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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셋맘 May 22. 2022

누가 봐도 애 엄마

Part1. 한번도 가지 않은 길을 가다

 아이를 키우면서 변해버린 몸뚱이 말고 내가 잃은 것이 하나 더 있다면, 그것은 패션 감각이라고 말하고 싶다. 딱히 외출할 일이 없었던 아기엄마인 나는 매일 같은 옷을 입고 지낸다. 출산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임부복을 즐겨 입고 그 편안함에 거의 중독된 수준이다. 엄마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늘어진 내 뱃살을 편안하게 감싸주는 것은 임부복뿐이라는 사실을. 외출복을 선택할 때도 별반 다르지가 않다. 편한가 편하지 않은가를 가장 먼저 고려한 후, 색상과 디자인은 그다음 문제다.



 내게는 특별한 능력 하나가 있는데 길에서 마주하는 여성을 보고 단번에 애 엄마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가능한 얘기다. 애 엄마를 구별하는 그 첫 번째 단서는 애 엄마는 편한 옷을 즐겨 입는다. 하루에 수십 번씩 아이를 안았다 내렸다 해야 하는 엄마들은 꽉 끼거나 하의가 짧은 옷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서 첫째도 편한, 둘째도 편한 옷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로는 어두운 계열의 옷을 즐겨 입는다. 출산 후 불어난 몸과 늘어진 뱃살은 엄마들에게 최고의 스트레스다. 그 뱃살을 가리기 위해 엄마들은 일종의 위장술을 쓰는데 최대한 어두운색의 옷을 선택함으로써 눈가림을 하는 것이다. 이때 나는 완벽하게 가려졌다 싶을 때는 어제보다 한결 날씬해 보이는 내 모습에 혼자 으쓱해 하며 감동의 말을 내뱉곤 한다.

"그래, 누가 애 셋 낳은 엄마로 보겠어."

세 번째는 어제 입었던 옷을 오늘도 입었던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다. 이 세 가지를 모두 만족한다면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 사람은 백 퍼센트 애 엄마라고!



 ‘엄마 교복’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는가? 엄마들 사이에서 아이의 등·하원용으로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스타일의 옷을 몇 벌 사서 번갈아 입으면 엄마들은 그것을 ‘엄마 교복’이라 부른다. 엄마 교복에도 몇 가지 기준이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입었을 때 무조건 편해야 하고, 선생님과 반 친구 엄마들을 마주하는 때인 만큼 조금 갖춰 입은 느낌도 들어야 한다. 그래서 엄마들은 대체로 간편하고, 조금은 갖춰 입은 듯한 느낌이 드는 원피스나 패션 트레이닝복을 엄마 교복으로 즐겨 입는다. 이렇게 나만의 교복을 만들어두면 잠깐의 외출에도 옷 걱정이 사라져서 참 좋은데 바쁜 시간에 옷을 고르느라 고민하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것이 엄마 교복의 가장 큰 장점이다. 다만, 가끔 비슷한 옷차림을 한 엄마들을 만나면 조금 머쓱하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일 수도 있겠다. 몇 해 전 여름, 기계 주름이 들어간 원피스가 엄마들 사이에서 대유행했다. 옷도 낙낙하게 나온 데다 신축성마저도 좋았는데 특히 기계 주름이 들어가 몸을 한결 날씬하게 보인다는 게 나는 가장 좋았다. 나 역시 유행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그 원피스를 구매했고, 개시하던 날 등원 길에만 비슷한 옷을 입은 엄마를 몇이나 마주쳤는지 민망한 마음마저 들었다. 가끔 몇 벌의 옷을 일주일 내내 돌려 입는 내게 이런 말을 하는 지인도 있었다.

“혹시 옷이 아니라 문신 아니야?”

엄마 교복을 입으면 민망한 일이 종종 발생하지만, 나는 이것을 감수할 정도로 엄마 교복의 이점이 많다고 생각하므로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내가 잃은 패션 감각에는 헤어스타일도 포함된다. CS강사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쪽 머리와 짧은 단발로 단정함을 유지했다면 지금은 육아에 최적화된 헤어스타일을 고집하고 있다. 단골미용실 김원장님은 그 스타일을 참 잘 살려주시는 분이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우리 동네를 지켜온 원장님은 지금까지도 그 자리에서 미용실을 운영하고 계신다. 미용경력만 무려 30년이 넘고, 실력과 센스도 넘치는 분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초코파이 광고의 노래처럼 내가 말하지 않아도 어떤 스타일을 원하는지 원장님은 잘 알고 계시며 그대로 실현해 주신다. 거기에 합리적인 요금까지 김원장님의 미용실은 안 갈 이유가 전혀 없는 곳이다.





 나는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내 헤어스타일에 몇 가지 원칙을 뒀다. 거창한 것은 아니고, 아이를 보는 데 꼭 필요한 몇 가지다. 우선 아기를 돌보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 머리여야 한다. 아직 어린 막내는 안거나 업어줄 일이 많다. 그렇기에 내 머리는 아주 짧거나 묶기거나 둘 중 하나여야 머리카락이 아이의 눈을 찌르는 것을 방지할 수가 있다. 다음으로 손질이 쉬워야 한다. 일주일 중 머리를 감는 날보다 안 감는 날이 더 많은 나지만, 감았을 때 손질만큼은 쉬워야 한다. 내가 ‘라면 머리’를 즐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감고 나면 따로 손 볼 필요 없이 툭툭 털어 말려주기만 하면 꼬불꼬불 제 모양을 잡는 것이 아주 만사오케이다. 이 스타일의 더 큰 매력은 출산으로 텅 비어 버린 내 정수리에 울창한 숲을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일거양득의 효과를 주는 라면 머리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헤어스타일 중 하나가 되었다. 마지막 원칙은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머리를 지지든 볶든 그 어떤 머리를 하든지 간에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기 전에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김원장님은 이 원칙을 모두 만족시켜주는 훌륭한 미용사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미혼 때라면 전혀 상상하지 못할 ‘누가 봐도 애 엄마’ 스타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조금 세련되지 못하면 어떠한가. 내가 만족하면 그만인 것을. 아이들과 편하게 지낼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다. 나의 현재를 인정하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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