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딱 1년만 혼자 키우겠습니다
남편은 지방 한 도시의 군부대에서 10년을 넘게 근무했다. 그곳은 남편이 병사시절을 보낸 곳이며 간부로 임관해 일하게 된 첫 근무지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곳에서 결혼했고, 첫째를 낳아 키웠다. 그리고 둘째가 15개월이 될 무렵까지 살다가 남편의 인사발령으로 근무지가 바뀌면서 경기도로 이사하게 됐다. 애초부터 셋째 임신계획이 있었던 우리는 좁고 낡은 관사에 들어가는 대신 아이를 키우기에 좋은 생활권을 찾아 군부대와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기로 했다. 그렇게 군인관사가 아닌 민간아파트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민간아파트는 전에 살았던 군인관사와 비교될 만큼 뚜렷한 장단점이 있었는데 넓은 평수와 쾌적한 환경, 아이들을 키우기 좋은 생활여건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반면 군부대 바로 옆에 위치한 군인관사와 달리 조금 떨어져 있는 민간아파트는 남편의 퇴근길을 늦추게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단점은 인간관계였다. 군인관사에서는 남편의 지인들로 인해 자동으로 생성된 인맥이 있었다면 민간아파트에서는 그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서 아이를 키우느라 단절된 내 인간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내게 큰 외로움을 안겼다. 외로움이 피부로 와닿은 순간부터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더 열심히 놀이터로 나갔는데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에게는 자유를, 나에게는 말벗이라도 할 수 있는 친구를 찾기 위함이었다.
놀이터에 뻔질나게 드나들던 어느 날, 나는 운명과도 같은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나를 향해 해맑은 미소로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넨 그녀는 둘째 아이가 다니고 있던 어린이집의 같은 반 친구 엄마였다. 그녀의 첫째 역시 우리 첫째 아이와 같은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다. 모든 것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그녀에게서 첫 만남부터 운명과도 같은 느낌을 받았고, 외로운 내게 하늘에서 보내준 천사라고 생각되었다. 살가운 그녀는 외로웠던 내 마음을 따뜻한 온기로 채워주었고, 그런 그녀와 나는 진심으로 친해지고 싶었다. 내 마음이 그녀에게 닿았는지 첫 만남에 내 번호를 물어간 그녀는 며칠 후 자신의 집으로 나를 초대했다. 조그마한 선물을 준비해서 그녀의 집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몹시 경쾌했다.
직접 구운 빵과 커피를 내온 그녀는 집에서 쿠킹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일까지 하는 부지런한 그녀가 나는 왠지 멋있어 보여 더 끌렸다. 차 한 잔으로 더 돈독해진 우리는 등. 하원길에 마주치면 전보다 더 반갑게 인사했고, 놀이터에서도 편한 친구처럼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또 한번 그녀의 집으로 나를 초대한 날, 나는 전보다 더 들뜬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그날 그녀의 집에 가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관계는 지속될 수 있었을까?
들떠있는 내 기분에 찬물을 끼얹은 건 그녀가 꺼내온 종이 한 장과 볼펜 한 자루로부터 시작됐다. 다과를 꺼내온 뒤 내 맞은편에 앉은 그녀는 종이 위에 알 수 없는 숫자를 써 내려갔다. 그리고 계산을 해나갔는데 하나의 식이 끝날 때마다 숫자는 점점 커졌고, 커지는 숫자만큼이나 내 불안도 점점 쌓여갔다. 계산이 끝났는지 볼펜을 내려놓은 그녀가 입을 뗐다.
“너 일하고 싶다고 했지? 내가 애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녀가 내게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수익구조였다. 물건을 파는 만큼 내게 떨어지는 돈이 얼마인지 계산해 보인 것이었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다단계라는 것이구나.’라는 것을 그때야 눈치채게 되었다. 실망감에 씁쓸한 미소를 짓던 내게 그녀는 당장 일하는 것이 부담스러우면 회원가입 먼저하고 물건부터 써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다. 권유가 강요로 바뀌는 순간, 그녀에 대한 내 애정과 믿음도 실망과 분노로 바뀌어갔다.
“언니~ 남편한테 물어보고 해야 될 거 같아요.”
더는 그녀의 얘기를 듣고 싶지 않아 나는 남편 핑계를 대며 서둘러 그 집을 빠져나왔다.
이후 그녀와 내 관계는 종료되었다. 아니, 내가 종료시켰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내게 접근해 친절을 베푼 그녀에게 진심으로 배신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은 나를 비롯해 그녀의 집에 초대받은 엄마들이 꽤 있다는 것과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원장님을 비롯해 선생님들에게도 물건을 판매하고 있다는 얘기는 실로 충격적이었다. 마음에 상처 입은 나는 한동안 우울함에서 헤어나질 못했고, 이후 급격하게 친해지려 호의를 베푸는 이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경계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나는 다른 엄마들과도 친해지게 되었지만, 인간관계에 한 번 상처를 받았던 터라 그들과 깊은 속마음까지 나누진 못 했다. 어둠이 내려앉으면 육아로 인해 힘들고 외로운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갑작스럽게 정해진 남편의 해외파병은 허전한 내 마음에 더 큰 구멍을 만들었고, 우울한 마음이 지속될수록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도 커졌다. 그러던 중 옛 지인으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게 되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로 시작된 문자는 ‘저를 기억하실려나? 잘 지내고 계시죠?’로 끝이나 있었다. 몇 년 만인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오랜만에 소식을 전한 그녀는 내가 서비스아카데미에서 강의하던 시절 수업을 받았던 교육 중 한 명이었다. 그녀의 안부 문자는 외로움에 발버둥 치던 내게 눈물 나게 반가운 일이었지만, 나는 마음 놓고 반가워할 수가 없었다. 다 그녀 때문이었다. 나를 희생양으로 삼았던 다단계 그녀.
불안한 마음에 살펴본 교육생의 모바일 메신저에는 그녀의 아이사진으로 가득했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돌은 훌쩍 지난 듯 보였다. 결혼 소식도 아이의 돌잔치도 아니라면 왜 뜬금없이 내게 연락을 했을까? 불순한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나는 끊임없이 그녀를 의심했다. 친구들의 경우도 그렇지 않던가. 오랜만에 연락을 해오면 대게 결혼 소식을 전하거나 아이 돌잔치 그것도 아니라면 한 건의 실적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 그녀는 불순한 의도로 연락을 해오기엔 너무 순수하고, 해맑은 사람이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자신이 어디에 살고 있고, 애는 몇이고 남편은 무슨 일을 하는지 정말 순수하게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리고 문득 내가 생각나서 연락했다고 말했다. 끝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으려 했으나 그녀의 마지막 말은 철벽같던 내 마음도 허물었다.
이틀 뒤, 그녀에게서 다시 문자가 왔다. 두 번째 만남에 까만 속내를 드러낸 다단계 그녀처럼 같은 일이 반복되진 않을까 문자를 열어보기 전 ‘설마?’라는 반신반의한 마음에 긴장감마저 들었다. 더는 사람에게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실망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문자에는 온통 내 안부를 묻는 말뿐이었다. 내 걱정과 달리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후로도 그녀는 내게 몇 번의 연락을 더 했지만, 늘 처음처럼 열심히 안부만 물었다. ‘선생님~ 추운데 어떻게 지내시나요? 다둥이 케어하느라 힘드실 텐데 맛있는 거 많이 드세요.’ 따뜻한 그녀의 마음에 눈물이 났다. 누군가가 나를 기억해주고, 내 안부를 물어준다는 것이 이렇게 감사한 일인지 처음 알게 되었다. 그제야 순수한 그녀의 마음을 의심한 내가 속물같이 느껴졌고,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진심은 의심을 녹였다. 아이를 키우는 사이 내 인간관계는 상당히 좁고, 얕아졌다. 그래서 가끔은 깊은 위로를 받고 싶을 때 함께 마음을 나눴던 이들이 보고 싶다. 하지만 선뜻 연락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 아이를 키우느라 연락하지 않고 지낸 세월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 먼저 연락을 준 교육생의 문자 한 통은 안부 연락 그 이상의 가치로 다가왔다. 문자를 보내기까지 수차례 고민했을지도 모를 그녀의 모습이 떠오르는 듯 해서 뭉클했다. 용기 내서 먼저 연락해준 그녀 덕분에 나는 가장 힘들 때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뒤늦게 든 생각이지만, 어쩌면 그녀도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해서 내게 연락한 것은 아닐까 싶었다.
육아에 지친 엄마들에게는 따뜻한 말 한마디, 한 번의 포옹도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나는 얼마 전 중년여성이 아기엄마에게 보낸 위로를 보면서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고열로 아픈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다 접촉사고를 낸 아기엄마는 차에서 내려 떨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상대 차주인 중년여성은 아기엄마를 꼭 끌어 안고 다독이며 위로했는데 당시 상황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과 사연이 공개되면서 많은 이들이 ‘감동이다’, ‘눈물 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나는 상대 차주인 여성이 한 라디오에서 했던 인터뷰에 더 큰 감동을 받았는데 여성은 사고 직후 차에서 내리는 아기엄마를 보자 자신의 딸이 생각나 너무 마음이 아팠고, 자신도 모르게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자신의 이익보다 상대의 안위를 먼저 물을 수 있는 그녀가 나는 진심으로 멋진 어른 같아 보였다. 그리고 힘든 상황 속에서 건넨 그녀의 위로가 아기엄마에게 얼마나 크게 다가왔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렇게 불쑥 찾아온 안부와 위로는 어떤 이들에게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내가 그랬듯, 아기엄마가 그랬듯이. 그 위로 덕분에 누군가는 또 하루를 열심히 살아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