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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셋맘 May 18. 2022

순수함을 잃어간다는 건

Part3. 무늬만 엄마에서 진짜 엄마가 되다

 옷이 점점 두꺼워지는 것을 보니 연말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육아 전쟁터에서 날짜를 잊은 지 오래다. 그저 두꺼운 옷을 꺼내입으면 겨울이 왔나 싶고, 얇은 옷을 입을 때면 봄이 오는구나 싶다. 오후가 돼서 하원 하는 아이들을 데리러 나가기 위해 두꺼운 패딩점퍼 꺼내 입었다. 바깥 날씨는 제법 차갑고 흐렸다. 꼭 눈이 올 것 같은 날씨였다. 하지만 기대는 하지 않는다. 우리가 있는 곳은 눈이 잘 오지 않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날씨가 춥더라도 눈이 오면 아이들은 눈싸움 놀이를 하며 즐거워할 것이다. 아쉽지만 올해는 대구로 이사 온 이상 눈 구경은 어려울 듯하다.



 하원 버스가 서는 곳으로 가기 위해 나는 서둘러 통로를 지나고 있었다. 저 멀리 한 무리의 아파트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직원 한 명은 사다리 위로 올라가 나뭇가지에 무언가를 열심히 달았고, 나머지 직원들은 길가에 있는 낮은 조경수에 흰색 줄로 보이는 것을 두르고 있었다. 잠시 걸음을 늦추고 가까이 다가갔다. 바닥에 놓인 크고 작은 조형물이 눈에 들어왔는데 조형물은 투명에 가까운 하얀색을 띠고 있는 별과 눈꽃 모양 조명이었다. 그리고 낮은 조경수에 감겨있는 것은 다름 아닌 흰 줄에 달린 수천 개의 작은 전구였다. 저 작은 전구에 불이 들어오면 어떤 색의 빛으로 반짝일까? 마음이 설렜다. 깜깜해지면 아이들을 데리고 꼭 구경 나오리라 마음먹은 나는 직원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오늘 저녁에 불빛 볼 수 있는 거예요?”


직원이 웃으며 답한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켜질 거에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급하게 날짜를 세어봤더니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두고 있었다. 아차! 아무리 육아로 바쁘더라도 그날을 잊고 지나갈 순 없다. 아이들이 일 년을 꼬박 기다려 상상 속에 있는 산타할아버지가 두고 가는 선물을 받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남편 없이 혼자 준비해야 하므로 나는 더 서둘러 준비하기로 했다. 그날부터 크리스마스 준비 대작전이 시작되었고, 가장 먼저 평소 아이들이 갖고 싶어 하던 장난감을 떠올렸다. 나는 마치 수사반장이라도 된 듯 추리를 이어가다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가격의 장난감으로 주문했다. 다행히 크리스마스 배송 대란 전 장난감을 받을 수 있었다. 아이들 눈에 띄지 않도록 모두가 잠든 밤에 선물을 예쁘게 포장했고, 아이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잘 숨겨뒀다. 트리는 아이들과 함께 만들었다. 올해까지 우리 집 거실을 지키다 설날이 훌쩍 지나 상자로 들어간 트리를 다시 꺼냈다. 매년 반복되는 일에 새삼스럽지도 않다. 트리와 장식품을 꺼내자 첫째와 둘째는 야무지게 장식물을 트리에 걸고 또 걸었다. 작은 손으로 얼마나 야무지게 장식물을 트리에 거는지 아이들이 제법 큰 것이 눈에 보여 마음이 이상했다. 예쁘게 꾸며진 트리에 전구를 두르고 불을 켜자 알알이 반짝반짝 빛을 뿜어내는 전구가 마치 보석 같았다. 형들이 환호하자 자박자박 걷는 막내까지 손뼉을 치며 엉덩이를 흔들흔들한다. 크리스마스트리 하나에 모두가 들뜨자 나는 육아로 지친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연말을 분위기를 만끽했다.



 대망의 크리스마스 이브날, 아이들과 잠들기 전에 돌아가면서 각자 산타할아버지에게 받고 싶은 선물을 말해보기로 했다. 첫째는 요즘 한참 빠져있는 캐릭터의 카드가 갖고 싶다고 했다. 알면서도 다른 선물을 준비한 나는 뜨끔해 속으로 첫째에게 사죄했다.


‘미안하다. 아들아~ 엄마는 큰돈 주고 그 비싼 종이 딱지 몇 장을 사줄 수가 없구나.’


두고두고 동생까지 물려줄 수 있는 현실적인 선물을 한 엄마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랄 뿐이었다. 둘째는 역시나 자동차 시리즈를 줄줄이 말했다.


“어진이는 소방차, 경찰차, 덤프트럭 좋아해.”


집에 없는 레미콘을 준비한 나는 센스있는 엄마였다. 레미콘을 보고 뛸 듯이 기뻐할 둘째를 상상하니 뿌듯한 마음이 밀려왔다. 나는 마지막으로 막내에게 너는 무엇이 갖고 싶으냐 물었다.


“음마. 음~마.”


그래, 그럴 줄 알고 막내의 선물은 준비하지 않았다. 이럴 때면 형의 것을 물려받고 써야 하는 동생들이 가끔 안쓰럽다. 조금 더 크면 갖고 싶은 선물을 해주리라 혼자 약속하면서 크리스마스날 내 사랑을 듬뿍 주기로 했다.



 훈훈하게 마무리하고 자려던 찰나, 첫째가 내게 뜻밖에 질문을 한다.


“엄마, 그런데 산타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어떻게 선물 놔두고 가?”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조금 당혹스러웠다.


“아~ 우리가 자고 있을 때 집에 살짝 두고 가신대.”

어쨌거나 두고 간다고 했으니 더는 묻지 않겠지 확신하고 한 대답이다.


“산타할아버지가 우리 집 비밀번호를 알아?”

뭔가 이상하다는 듯 다시 첫째가 물었다.


“모르실걸? 그럼 집 앞에 놓고 가시겠네”


첫째는 원하는 대답이라도 있는 것 마냥 다시 말했다.


“아니지. 산타할아버지는 집 안에 선물 두고 가잖아. 문 앞에 놔두면 누가 가져가면 어떡해? 맞다, 산타할아버지는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어서 우리 집 비밀번호 알고 있을 거야!”


아이는 산타할아버지가 하늘에서 썰매를 타고 친구들에게 선물을 주러 다니는 그림책을 본 적이 있다. 이런 순수한 아이의 말에 나는 동심을 지켜주고 싶었다. 하지만 일면식도 없는 산타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들어온다고 생각하니 나는 괜히 께름칙해졌다. 그 생각은 말이 되어 순식간에 입 밖으로 튀어 나와버렸다.


“서진아, 모르는 사람이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면 주거침입죄로….”


아이가 주거침입죄가 무엇이냐 묻는다. 나는 아이에게 별소리를 다 한다는 생각에 말을 멈추고야 말았다. 그리고 다시 아이가 원하는 방향으로 답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산타할아버지가 창문으로 들어오실 수도 있겠다. 트리 앞에 선물 두고 가실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자.”


나는 정말이지 창문으로 산타할아버지가 들어오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마저도 주거침입죄 같은 소리를 해대면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것만 같아 꾹 참도 또 참았다. 아이의 동심을 강제로 파괴하는 엄마가 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날 아침 아이들은 눈을 뜨자마자 거실로 나가 선물을 확인했다. 그리고 딱 내가 상상한 모습의 표정을 지었다. 첫째는 원하는 선물이 없다며 산타할아버지에게 다시 연락하라고 했다. 나는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참느라 혼났다. 산타할아버지를 원망하는 이 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나는 문득 몇 살까지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믿고 열렬히 환호했는지 떠올려봤다. 어렴풋이 기억난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다. 내가 잠이 들었다 확신한 부모님은 트리 옆에 커다란 선물을 가져다 놓다가 화장실을 가기 위해 거실로 나온 내게 발각되었다. 그때 다급하게 들어가서 자라고 하셨던 부모님의 부산한 모습이 기억난다. 그 후로 나는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믿는 듯 행동은 했었다. 그래야 원하는 선물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마저도 순수했던 것 같다. 마치 하얀도화지처럼 내 마음은 깨끗했다. 반면에 주거침입죄를 논하는 지금의 나는 순수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 되었다. 새하얗던 도화지 같던 내 마음은 여러 색의 물감 겹겹이 칠해진 짙은 색의 도화지로 변색되었다고 해야 할까.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동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순수한 마음을 잃어버린 내가 가끔은 때가 탄 사람 같아 기분이 이상해진다. 경향신문에 연재된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 가까이에서 읽은 글이 있다. 나는 이 글을 보고 위안을 받았다.



‘동심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동심을 간직했기에 어른이 된다.’
말장난 같지만, 마음이 자란다는 것은 전 단계의 마음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동심원을 그리는 것이다. 어린이의 마음을 가장 안쪽에 두고, 차차 큰 원을 그려가는 것. 정확히 말하면 원은 아닐 수도 있다. 나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면 어느 부분은 푹 꺼지고, 어느 부분은 부풀어올라 모양이 좀 이상한 도형이 되어 있다. 어린 시절 중에는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깊은 골짜기들도 있다. 어느 부분은 제대로 자라지 못했지만 나중에 열심히 메워서 꽤 괜찮은 모양으로 만들기도 했다. 어쨌거나 나라는 사람의 안쪽으로 걸어들어가면 어린이의 마음이 있다. 내내 그 마음만 들여다보고 살아도 곤란하지만 결코 잊으면 안 된다. 내 삶은 단절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른이 되고 내 안에 동심을 한 번도 꺼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마음이 퇴색되었다 오해했다. 하지만 내 안에 동심은 사라지지 않았고 그 주변에 둘레를 넓히면서 몸도 마음도 커진 어른이 되었다. 동심을 잘 간직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나는 어른이 되고 갑자기 동심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것에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그 동심을 꺼내 볼 수 있도록 해준 아이들에게 고마웠다. 이제는 내 마음에 얼룩을 깨끗하게 씻어내고 싶은 날 아이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한참 웃고 떠들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속 동심이 반짝하고 나와 짙어진 내 마음속 도화지를 깨끗하게 만들어준다. 아이들이 가진 최고의 특권은 순수함인 것 같다. 그것을 마음껏 누릴 수 있기에 아이들은 그렇게 해맑은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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