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딱 1년만 혼자 키우겠습니다
초보 강사 시절 피드백 받는 것은 내 일상이었다. 피드백은 두 가지 형태로 이루어졌다. 첫 번째는 선배 강사에게 받는 피드백이다. 초보 강사인 나는 선배 강사가 하는 강의를 보면서 어떻게 하면 청중을 집중시키고, 내용을 조리 있게 전달할 수 있는지 현장에서 열심히 배웠다. 그리고 강의할 기회가 오면 반드시 선배 강사 앞에서 시연하고 피드백을 받았다. 선배 앞에서의 시연을 하는 것은 참으로 부담스러운 일이었는데 그 횟수가 늘어날수록 속으로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나도 잘할 수 있는데 이렇게 매번 시연을 해야 하나?’ 시연하면서 칭찬만 들으면 좋겠지만, 피드백이란 게 그렇지가 않다. 계속해서 고쳐야 할 점을 듣게 될 때면 자신감이 곤두박질치고, 이 일이 내게 맞는 일인가? 의문이 들기도 했다.
두 번째는 피드백은 스스로 하는 셀프 피드백이다. 선배 강사에게 피드백 받은 부분을 참고하여 나는 다시 셀프 피드백을 통해 행동과 내용을 수정했다. 주로 휴대전화를 이용했는데 내 모습을 촬영해서 보고 또 돌려보면서 문제점을 찾아내고, 거울을 보면서 연습했다. 그리고 다시 내 모습을 찍어 보기를 반복하면 조금 더 나은 모습으로 강의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셀프 피드백을 하면서 나는 신기한 경험을 했는데 선배의 지적이 내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알 수 있었고, 말을 할 때 반복되는 내 습관도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말할 때 얼굴이 오른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다거나 웃을 때 한쪽 입꼬리만 올라간다는 점, 웃고 있지 않을 때는 친절 강의를 하러 온 강사라고 하기엔 너무 차가워 보이는 것까지 나도 몰랐던 내 표정과 습관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민망함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웃상(웃는 얼굴상)을 가졌다고 자부하면서 살았던 사람이다. 하지만 영상으로 찍힌 내 모습을 보고 처음으로 내 표정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선배에게 받은 피드백과 셀프 피드백 모두 내게 긍정적인 결과를 주었고, 강의할 때 현장 반응도 훨씬 좋아졌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 내게서는 그 친절한 강사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기분 좋게 아이들과 잠자리에 들기 위해 침실로 향하던 평범한 날이었다. 온종일 아이들과 씨름을 하느라 피곤했던 나는 머리가 베개에 닿자마자 잠이 들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떴을 땐 이미 1시간이 흐른 뒤였는데 그때까지도 아이들은 잠이 들지 않고 장난을 치느라 침대 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애써 흥분하지 않으려 크게 한번 심호흡을 한번 하고 목구멍으로 차오르는 화를 삼켰다. 그리고 육아의 신 오은영 박사님으로 빙의해 최대한 친절하게 1차 경고를 날렸다.
“애들아~ 늦었으니까 그만 자자~”
다시 눈을 붙이려는데 이번에는 아이들이 누워서 수다 삼매경이다. 분명 아침 일찍 일어나 유치원, 그리고 놀이터까지 다녀온 아이들이다. 그런데도 이 늦은 시간까지 쌩쌩하다는 것은 아이들 몸속 어딘가에 완충된 건전기가 있다는 설이 사실임에 무게를 두게 했고, 그 건전지를 찾는다면 확 빼버리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나는 다시 차분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2차 경고에 들어갔다.
“지금부터 안 자는 사람은 거실로 나가라고 할 거야. 분명히 말했어!”
잠시 주춤하더니 다시금 수다를 이어가는 아이들을 보고 나는 결국 폭발했고, 끓어오르는 분노에 나는 한 마리의 성난 황소가 되었다.
“당장 침대 밑으로 내려가!!”
엄마의 불호령에 아이들은 주섬주섬 이불을 챙겨 침대 밑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세상을 다 잃은 눈빛을 하고는 침대 위로 올라오라는 엄마의 지시가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내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불안한지 첫째가 물었다.
“엄마~ 우리 언제 침대 위로 올라가?”
여러 번 반복되는 경고에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니 나는 단호하고 안 된다고 말했다. 내 말이 서러웠는지 첫째는 울먹이면서 말했다.
“엄마는 왜 나를 화내면서 키워?”
갑작스러운 아이의 말에 순간 당황해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당황스러운 것도 잠시 이내 괘씸한 마음이 들었다. 감히 나에게 반항을 하다니! 나는 더 크게 소리쳤다.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아직도 안 자고 있는 거야? 엄마가 자라고 몇 번을 말했어? 어!”
이쯤 되면 나는 아이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침대 위로 올라와 잠자리에 드는 그런 깔끔한 마무리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첫째는 작정이라도 했는지 내 말에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어른이 되면 아이들한테 착하게 할 거야!”
아이의 더 큰 한 방의 말에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아이의 말을 굳이 해석하자면 나는 착하지 않은 엄마라는 생각에 충격을 받았고, 그 말은 계속해서 귓전에 맴돌았다. 그리고 이렇게 들리는 듯했다.
‘너는 나쁜 엄마야. 아이에게 친절하지 않은 엄마!’
내가 아이에게 나쁜 엄마라니. 그냥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 흥분이 조금 가라앉은 뒤, 나는 아이가 한 말의 뜻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간 내가 아이들에게 한 행동과 말이 떠올랐다. 아차 싶었다. 그제야 아이의 외침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엄마, 나 좀 사랑해줘!’
눈물이 사정없이 흘렀다.
남편의 부재로 그동안 단독육아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화내는 일이 많아졌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뛰지 마라! 땀나면 또 씻어야 하잖아!”
“아기 자니까 조용히 좀 해!”
“밥 빨리 먹어라~ 얼른 양치하고 자야지!”
일상이 명령으로 시작해서 명령으로 끝났다. 내 지시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날이면 나는 불같이 화를 내는 건 당연했고, 때론 매를 들기도 했다. 어느새 나는 10년 차 친절한 강사의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냥 불친절한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들의 “나는 어른이 되면 아이들한테 착하게 할 거야!”라는 외침을 듣지 않았다면 여전히 내 틀에 맞춰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을 것이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한 사이 아이들은 내가 쏟아내는 화를 그대로 받아내고 있었다. 엄마라는 역할을 하고 있는 내게 피드백이 절실해 보였다.
7살 첫째는 자신의 의견을 곧잘 표현하는 멋진 아이다. 그날 밤 사건을 계기로 처음으로 아이에게 내가 어떤 엄마인지 물었다. 아들은 사뭇 진지한 내 태도에 하라는 대답은 하지 않고 자꾸만 눈치를 살피며 ‘엄마, 좋아!’라는 말만 반복했다. 이런 형식적인 대답을 들으려고 시작한 질문이 아니었다. 조금 더 구체적인 대답이 필요했다. 나는 질문을 달리했다.
“서진아~ 엄마는 언제 제일 무서워?”
아들은 예상 밖에 대답을 내놓았다.
“지난번에 엄마가 어진이한테 화냈을 때. 그때 나, 방으로 들어갔잖아. 너무 무서워서 도망간 거야.”
5살이 된 둘째를 요즘 들어 내 말을 은근히 안 듣는다. 최근에 그런 둘째를 크게 혼낸 적이 있었는데 첫째는 그날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이 대답을 시작으로 속에 있던 말을 줄줄 뱉어내는 첫째 옆에서 똑 부러지는 둘째도 질 수 없다는 듯이 말을 쏟아냈다.
“엄마 화내면 나 무서워~ 화내지 마.”
둘은 누가 엄마의 민낯을 훤히 밝힐 것인가를 두고 배틀이라도 붙은 것 같았다. 그러면서 뭐가 그리 신이 났는지 연신 싱글벙글하였다. 밝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 한편이 시려왔다. 한참 엄마 아빠의 사랑을 받아야 할 이때 우리의 부족함으로 그러질 못하는 것은 아닌지. 미안한 마음에 자꾸만 눈물이 났다. 나는 두 아들의 엄마 디스 배틀열전이 끝남과 동시에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서진아 어진아~ 엄마가 미안해. 엄마 몸은 하나인데 혼자서 밥이랑 빨래, 청소, 그리고 아기 돌보는 것까지 다 하려니까 너무 힘들어서 화가 났나 봐. 그래도 화내면 안 되는 거였는데 진짜 진짜 미안해.”
내 말을 다 들은 첫째가 말했다.
“괜찮아 엄마. 내가 더 많이 도와줄게”
아이의 말에 감동이 밀려왔다. 첫째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성장했구나 싶은 한편 너무 일찍 아이에게 어른스러움을 강요한 건 아니었는지 미안해지기도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사과하면서 당부의 말도 덧붙였다. 이것은 아이들에게 매번 피드백을 받고 싶어서 한 말이기도 했다.
“또 엄마가 무섭게 변하면 꼭 무섭다고 말해줘~”
그 후로 내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높아질라치면 “엄마~ 무서워요. 하지 마세요!”를 남발하는 부작용이 생겼지만, 아이들을 대할 때 내 기분대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데에 큰 효과가 있었다.
육아 코칭 프로그램인 <금쪽같은 내 새끼>의 하이라이트는 주인공인 금쪽이의 속마음을 듣는 시간이다. 이때 부모들은 처음 듣는 아이의 말에 울음을 터트리고 마는데 그 눈물은 부모 자신들의 잘못된 양육방식을 인식하지 못한 채 아이의 문제행동만 탓한 것이 미안해서 뒤늦게 흘리는 회한의 눈물이었다. 이들은 금쪽이와 오은영 박사의 피드백을 통해 마침내 아이와의 눈높이를 같이 할 수 있는 부모로 거듭난다. 만약 금쪽이, 즉 자녀의 속마음을 듣지 못했다면 부모들이 변화할 수 있었을까?
‘지금 내가 잘 하고 있는 걸까?’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런 생각을 한다. 자신이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 의심이 든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이에게 피드백을 받아보세요.’ 그리고 ‘아이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어 보세요.’ 아이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진실하고, 투명하게 엄마에 대해 말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