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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셋맘 May 21. 2022

아들셋 엄마로 산다는건

Part1. 한번도 가지 않은 길을 가다

“아들만 셋이라고? 아이고~ 우짜노”

다들 ‘아들엄마 위로하는 법’을 배우는 학원을 다니시나? 어쩜 그렇게도 만나는 어른들마다 나에게 똑같은 멘트를 날리신다. 내가 아들만 둘이였을 때는 저 멘트 위에 따라 오는 말도 하나같이 같았다.

“딸 하나 낳아야지~ 나이들면 딸은 꼭 있어야 되더라.”

그러는 어르신은 왜 딸이 없으신건지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런 참견은 아들을 셋을 낳자 조금 사그라 지는 듯 했다. 차마 넷째 얘기를 꺼내기는 뭣했겠지. 대신 나를 애워싸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는 분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당신들의 아쉬운 마음을 우리 아이들에게 내비치시곤 한다.

“아이고 니가 딸이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너희들! 엄마 말씀 잘 들어야 돼, 엄마가 너희들 때문에 얼마나 힘들겠어!”

나는 그 말에 혹여나 아이들이 상처를 받을까 조마조마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아니, 내가 괜찮다는데 왜 그렇게 훈수를 두시는지 아주 마음이 불편하다.



 언젠가부터 아들엄마로 살아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되어버렸다. 오죽하면 딸 둘에 아들 하나면 금메달, 딸만 둘이면 은메달, 아들만 둘이면 목메달이라는 말이 있을까. 그렇게 따지고 보 아들만 셋인 나는 목목메달인가? 옛날이었으면 아들만 숨풍숨풍 잘 낳는 동경의 대상이 되었을 수도 있었는데 시대를 잘못 타고난 탓으로 나는 안타까운 시선을 받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막내의 성별을 알았을 때도 주변에서 난리였다. 나도 잠시 딸이길 기대한 것은 맞으나 정말 아들만 셋이라도 괜찮았다. 그런데 주변사람들은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었다. 친정엄마부터도 한숨을 내쉬면서 ‘딸이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운 마음을 보이셨으니 말이다. 남편도 내 추궁에 못내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지만, 하나 더 낳자는 내말에 ‘이제 그만~’을 외치며 애써 아쉬운 마음을 감췄다. 나도 안다. 딸이 엄마에게 어떤 존재인지. 기쁜 일, 슬픈 일, 화나는 일, 억울한 일 등등 일단 일이 생겼다 하면 엄마에게 가장 먼저 연락해 속마음을 털어놓는 나만 봐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엄마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특히 내가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를 더 이해하게 되었고, 우리 사이에는 못 할말이 없을 정도였다. 우린 그냥 편한 친구사이 같았다. 오죽하면 여자가 늙어서 필요한 5가지에 돈을 비롯해 딸이 포함되어 있을까 싶었다.



 나는 가끔 넷째를 가질까 진지하게 고민한다. 친구는 내 말에 ‘니가 아직 덜 힘들구나? 정신을 못 차렸네~ 넷째 임신하면 우린 절교다! 절교!’라며 충격요법으로 나간 내 정신을 제자리에 돌려놓곤 한다. 아들만 셋을 키우면서 내가 얼마나 힘든지 직접 눈으로 확인한 그녀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런데도 가끔 넷째에 대한 고민이 들때면 내가 육아체질인건지 그게 아니라면 고통을 즐기는 사람인건지 나도 그것이 알고싶다.



 남편과 나는 어린시절부터 아이를 무지 좋아해서 동네 애들을 다 봐주던 사람들이다. 미래의 자녀수도 미리 계획해뒀던 것마저도 비슷한 우리는 천생연분이었다.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영화 기생충 명대사처럼 남편과 나는 미리 세워둔 자녀계획대로 세아이를 낳았다. 물론 그 계획에는 아들만 있었던건 아니다. 우리의 사전계획으로 태어난 세 아들은 각각의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는데 딸처럼 예쁜 옷을 입혀주거나 꾸며줄 순 없어도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다.     



 첫째 서진이는 올해 7살이 되었다. 이젠 ‘우리아기’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커버린 아이는 ‘형아’ 혹은 ‘대장’, ‘서디(서진 디제이)’로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 낯가림을 심하게 해서 처음 어린이집을 갔을 때도 두달을 내리 울고가서 내 마음을 찢어지게 만든 아이지만, 지금은 그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사교성이 좋다. 모르는 친구들에게 말을 걸고 몇분도 안 돼서 친해지는 능력이 있는 서진이는 말하는 것도 무척 좋아하고 본디 말도 많은 아이다. 그런 자신의 장점을 살려 차를 타고 이동 할 때마다 디제이를 자청하는데 노래 선곡도 기가 막히게 잘한다. 동생이 좋아하는 ‘헬로카봇’ 주제곡으로 시작해 엄마가 좋아하는 이찬원 가수의 ‘진또배기’로 차 안 흥을 돋는다. 요즘들어 급작스럽게 눈물이 많아진 서진이는 감수성이 풍부하고, 표현력 또한 좋다. 그런 서진이를 보면서 내 성격을 참 많이도 닮았구나 싶고, 한편으론 미래가 기대되기도 한다.


     

 둘째 어진이는 올해 5살이 되었다. 임신 막달까지 뚝심있게 거꾸로 자세를 유지하고 있던 아이로 인해 결국 나는 제왕절개 수술로 어진이를 만나게 되었다. 예정일을 다 채우지 못하고 2.8kg 남짓한 몸무게로 세상에 나와 나는 아이가 또래보다 작게 클까봐 그게 늘 걱정이었다. ‘작게 낳아서 크게 키워라’라는 말처럼 어진이는 다행이도 잘 먹어서 하루가 다르게 포동포동해졌다. 그 때문에 발목이 살에 묻혀 짓물렀고, 진물과 피가 마르지 않아 1년 가까이 발목 치료를 받기도 했다. 지금도 여전히 다부진 몸에 구릿빛 피부를 가지고 있는 천진난만한 어진이는 꼭 시골강아지 같다. 그래서 나는 어진이를 ‘멍구’라고 부른다. 온순한 성격에 누구와도 잘 지내는 모습이 딱 시골에서 키우는 꼬리 잘 흔드는 귀여운 강아지 같기 때문이다. 내가 지은 별명을 듣고 친정엄마와 시어머니는 공감하시며 포복절도 하셨다. 간혹 호기심에 엉뚱한 행동을 하기도 하는데 지난 번에는 코에 비즈구슬을 넣어 응급실에 달려갈 뻔한 적도 있다. 어진이는 근래들어 어눌했던 말이 점점 또렷해지고, 자신의 의사도 곧 잘 표현한다. 여전히 내 눈에는 아기 같은데 동생이 태어나고 점점 형아가 되어가는 것 같아 몹시 아쉽다.



 막내 휘진이는 이제 15개월 됐다. 우리 집에서 유일한 날씬쟁이로 형들과 정반대의 체형을 가지고 있다. 입이 짧은 편이라 몸무게가 잘 늘지 않아 내 걱정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아이지만, 발달과정은 셋 중에 가장 빠르다. 아무래도 위로 형이 둘이나 있으니 보고 배우는 것도 많을거라 생각된다. 11개월이 되었을 때 첫걸음을 떼고 가뿐한 몸 덕분인지 별다른 준비과정없이 바로 걷기 시작했다. 지금은 거의 날아다니다시피 하는 휘진이는 눈치도 엄청 빠르다. 저 구석에서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하고 있다가 중요한 순간에 나타나 먹잇감을 단번에 낚아채는 맹수처럼 우리가 가지고 있던 음식이나 물건을 재빨리 빼앗아 달아난다. 영리한데다 빠르기까지하니 제 아무리 몇 살 더 많은 형이라해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요즘은 나를 흉내내서 펜을 들고 종이에 끼적이는 모습을 자주 보이는데 나는 혹시 이 아이가 천재는 아닌지 합리적 의심을 하곤 한다.



 같은 배에서 나왔지만, 달라도 너무 다른 세아이가 한 집에 살고 있으니 우리 집은 매일이 전쟁터거나 잔칫집 같다. 식사를 차릴 때면 요구사항이 다 달라 나는 조국의 통일에 앞서 아이들의 메뉴통일이 먼저 되길 간절히 랄 때도 있다. 그렇지만, 어떤 음식이든 셋이 모이면 평소보다 더 잘먹기에 메뉴 선정이 번거롭더라도 감내하고 있다. 식사로 한번의 파도가 지나가고 나면 놀이할 때 더 큰 파도가 나를 집어 삼킨다. 이사 할 때 아이들의 에너지를 고려해 1층만 골라봤던 내 선택이 신의 한수라 생각 될 때가 있는데 아이들이 거실을 뛰어다닐 때다. 한명이 소리를 지르며 거실을 뛰어다니면 또 다른 한명이 그 뒤를 잇고, 마지막으로 남은 한명이 그 대열에 합류하면 집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다. 그러다가 누군가 장난감에 관심을 보이면 나머지도 하던 것을 멈추고 일제히 장난감 앞으로 모여든다. 그게 사소한 딱지 한 장이라도 말이다. 그때 나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아이들을 예의주시한다. 서로 장난감을 가지려 뺏고 뺏기는 과정에서 간혹 유혈사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더 큰 싸움으로 번지기 전에 내가 나서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번은 장난감을 뺏긴 둘째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첫째를 물어서 어깨에 피멍이 들게 만든 적이 있었고, 또 한번은 잠자리에 들기 전, 어두운 방에서 장난치며 돌아다니던 셋 중 가장 신난 막내가 벽으로 돌진하는 바람에 콘센트 커버에 이마가 찍혀 찢어진 적도 있다.





 모든 사건은 내가 개입해서 큰소리로 군기를 한번 잡아야 끝이 난다. 특히 장난감 쟁탈전을 치뤘을 때는 뺏긴놈도 뺏은놈도 아무것도 못한놈도 세상 억울하다는 듯이 울기 때문에 뒤처리가 매우 까다롭다. 수습과정에서 나는 극심한 두통을 겪는데 정말 심할 때는 두통약을 먹어도 나아지지가 않는다. 세아이를 키우며 두통을 앓는 횟수가 잦아지자 신경과를 찾은 적도 몇 번이나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건지 모르겠으나, 의사는 항상 내게 아무이상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나는 원인은 있고 결과가 없는 이 상황이 그저 답답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뉴스기사를 읽다가 뜻밖에 내 두통의 원인을 찾게 되었다. 명쾌한 답에 나는 그 동안의 채증이 싹 내려가는 듯 했다.



 <가장 듣기싫은 최악의 소음은 이것>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따르면 제니퍼 랭스턴 뉴욕 주립대 심리학과 연구원은 성인 일부에게 여러 종류의 짜증나는 소리를 들려주며 산수 문제를 풀게 했다. 그 결과 아기의 울음소리와 어른들의 큰 연설소리, 톱으로 강하게 나무를 써는 소리, 아이들의 징징거리는 소리 등이 집중력을 방해하는 짜증나는 소리로 느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중 아이들의 징징거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 실험 참가자들의 점수가 가장 낮았으며, 아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징징대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기에 한가지 더 놀라운 사실은 아이가 있든지 없든지, 남자든지 여자든지 아이의 징징거리는 소리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똑같다는 것이다. 이에 랭스턴 박사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아이의 징징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고통을 호소하는데, 이는 참을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 소리가 짜증을 유발할만한 소리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내 두통의 원인은 다름 아닌 아이들이 징징거리며 우는 소리 때문이었다. 애가 셋이니 오죽했겠는가. 제 아무리 아이를 사랑한다고한들 세아이의 징징거림에 두통을 피할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엄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할머니라고 아무리 아이를 아낀다한들 우리 집에 머무는 그 누구도 두통을 피할 수는 없었다.



 세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내게는 도전적인 일이고, 두통약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그런데도 나는 아이들을 떠올리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육아는 죽을만큼 힘든게 사실이지만, 아이들로 인해 웃을 일이 많다는 것도 사실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아이를 하나만 낳았다면 이런 경험도 하지 못 했을 것이다. 다행이 셋이나 낳았기 때문에. 그것도 아들만 키우고 있기 때문에 경험할 수 있는 일이었다.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게 해준 아이들에게 나는 감사한다.



 물티슈를 개봉 할 때 제거해야 하는 필름 위에 엄마들을 위한 명언이 적혀 있는 제품이 있다. 나는 매번 그 명언에 감동받고, 힘을 얻어서 두고두고 보고싶은 마음에 버리지 않고 물티슈 안 쪽 뚜껑에 붙여 놓는다. 그러면 물티슈를 사용하려고 뚜껑을 열 때마다 명언을 보면서 힘을 얻는다. 명언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이거다. ‘육아에선 당신이 국가대표 입니다.’ 세아이를 키우면서 어느새 나는 육아에 국가대표가 됐다. 그간 내 노력으로 본다면 나는 더 이상 목메달이 아니라 금메달리스트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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