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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셋맘 May 18. 2022

세상 깨끗했던 그녀가 달라졌다

Part1. 한번도 가지 않은 길을 가다

 6대 4 가르마로 쪽을 진 머리는 CS강사였던 나를 한층 더 단정하게 만들어준 헤어스타일이다. 이 헤어 스타일은 일명 승무원 머리라고 불리는데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간다. 그런데도 매일 아침 쪽 머리를 하기 위해 내 시간을 투자한 이유는 친절서비스를 강의하는 내게 단정함과 신뢰감을 동시에 주는 헤어 스타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 머리카락이 한 올이라도 빠져나올세라 헤어스프레이를 한주에 한 통씩 쓰면서 나는 쪽 머리를 오랜 시간 유지했다. 머리가 만족스럽게 된 날이면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버스 좌석에 머리를 기대지 않고 1시간을 꼿꼿이 허리를 펴고 출근했으니 깔끔한 머리가 어느새 자부심이 되었다. 주변 강사들은 이 번거로운 쪽 머리 대신 짧은 커트 머리로 변신하기도 했지만 나는 번거로움보다 깔끔한 것을 선택했다. 머리카락 한 올까지 신경 쓰는 내게 지인은 결벽증이 있는 거 아닌가 의심도 종종 했다. 이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일이 있었다.     

 

 결혼 전, 퇴근 후 지인과 맥주 한잔을 하기 위해 호프집으로 갔다. 나는 평소처럼 티슈를 뽑아 테이블을 닦고 또 한 장을 뽑아 수저를 올렸다. 주문한 맥주와 콜라 한 캔이 나오자 나는 또다시 티슈를 뽑아 맥주잔을 올리고 다른 한 장은 콜라 캔 주둥이를 닦았다. 지인은 이렇게 깔끔한지 몰랐다며 웃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표정이 점점 굳어 갔으니. 지인은 내가 테이블에 물방울, 음식물 흔적이 남으면 닦고 또 닦아대는 통에 대화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내 자리에 사용한 티슈가 넘쳐날 때쯤 지인이 한숨을 쉬며 한마디 던졌다.

“아까부터 봤는데 테이블 구멍 나겠다. 구멍 나겠어! 그만 좀 닦아라.”

자리에 쌓은 티슈를 보니 내가 얼마나 테이블을 많이 닦았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저분한 테이블을 보느니 차라리 구멍을 내더라도 닦는 것이 내 정신건강에 더 좋을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지인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 평소 습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하루에도 수차례 닦는 휴대전화, 물건은 항상 제자리에, 샴푸와 로션을 사용하고 꼭 주둥이 닦기, 조금이라도 틀어진 물건의 각도 바로잡기 등 결벽증을 의심할만한 습관들로 가득했다. 누군가 내게 밥 먹을래 씻을래 묻는다면 난 무조건 씻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이렇게 깔끔한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점점 달라져 갔다.      

 

 결혼 후, 오랜만에 다시 지인을 만나 아이들과 함께 식사했다. 지인은 나를 유심히 살피더니 내가 한마디 한다.

“야, 너 진짜 많이 달라졌다.”

무슨 말인가 싶어 되물었더니 지인은 말없이 내가 앉은 테이블을 봤다. 테이블은 난리도 아니었다.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국물과 반찬. 아이가 먹다 뱉은 사탕까지 온갖 음식물 흔적으로 빼곡했다. 남아있는 공간이 있다면 겨우 내가 들고 있는 숟가락 하나 놓을 공간뿐이었다. 지인의 얼굴과 테이블을 번갈아 보다가 나는 결국 웃음이 터졌다.

“지금 그거 신경 쓸 때가 아니야. 애들 조용히 있을 때 빨리 음식 끌어넣도록 해!”

내가 던진 말에 우린 서로의 처지를 이해한다는 듯 다시 식사하기 아니, 음식 끌어넣기에 집중했다.     


 첫째를 키울 때만 해도 이 정도까지 내려놓진 않았다. 아무리 피곤해도 내 몸과 집 청결을 위해서 아이를 재우고 늦은 밤까지 씻고 청소했다. 아이 장난감도 놀이가 끝나면 세척을 하건 소독 스프레이로 닦아서 바로 정리해야 마음이 놓였고, 거실에 깔린 층간소음 매트도 수시로 들어 바닥을 닦아야 내 마음도 깨끗해지는 듯했다. 내가 해야 할 청소를 다 하지 못하고 침실로 들어가는 날이면 마음이 찝찝해서 잠도 쉽게 오지 않았다. 그 마음은 다음 날 더러워진 집안을 보면서 스트레스지수를 높였다. 나는 정신건강을 위해 신체 건강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로 인해 출산 후 약해진 허리와 무릎이 아우성을 쳐댔고 저녁마다 곡소리 하는 내게 남편은 ‘대충 살아도 괜찮아. 여보’ 했다. 하지만 내 마음이 그렇지가 않았다.     


 가수 이적의 엄마이자 여성학자인 박혜란의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을 보던 날, 나는 무릎을 '탁' 치며 결심한다. 적당히 살기로. 저자의 집은 동네에 쓰레기통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동시에 사랑방으로 불렸단다. 저자는 시간과 신경이 제일 많이 쓰이는 일이 청소지만, 아이셋 키우는 집은 치워도 치워도 언제나 쓰레기통 수준이라 생각했단다. 오히려 청소 때문에 쓸데없이 소모되는 시간과 에너지가 큰데 그중에서도 가장 큰 손해는 아이들을 괴롭히게 된다는 점이라 했다.     


‘이제 청소해 놨으니까 어지르지 말아야 돼’라는 명령처럼 아이와 엄마를 다 구속하는 말이 또 어디 있을까. 이 명령처럼 지켜진다면 곧 아이들의 자유를 빼앗는 꼴이고, 만약 안 지켜진다면 엄마의 짜증을 촉발하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명령이다.
(중략)
나는 몇 년 동안이나 이런 어리석음을 되풀이한 끝에 드디어 위대한 발견을 해냈다. 즉, ‘집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사람이 집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선언했다. 나는 집을 위해서 살지 않고 아이들을 위해서 살겠노라고.


 저자의 말이 정말 멋지게 다가왔다. 나는 이 멋진 다짐을 본 날, 남편에게 선언했다.

“여보, 나도 이제 적당히 살거야.”

선언 이후, 나는 전보다 훨씬 유연해졌다. 장난감과 옷가지들이 거실 이곳저곳에 널려 있어도 여유를 두고 치우기도 하고, 아이가 바닥에 주스를 쏟거나 테이블에 음식물이 흘러도 예민하게 굴지 않으려 애썼다. 한 번에 다 내려놓지는 못했지만, 나는 차차 적당히 살기에 젖어 들고 있었다. 한 번씩 청소에 집착하는 내 모습이 다시 튀어나오면 남편은 내게 적당히 살자며 왜 그러지 못하냐고 구박하는 날도 있었다. 본인이 청소하기 싫어서 그런 말한 것을 나는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진짜 적당히 살게 되는 날이 왔다.



 첫째가 두 돌 되었을 무렵 둘째가 태어났고 남편은 부대에서 연중행사를 기획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하루가 멀다고 야근하는 남편은 집안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혼자 두 아이를 보는 날이 많아질수록 때에 맞춰 밥 한 끼 차려 먹는 것조차 내겐 큰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청소를 할 수 있었을까. 청소는커녕 빨래도 당장 입어야 할 옷만 겨우 돌려 입을 정도였으니. 가끔 예전처럼 거실 대청소를 하는 날이 있었는데 그날은 어김없이 첫째가 사고를 친 날이었다. 둘째를 돌보느라 정신이 팔린 사이 첫째는 간혹 마시다 남은 주스를 온 바닥에 흩뿌리고 그 위에 무릎으로 썰매를 탔다. 아이는 까맣게 타들어 가는 내 속도 모른채 마냥 해맑다. 덕분에 그날은 나도 실컷 욕을 하면서 거실 바닥을 청소했다. 손을 들고 벌을 서는데도 즐거워하는 아이를 보니 내가 아이의 행동에 너무 제한을 두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되었다. 그때 박혜란 저자의 ‘집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 살아야겠다’던 결심이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적당히 살아도 되는 이유에 대해 나를 설득시킬 문장을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책에서 또 발견한다. 그것은 ‘집은 깔끔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대한 것이다.     


 박혜란 저자의 집에 후배가 자신의 집에 방문하면서 독일에서 갓 귀국한 친구를 데리고 왔다고 한다. 그 친구는 한사코 저자의 집에 들어오길 거부했는데 그 이유가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와 보니 사람들이 집을 너무 깔끔하게 치워 놓고 살아서 어디를 가도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이었다. 저자의 집 사정을 훤히 알던 후배는 이 집은 기절할 정도로 지저분하니 부담 없이 들어오라고 권했지만 거절하는 통에 저자가 직접 나서서 데리고 들어왔다고 한다. 집을 본 후배의 친구 반응은 정말 좋아하며 자신도 독일에서 이렇게 어질러 놓고 살았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그리고 저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 집 아이들은 아마 굉장히 머리가 좋고 상상력이 풍부할 거라고 말이다.     


 그의 이론은 간단했다. 어머니가 너무 깔끔한 집안의 아이는 상상력이 빈곤하기 때문에 창의적이지 못하고 결국 공부도 잘할 수 없다고. 인간의 상상력은 어질러진 공간에서 마음껏 피어날 수 있다고. 한국에 와서 보니 죄다 아이들 공부 잘하는 게 소원이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아이들의 발전을 봉쇄하고 있어서 아주 답답하던 차였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가 내게 한 말, 그건 내가 꿈속에서나 바라던 것이었다. “당신은 아이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을 줄 아는 어머니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소가 뒷걸음질을 치다가 쥐를 잡는다더니, 나를 두고 한 말이었다.


 나는 그동안 지저분한 것을 보는 것이 힘들다는 이유로 아이의 상상력을 빈곤하게 만들진 않았나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결심했다. 우리 집을 상상력이 빈곤해질 틈이 없는 집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말이다. 조금 더럽더라도 아이들이 행복한 아이들을 위한 집이 되기 위해 항상 ‘적당히’ 청소할 것을 글을 쓰면서 또 한 번 다짐해본다. 덕분에 세상 깨끗하던 나는 매일 조금씩 내려놓고 아이들을 위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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