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고 가뭄에 콩이 나듯 생기는 공식적인 행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어른 사람과 대화다운 대화를 나눌 기회이기도 하고, 사람다운 모습으로 집 밖을 나올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첫째를 출산하고, 처음으로 초대받은 공식적인 행사는 사촌 동생의 결혼식이었다. 오랜만의 외출에 신이 난 나는 옷을 고르기 위해 옷장 앞을 한참이나 서 있었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된 옷 고르기는 대충 맞는 옷을 꺼내 입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화장의 힘을 빌리면 더 멀끔한 상태로 집을 나설 수 있을 거란 희망에 나는 급기야 화장품을 찾아 나섰다. 보물찾기라도 하듯 한참을 찾아 헤맨 뒤에야 물건을 보관하는 팬트리에서 화장품 가방을 발견하고는 마치 산삼을 캔 심마니처럼 나는 기쁨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심 봤다!”
마지막으로 화장한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랜만에 열어본 화장품 가방에는 죄다 유통기한을 넘긴 화장품으로 가득했다.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을 훌쩍 넘긴 것은 기본이고, 마스카라는 뚜껑이 한 번에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내용물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화장품을 다시 사려 했지만, 언제 또 화장할 일이 생길지 기약이 없었으므로 나는 유통기한을 넘긴 화장품을 얼굴에 얹기로 했다. 오랜만에 하는 화장이었지만, 손의 감각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는 듯이 붓을 들자 손에 날개라도 달린 듯 얼굴에 한 겹 한 겹 색을 입혀갔다. 그러자 육아에 지쳐 핏기가 하나도 없던 내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고, 출산 후 잃어버린 자신감도 되살아나는 듯했다.
나는 첫째를 임신하고 무려 23킬로그램이나 늘었다. 직장 상사는 단기간에 너무 부어버린 내 모습을 보고 임신성 당뇨가 온 것은 아닌지 걱정했지만, 나는 모유 수유를 하면 쪘던 살도 다 빠진다는 주변 어른들의 말만 믿고 걱정 대신 마음 놓고 살을 찌웠다. 그로 인해 내 생애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몸무게를 출산 후에도 계속해서 갱신해 나갔음에도 나는 그저 덤덤했다. 모든 것에도 예외가 있다는 것을 그게 바로 내가 될 것을 알았더라면 그들의 말을 끝까지 믿진 않았을 것이고, 자신감도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모든 게 핑계인 줄 알지만, 화장을 하자 자신감이 샘솟는 마법에 걸린 듯했다.
결혼식장에 도착하니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다. 예식이 끝나고 식당에 모인 친척들은 본격적으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그간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몇몇 어르신들이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자꾸만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는 모습이 포착됐다. 그리고는 내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혹시… 둘째 가졌어?”
첫째가 갓 돌을 넘긴 시점에서 둘째 임신은 그들에게도 시기상조라 생각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 몸을 보니 묻지 않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어르신들의 질문에 나는 멋쩍게 웃으며 ‘아니오’라는 답을 해놓고도 속상한 마음에 식사하는 내내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느낄 수가 없었다. 하필 출산 후, 처음으로 정성 들여 예쁘게 꾸미고 나간 날 그런 얘길 듣다니 나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결혼식을 다녀온 후, 한동안 우울한 마음이 나를 지배했다. 나 자신이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꾸만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게 되었다. 심지어 가장 가까운 남편 앞에 설 때도 움츠러들곤 했다. 헤어스타일을 바꿔보면 나아질까 싶었지만, 좀처럼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새 옷을 사 입으면 지금보다 괜찮은 사람으로 보일까 싶었지만, 큰맘 먹고 들른 옷가게에서 점원으로부터 평생 잊을 수 없는 말을 듣게 되면서 내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지다 못해 지하를 뚫고 내려갔다.
“저희 매장에는 손님한테 맞는 옷이 없는데요.”
내 몸이 더는 프리사이즈로부터 프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그 날 나는 다시 한번 큰 충격을 받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내 몸은 소중하지 않던.. 때
앞서 한 경험 때문인지 아니면 육아가 힘들어서였는지 내 몸은 둘째에 이어 셋째를 임신했을 때에는 체중이 10킬로그램 내외로 많이 증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출산을 하고 나면 이상하리만큼 첫째를 낳고 임산부로 오해받았던 때의 몸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불어난 체중으로 무릎과 허리 통증이 끊이질 않았고 나는 이 문제로 한의원과 정형외과를 여러 번 찾았지만, 의사로부터 항상 똑같은 답을 들어야만 했다.
“엑스레이상으로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체중을 감량해보세요.”
애써 외면했던 말을 들을수록 체중 감량을 위한 노력이 절실했지만, 단독육아하는 날이 많아질수록 운동은커녕 하루에 제대로 된 한 끼 식사조차 챙겨 먹기 힘든 게 현실이었다. 어느덧 몸 구석구석에 자리한 살들이 원래 내 몸에 붙어있던 것처럼 친근하게 느껴졌고, 살을 빼고자 하는 의지도 더는 다지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체중 감량에 의지를 불태우게 되는 최후의 통첩과도 같은 사건이 발생했으니 때는 남편이 해외파병을 떠나고 혼자 세 아이를 육아할 때였다.
남편 없이 홀로 고생하는 며느리를 돕기 위해 멀리서 시어머님이 오신 날이었다. 덕분에 다른 날보다 여유롭게 저녁준비를 하고 있던 나는 거실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웃음소리로 덩달아 기분이 들떠 있었다. 한참 시끄럽던 거실이 조용해지고,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와 시선을 돌리니 어머님이 아이들과 함께 손뼉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계셨다.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고 계신 어머님의 모습에 자연스레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곰 세 마리가 한집에 있어~”
아이라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이 익숙한 가사의 노래는 동요 ‘곰 세 마리’였다.
“아빠 곰은 날씬해~ 엄마 곰은 뚱뚱해~ 아기곰은 너무 귀여워~”
익숙한 멜로디와 달리 뭔가 어색하게 들리던 노래는 도돌이표가 되어 어머님 입에서 다시 재생되었을 때 가사가 이상하다는 것을 나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빠 곰은 날씬해~ 엄마 곰은 뚱뚱해….”
“아빠 곰은 날씬해~ 엄마 곰은 뚱뚱해….”
“아빠 곰은 날씬해~ 엄마 곰은 뚱뚱해….”
출처 pixabay
사실적이어도 너무 사실적으로 개사 된 어머님 표 ‘곰 세 마리’ 동요는 순식간에 내 가슴을 강타했다. 솔직히 자존심이 상했다. 뚱뚱한 엄마 곰은 그렇다 쳐도 아빠 곰까지 날씬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나 싶었다. 몇 차례 반복되는 노래를 듣고 있자니 차라리 내게 직접적으로 체중 감량을 언급하시는 게 더 낫겠다 싶은 마음도 들었다. 순간 마음속에 갈등이 일었다. 어머님께 내가 다 듣고 있었노라 사실을 알리고, 노래를 중단시켜야 할지 아니면 계속해서 모른 척을 해야 할지 말이다. 하지만 남편도 없는 상황에서 내 말 한마디에 괜히 분위기가 흐려질까 나는 속상한 마음을 삼키기로 했다. 그리고 덧붙이고 싶던 말까지도 마음속에 함께 봉인해버렸다.
어머님이 가시고 한동안 내 귓가에는 어머님이 부르신 ‘곰 세 마리’ 동요가 한 곡 반복해서 듣기처럼 끊임없이 재생됐다. 남편에게 이런 속상한 마음을 털어놨지만, 크게 웃기만 할 뿐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하긴 모태 날씬이가 임신 후 급격하게 벌크업이 된 나를 이해할 리 만무했다. 그렇지만,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이후 엄마 곰이 뚱뚱해진 ‘곰 세 마리’ 동요는 친정아버지 입에서 다시 불리면서 나는 텔레비전이나 오디오를 통해 나오는 ‘곰 세 마리’ 동요라면 모두 개사 된 채로 들리는 신기한 경험까지 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매번 결심으로만 끝내던 다이어트를 실행으로 옮겼고, 나는 석 달 만에 10킬로그램 감량이라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그 결과 변비로 여러 차례 변기 테러를 했던 내가 시원하게 변을 보기 시작했고, 프리사이즈라 하기엔 너무 들러붙던 옷에도 점점 공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더 기뻐할 일은 무릎과 허리 통증이 줄어들었다는 것이었다. 몸이 가벼워지자 체력이 좋아졌고, 정신도 맑아져 아이들과 놀아줄 때 짜증이 줄었다. 좋은 변화였다.
나의 체중 감량은 비록 어머님 표 ‘곰 세 마리’ 동요로 시작했지만, 체력과 ‘건강한 체력에서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교훈까지 얻게 되었으니 늦게나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 곰은 여전히 날씬해지려면 멀었지만 아니 그때로 못 돌아갈 확률이 더 높지만, 엄마 곰을 뚱뚱하게 만드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마음속에 봉인해둔 이 말은 꼭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