “니 그림 유치해!”라고 장래희망이 디자이너였던 친구가 내게 말했었다.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었다. 나는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릴 뿐이니까. “너 그림 잘 그린다! 드레스 입은 사람 그려주면 안 돼?” 또는 “내 포켓몬 띠부씰 하나 줄게. 내 포켓몬 컬러북도 니 꺼처럼 예쁘게 칠해줘!”라고 말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럴 때는 솔직히 기쁜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예술의 문은 좁게 느껴졌었다. 나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큰 재능을 가진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객관화해 버렸었다. 그렇기에 그림을 업으로 삼을 생각을 못했었다. 우여곡절 끝에, 취업에 유리하다는 공대로 진학했다. 하지만 대학교 1학년 때, 또다시 그림에 이끌려 회화동아리에 가입해서 유화를 그려서 전시를 했다. 그러다가, 취업을 마음먹고 2학년부터는 1학년 때 망쳐둔 학점을 메꾸고, 프로젝트나 대외활동 등 전공과 직접 관련된 활동들에 집중했다. 프로젝트에 그래픽이 필요하면 직접 그리고, 군입대를 앞둔 친구에게 좋아하는 연예인을 그려줄 때 정도 그림을 그렸다. 이런 식으로 필요에 의해 어쩌다 그림을 그렸기에, 내 그림 실력은 더 좋아지지는 않았다.


회사원이 되고 나서는 여력이 될 때 어쩌다 한 번씩, 그림을 그려서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했다. 상대방이 내 그림을 받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서프라이즈 그림 선물을 받을 사람의 표정을 상상하면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내가 그린 그림을 오랫동안 카카오톡 프로필에 올려두거나, 거실장에 잘 보관해 두거나, 책상 옆에 둔 사람들을 보며 행복과 보람을 느꼈다. 내 그림이 누군가를 기쁘게 할 때 나도 행복했다.


그렇게, 그림은 어린 시절부터 내게 행복을 주는 존재였다. 나는 그림을 오랜 친구처럼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비록, 바쁘다는 핑계로 삶에서 그림을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틈틈이 실낱같이 가느다란 인연을 이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취미로 게임을 만들던 입사 동기가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너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는 거 아는데, 일주일에 몇 시간 그려?” 나는 머리가 멍해졌다. 누군가에 그림을 선물해주고 싶을 때와 같은 특별한 이벤트가 없으면 한 시간도 그리지 않았다. 그림을 좋아한다면서 정작 그림을 거의 안 그리고 있다는 모순을 직면했다. 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한 시간을 따로 만들지 못했다. 내가 해야 했던 공부, 취업 준비, 회사 일 등에 밀려서 그림은 언제나 뒷전이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나는 그렇게나 시간이 없었던 걸까? 내 일상을 객관적으로 관찰했다. 나는 퇴근 후에는 줄곧 누워서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 사실, 퇴근 후 저녁 무렵에는 기력이 소진되어 어쩔 수 없는 수순이기도 했다. 하지만, 하루에 10분이라도 그림을 그려보자고 마음먹었다. 매일이 아니어도 좋으니 꾸준히 그려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림을 다시 그려보자"

오랜만에 온전히 나를 위해서 결정한 마음을 지키고 싶었다. ‘내 마음이 그렇다면, 아무리 피곤해도 냅다 눕고 싶은 마음을 집어삼키고 하루에 10분은 앉아서 그림을 그려야 하지 않겠니?’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조금씩 그리고 꾸준하게 그림을 그려보기로 했다. 솔직히, 그림을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없어서, 뭐부터 그려야 할지 막막한 마음도 불쑥 들었다.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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