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셋맘 May 18. 2022

건강하게 헤어지는 중입니다

Part3. 무늬만 엄마에서 진짜 엄마가 되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애착인형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애착인형은 엄마의 육아를 돕는 아이템 중 하나로 아이의 정서적 안정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나는 출산을 기다리며 손바느질로 애착인형 하나를 만들었다. 완성된 토끼 인형의 모습은 어설펐으나 아기 옆을 지켜줄 든든한 보디가드라도 생긴 것처럼 뿌듯했다. 여성 심리상담 전문가 이지안 저서 <초보 엄마 심리학>에서는 애착인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낯을 가리는 이 시기에 아기에게는 특별한 대상이 생긴다. 바로 아끼는 담요나 인형 같은 것이다. 심리학자 도널드 위니콧은 이를 중간 대상이라 불렀는데, 중간 대상은 엄마와 아기 모두를 의미한다. 따라서 아끼는 담요나 인형은 아기에게 엄마이자 자기 자신이므로 굉장히 중요한 물건이다. 엄마 마음대로 바꾸거나 버려선 안 된다.     



 나는 첫째가 태어난 뒤 늘 아이 곁에 토끼 인형을 두었다. 애써 만든 인형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랐지만 아이는 토끼 인형보다 이불에 더 관심을 보였다. 이불과 사랑에 빠져 하루종일 이불과 함께했다. 놀 때도 잘 때도 아이 옆에는 이불이 놓여 있었다. 아이는 그 이불을 만지고 냄새 맡는 것을 넘어 물어뜯기까지 했다. 심지어 자다 깬 아이에게 이불만 안겨주면 곧장 다시 잠들었다. 애착이불은 아이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도 천국을 가져다주었으니 말이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어느새 이불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빳빳했던 이불은 해파리마냥 흐물흐물 해졌고, 아이가 치아로 낸 구멍은 손가락 하나 겨우 들어갈 정도에서 발이 다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커져 있었다. 그런 구멍들이 순식간에 온 이불을 덮어 버린 탓에 이불은 더는 이 세상 물건이 아니었다. 나는 아이의 위생을 위해서라도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이불을 버리기로 말이다. 하지만 주변 육아 동지의 말만 들어도 아이에게서 애착물을 분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가 애착물과 건강하게 헤어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 나는 육아 코칭 프로그램인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면서 힌트를 얻었다. 금쪽같은 내 새끼에는 매일 아침 등원을 거부하는 딸 문제로 고민하는 의뢰인이 출연했다.



 46개월 딸 수아는 매일 아침 눈물을 보이며 소리 지르기, 발버둥 치기, 엄마에게 모진 말을 하며 온몸으로 어린이집 등원을 거부했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수아엄마는 그저 답답한 마음이라고 했는데 그 마음은 아이의 속마음을 들으면서 곧 풀렸다. 수아는 그동안 아무 문제 없이 어린이집을 다니던 아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어린이집이 갑자기 문을 닫게 되면서 친구들과도 갑작스러운 이별을 해야만 했다. 그런 수아를 엄마는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어린이집으로 옮겼으나 낯선 상황에 놓인 아이는 두려움을 느꼈다. 이를 들은 전문가는 이전 어린이집을 떠나면서 충분한 애도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 과정을 완전히 마치지 못했다면서 친구들과 헤어졌을 때 얼마나 슬펐는지 애도의 시간을 갖도록 지시했다. 수아는 함께 어린이집을 다녔던 친구와 영상통화로 안부를 묻는가하면 편지로 마음을 전하면서 뒤늦게 애도 과정을 가졌다. 이후 수아는 점점 안정을 찾아갔다.



 사람과의 이별에서 애도 과정이 필요한 것을 보면서 애착물에도 이와 같은 과정이 필요하겠구나! 생각되었다. 나는 한 달이란 시간을 가지고 아이가 애착 이불과 건강하게 이별하도록 도왔다. 기간을 정한 것은 아이가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남은 시간을 말해주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우리는 한 달간 매일 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이불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작별인사라고 거창할 것은 없었다. 그동안 이불에게 고마웠던 이야기를 하면서 인사를 나눈 것이 다였다.


“서진아~ 우리 이불하고 인사하자. 그동안 서진이 따뜻하게 해줘서 고마워!”


내 말에 맞춰 아이가 이불을 쓰다듬으며 인사를 했다. 아이의 따뜻한 손길과 마음이 이불에 닿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이불과 헤어지는 연습을 했다.


“서진아~ 우리 이제 열 밤만 자면 이불하고 안녕할 거야. 오늘도 고마워~ 인사하고 자자”


그렇게 한 달을 꼬박 아이는 이불과 헤어지는 연습을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혹시 한 달이 지나서도 아이가 불안해 할까 싶어 대비책으로 이불을 다른 방에 보관해 두었다. 아이가 차츰 이불에 대한 관심이 사라질 때쯤 나는 비로소 이불을 우리 집에서 완전히 떠나보낼 수 있었다.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지인에게도 우리 아이가 어떻게 애착 이불과 잘 헤어졌는지 말해주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인은 아이가 토끼 인형과 잘 헤어졌다며 고마워했다.





 우리는 군인 가족이란 특수한 상황으로 자주 이사해야 한다. 아이들은 그만큼 사람들과도 자주 이별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금쪽이 수아 이야기는 남 일같이 않았다. 우리에게 앞으로 몇 번의 이사가 더 남았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아이와 함께 하는 이사는 단순한 문제는 아니라는 거다. 몇 번의 경험 끝에 나는 그 사실을 절감했다. 첫째는 어린이집을 가면서부터 이사로 인해 3년 동안 세 번이나 원을 옮겼다. 적응하자 친구들과 헤어져야 하는 일은 겪은 아이에게 자칫 마음에 상처로 남을까 나는 늘 노심초사했다. 다행인 것은 애착이불과 잘 헤어진 경험이 우리에게 있다는 거였다. 그 경험을 토대로 나는 이제 이사하기 전 아이가 이별에 대해 충분한 애도 과정을 가질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돕는다.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언제쯤 어디로 이사하는지도 말해주고, 어린이집에도 일찍 알려서 선생님과 친구들이랑 아쉽지 않을 만큼 작별인사를 하게 했다. 그때 친구들과 교환한 선물과 사진은 새로운 곳에 적응하면서 두고두고 얘기할 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또 한 번의 이별을 앞두고 있다. 그사이 부쩍 커버린 첫째는 이제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다고 말하지만, 나는 안다. 이번에도 우리 아이들은 건강하게 잘 헤어지리라는 것을. 헤어짐에는 애도 과정이 꼭 필요하다. 그래야 건강하게 잘 헤어질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계절을 만지는 아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